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원천으로 한 창작 : 기억과 욕망의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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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모든 문제는 나에게서 비롯된다

Ⅱ. 나의 진실을 두려워하지 말라

Ⅲ. 나의 기억은 확대될 권리가 있다

Ⅳ. 꿈은 아름다울수록 꿈답다

Ⅴ. 되사는 삶이 창조적 삶이다

본문내용

명백하게 될 방법으로, 나의 우화를 통하여 내가 진실을 예기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는 속아 넘어가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나는 사기꾼이었고, 아무도 믿으려하지 않는 객설들로 떠들어댄 것이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서 나는 공상을 발견했던 셈이다. 내 생애 최초로 나는 내 것을 다시 읽어보았다. 얼굴이 빨개졌다. 이 유치한 환각에 만족하고 있었던 것은 바로 <나> 자신이었단 말인가? 하마터면 나는 문학을 단념할 뻔 허였다. 마침내 나는 나의 노우트를 해변으로 가져가서 모래속에 묻어버렸다.
p365
우리들은 우리 생활에서 발생하는 사소한 사건들을 서사시적으로 서로 얘기하는 버릇이 생겼고, 우리들에 대해서는 삼인칭 복수로 말하였다.
p369
부모들이 나뿐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것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왜냐하면 어린애들에겐 그들의 자격에 알맞은 아비들이 있는 법이니까. 오후 네시 이후 저녁때, 자유로운 통학생들이 떠나면 학교는 위험한 장소가 되어버렸다.
p372
요컨대 그는 완전한 인간이었고, 베나르의 모습으로 한인간을 보는 것보다 나를 더 놀라게 해주는 일은 없었다.
p375
왜냐하면, 나의 얘기는 행복한 결말을 맺을 것이며, 뜻밖의 일이란 기만에 불과하고 새로운 것이란 외모에 지나지 않으며, 민중의 요구가 나를 세상에 출생케 함으로써 모든 일을 결말 짓는다고, 나는 미리부터 정해 놨었기 때문이다.
나는 슬픔과 질병을 이겨나가는 법을 배웠다. 왜냐하면 나는 슬픔과 질병속에서 나의 승리의 죽음의 첫모습을 보았고, 나를 죽음에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재단해 놓은 단계를 보았기 때문이다.
p376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겸허하고 참을 수 없는 나는 죽은 뒤의 내 승리의 조건들을 나의 패배 가운데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세상에서보다도 더욱 나 자신을 비난하기를 늘 좋아했다. 이것은 호인이라서가 아니라 오직 나 자신에게만 속하기 위해서였다.
p377
왜 과거가 나를 풍요하게 해주었을까? 과거는 나를 만들어주지는 못했다. 그와 반대로 나 자신이 나의 타버린 잿더미에서 소생하면서, 늘 다시 시작되는 창조에 의하여 허무에서 나의 기억을 끌어냈던 것이다. 나는 훌륭하게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나는 내 영혼의 움직이지 않는 저장물을 보다 유효하게 이용했던 것이다.
나는 미래가 우리를 잡아당긴다고 확신하였다.
p378
왜냐면 나는 인물들을 모두 내 모습에 맞추어 만들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의 나 자신 그대로가 아니라 내가 되고 싶었던 인물대로 말이다.
나를 충분히 사랑할 수 없어서 나는 앞으로 도망쳤었다. 그 결과 나는 더욱 나 자신을 덜 사랑하게 된다. 이 준엄한 전진은 끊임없이 내 눈에 나 자신을 실격시켜주고 있다. 나는 어제 잘못 행동하였다. 어제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일 내가 나에게 내릴 준엄한 심판을 나는 오늘 예감한다.
p379
나에게는 원한이 없으며 나는 쾌히 모든 것을 자백하는 것이다. 즉 나는 자기 비평에는 소질이 있다.
p380
성숙기의 작가들은 그들의 첫작품에 대하여 지나친 확신을 가지고 치하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제 나는 장님이었고, 오늘의 아는 진보란 것은 내가 더 이상 진보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 되기 때문이다. 때때로 나에 대한 증인의 책임을 맡는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일 경우도 있는 것이다.
p382
나로 말하면 나는 이미 늙은 꼬마 소년으로 집약된 시작이며 중간이고 끝이었다.
나는 집약되고 압축되어 한 손으로 나의 무덤을, 다른 손으로는 나의 요람을 만지고 있어, 자신을 짤막하고 훌륭하게 느꼈으며, 암흑에 지워진 번갯불처럼 느끼고 있었다.
p383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감히 눈길을 나의 내부로 돌려본다.
p385
이것이 나의 출발이다. 나는 도주하고 있었다.
문필가의 유일한 임무는 구원이었고, 이승에서의 그의 체류는 훌륭하게 견디어 낸 시련에 의해서 사후의 지복을 자기가 받을 값어치가 있게 하는 것 외에는 다른 목적이 없었다.
p386
신화는 매우 단순하기 때문에 나는 힘 안들이고 신화를 소화하였다.
나는 잡초처럼 카톨릭교의 부식토에서 성장했었다. 나의 뿌리는 이 부식토에서 수분을 빨아들였고, 나는 그것을 수액으로 삼았다. 거기서 나의 명석한 맹목이 유래되었고, 나는 30년 동안 그것으로 과로와하였다.
p387
글을 쓴다는 것은 나로서는 오랫동안 <죽음>이나 가면을 쓴 <종교>에게, 우연으로부터 나를 끌어내 달라고 간청하는 행위였다. 나는 <교회>의 인간이었다. 지상의 신자로서 나는 작품을 통하여 나를 구하려고 하였다. 신비주의자인 나는 말들의 엇갈린 어렴풋한 소리에 의해 존재의 침묵을 드러내보려고 시도하였으며, 특히 나는 사물과 그것들의 이름을 혼동하였다. 그것이 믿음이었다.
독단론자인 나는 회의의 선민이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의심하였다. 한 쪽손으로 파괴한 것을 다른 쪽 손으로 재건하였고, 나는 불안을 나의 안전의 담보물로 생각하였다. 나는 행복하였다.
p388
무신론은 잔인하고 장시일을 요하는 작업이다.
그래서 너무도 내가 잘 알고 있다시피 나를 기다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디종까지, 우리는 거북스러운 가운데서 얼굴을 마주대하고 가게 될 것이다. 나는 전직을 포기했으나 환속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글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별수 없지 않은가?
"하루에 한 줄도 안 쓰고 지나는 날이 없었다."
이것은 나의 습관이고 나의 본업인 것이다. 오랫동안 나는 펜을 검처럼 생각했다. 이제와서는 나는 우리의 무력함을 알고 있다. 그래도 상관없다. 나는 책을 쓰고 있으며 앞으로도 쓸 것이다. 쓸 필요가 있을 것이다. 어쨌든 소용이 될 것이니까.
p389
나는 나의 꿈들을 개작하였다고 생각한다. 알려지지 않은 채로 죽게 되리라는 행운을 잃었기 때문에 나는 때때로 오해를 받고 산다는 것이 흐뭇하다.
만일 내가 이 불가능한 <구원>을 장신구 상점에 진열한다면 무엇이 남을 것인가? 한사람의 전체는 세상의 모든 사람으로써 만들어지고, 그 모든 사람들만큼의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어느 누구라도 그 사람만큼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竹嶺夏日
靑山白雲飛
果園夏日長
善因在山河
詩語猶苦荒

키워드

,   원천,   창작,   기억,   욕망
  • 가격3,300
  • 페이지수22페이지
  • 등록일2003.01.22
  • 저작시기2003.0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2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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