조선통신사 닛코(日光) 유람의 문화관광학적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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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1. 연구목적
2. 연구자료 및 방법

Ⅱ. 닛코의 지리와 풍물
1. 지리
2. 풍물

III. 조선통신사의 닛코(日光) 치제(致祭)
1. 대일관계와 조선통신사
2. 1636년 병자통신사(丙子通信使)의 닛코 유람
3. 1643年 계미통신사(癸未通信使)의 닛코 치제(致祭)
4. 1655年 을미통신사(乙未通信使)의 닛코 치제(致祭)

IV. 문화관광학적으로 본 닛코 유람
1. 교통
2. 교통수단
3. 관광인원
4. 사행 준비와 접대

V.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러 삼사와 상상관의 상차림을 살펴보면 753선(膳)과 3즙(汁) 17채(菜)를 내놓았는데 최상의 접대요리였다.
③ 접대 경비
도쿠가와(德川) 막부의 조선통신사 환영에 사용한 비용은 매회 백만 냥정도이었으며 또 동해도(東海道) 53숙역(宿驛)을 왕복하는데 동원된 인마(人馬)의 수를 보더라도 인부 33만 명, 태마( 馬) 7만 필 정도 된다고 하였다. 이를 현재의 금액으로 환산하면 약 500억 엔(円)이라는 거액으로 이는 막부의 1년 세입과 비슷한 금액이다. 이 방대한 숫자만 보더라도 일본으로서는 거국적 행사로서 정성을 다하였음을 알 수 있다.
V. 결론
조선통신사는 평화교린의 중개를 담당할 외교사절로 일본에 파견한 사신이다. 조선 초기부터 통신사를 통하여 선린우호관계를 유지하였던 한일 양국은 임진왜란으로 외교적 단절을 맞기도 하지만 이후 도쿠가와(德川) 막부의 요청으로 다시 부활하여 약 200년간 12차례의 사행을 하였다.
그 중 1636년의 병자통신사, 1643년의 계미통신사, 그리고 1655년의 을미통신사 때의 특징은 닛코 방문이었다. 닛코(日光)란 일본의 국립공원이면서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사당인 도쇼구(東照宮)와 이에미쓰(家光)의 사당인 다이유인보(大猷院)가 있는세계적인 관광지이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닛코를 보지 않고 일본의 아름다움을 말하지 말라"는 말을 만들 정도이다.
따라서 이 논문은 닛코를 방문한 3회의 사행기록을 대상으로 닛코의 유람과 치제(致祭)를 살펴보았다. 병자, 계미, 을미통신사의 사행은 17세기 중반 통신사행의 문화사적 의의를 지니고 있어, 각 사행록들은 모두 일본 체험의 실상과 그 의미 등이 잘 나타내고 있다.
김세렴의 '해사록'은 수로와 육로를 겸해 가야 하는 사행의 물리적 고통뿐만 아니라 일본인들의 시서화 요구에 응대해야 하는 사신들의 정신적 피로감이 점철되어 있었고, 남용익의 '부상록' 중 '장유'편에서는 사신들이 겪었던 노정의 고통과 왜란 당사국에 와서 화해해야 하는 부담, 이국에 와 새로이 발견하게 된 경관과 번성에 대한 놀라움, 그리고 일본인들의 끈질긴 시문 요구에 대한 성실성 등이 표출되어 있어 일본 체험이 준 다양한 의미가 잘 나타나 있다.
이혜순, 조선통신사의 문학,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1996. p.90
그러므로 조선통신사의 사행로는 궁극적으로 일본의 장거리 여행의 교통로의 일단을 제공하는 중요한 자료이며, 닛코 유람은 조선에서 가장 장거리 관광로를 개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17세기 중기 닛코 관광은 새로운 역사관광 코스의 개발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며, 예상을 훨씬 뛰어넘은 한일간의 폭넓은 문화관광 교류의 자료를 통하여 다양한 이벤트성 관광문화를 만들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예를 들면 부산에서 조선통신사의 출발을 당시의 복장으로 재현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이와 같이 닛코관광은 교류의 장으로써 그 역할이 적지 않았음을 생각해 볼 때 이에 대한 앞으로의 다각적인 연구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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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2.11.07
  • 저작시기20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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