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存在의 辨證法〕
본 자료는 3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해당 자료는 3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3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목차

1. 열 세 번째

2. 열 세 번째 다시 하나

3. 열 세 번째 다시 둘

본문내용

나의 실존하는 원인은 하나의 실존하는 결과를 낳는 것이며, 결과로서의 존재는 원인에 의하여 긍정성으로서 완전히 구속되어 있다. 결과로서의 존재가 그 존재에 있어서 원인에 依存하는 限, 거기에는 無의 여하한 萌芽도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묻는 者가 물어지고 있는 相對에 대하여 일종의 무화적 후퇴를 할 수 있는 한에 있어서, 그는 세계의 인과질서로부터 免除되어 있고, \'존재\'의 끈끈이(接着物)로부터 除外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뜻이다. 묻는 者는, 二重의 無化的 운동에 의해서, 먼저 자기와의 관계에 있어서 상대를 無化하여 이를 존재와 비존재 사이의 中性的 狀態에 놓는다. 다음에 물어지는 상대와의 관계에 있어서 자기가 자기를 무화하여 자기로부터 하나의 비존재의 가능성을 이끌어 낼 수 있도록 존재로부터 자기를 分離한다. 물음과 함께 어느 정도의 否性이 세계 속에 이끌려 들어온다. 우리는 無가 무지개처럼 세계를 색칠하고 사물 위를 배추벌레색으로 비치는 것을 본다.
그러나 동시에 물음은 묻는 者가 發하는 것이며, 묻는 者는 존재로부터 分離됨으로써 묻는 者로서 자기를 자기의 존재 속에 契機化 한다. 따라서 물음은 정의상으로는 하나의 인간적 經過인 것이다. 그러므로 적어도 이런 경우 인간은 無를 출현시키기 위하여 그 자신 비존재를 가지고 있는 限, 세계 속에 無를 낳는 하나의 존재로서 나타난다.
위와 같은 것은 前述한 否性을 檢討하기 위한 案內로서 필요할 것이다. 물론 否性은 초월적 現實이다. 예컨대 距離는 노력해서 넘어가야할 어떤 것―그것은 대체로 測定되야겠지만―으로서 우리에게 주어진다. 그렇지만 이러한 현실은 극히 특수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어쨌던 이러한 현실은 직접적으로 인간존재와 세계와의 본질적 관계를 나타내고 있다.
그 현실은 期待라든가 企劃이라든가 하는 인간존재의 한 행위에 根源을 갖는다. 그 현실은 여하간 세계 속에 구속되어 있는 인간존재에 나타나는 한에 있어서의 존재의 한 局面을 나타내고 있다. 또 否性이 提示하고 있는 인간과 세계와의 諸관계와 우리의 경험적 활동에서 나오는 아포스테리오리한 제관계와는 아무런 공통점도 없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세계의 諸對象이 \'인간존재\'에게 나타나는 것은 道具關聯에 의한다고 하거니와, 그러한 도구관련도 역시 이경우에는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모든 否性은 그러한 도구관련의 본질적 조건의 하나로서 나타난다. 존재 전체가 우리 주위에 道具로서 配置되기 위해서는 다시 존재 전체가 微分的 複合으로 分割되어야 하고, 이 미분적 복합이 서로 他方을 제세하고 유용하기 위해서는 否性이 출현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도 諸事物中의 한 사물로서 출현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커다란 덩어리를 諸事物로서 配置하고 配分하는 것을 主宰하는 範疇的 權限을 갖는 것으로서 출현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므로 인간을 둘러싼 존재의 한 복판에 인간이 출현함으로써 비로소 하나의 세계가 열리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그렇게 출현하는 본질적이고 원초적인 계기는 否性이다. 이리하여 우리는 이 연구의 최초의 목표에 도달한 셈이다. 즉 인간은 無를 세계에 도래시키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곧 바로 또 하나의 문제를 제기한다. 그것은 인간에 의해서 無가 존재에 도래되기 위해서 인간은 어떠한 존재라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존재로부터서는 존재가 導出될 뿐이다. 만일 人間이 이 生成過程 속에 內包되어 있다고 한다면, 인간으로부터 도출되는 것은 존재 뿐이다. 인간이 이 과정에 관해서 물을 수 있기 위해서는, 즉 이 과정을 문제 삼을 수 있기 위해서는, 인간은 이 과정을 하나의 總體로서 자기의 視野안에 놓지 않으면 안된다. 바꾸어 말하면, 인간은 자기 자신을 존재밖에 놓고 동시에 존재의 존재구조를 약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인간존재\'는 자기 앞에 놓여 있는 존재의 덩어리를 비록 一時的일망정 없앨 수는 없다. 인간이 바꿀 수 있는 것은 이 존재와 자기의 관계인 것이다. 個別的인 하나의 존재자를 局外에 놓는다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이 존재자와의 관계 자기 자신을 局外에 놓는다는 것이다. 이때 인간은 이 존재자로부터 탈출하는 것이다. 인간은 이 존재자와 떨어져 있는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 無의 한가운데 끌려 들어간 것이다. 인간존재를 고립시키는 그러한 無를 分泌(분비)한다고 하는 인간존재의 가능성을 데까르트는, 스토아학파의 철학자에 따라, 자유라고 명명하였다. 그러나 여기에서 말하는 자유란 하나의 낱말에 불과하다. 우리가 한층 더 문제 속으로 파고 들어가려고 한다면, 우리는 이러한 해답에 만족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다시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無가 인간의 자유에 의하여 세계에 도래된다고 한다면, 과연 인간의 자유란 어떤 것이라야 하는가?
자유의 문제를 전면적으로 취급한다고 하는 것은 아직 우리로서는 불가능하다. 사실 지금까지 더듬어 온 바로써도 분명한 일이지만, 자유는 그것만 따로 떼어서 생각하거나, 記述할 수 있는 그러한 인간적 영혼의 한 능력은 아니다. 우리가 定義하고자 했던 것은, 無의 출현의 조건이되고 있는 限에 있어서의 인간존제인 것이다. 그런데 이 존재는 우리에게 자유로서 나타난다. 따라서 無의 무화작용에 필요한 조건으로서의 자유는 다른 고유성과 함께 인간존재의 본질에 속하는 그러한 고유성은 아니다. 뿐만아니라 우리가 이미 본 바와 같이 인간에 있어서의 존재와 본질과의 관계는 세계의 諸事物의 경우에 있어서의 양자의 관계와 닮은 것은 아니다. 인간의 자유는 인간의 본질에 선행하는 것이며, 본질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인간존재의 본질은 자유 속에 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유라고 부르는 것은 \'인간존재\'의 존재와 구별될 수가 없다. 인간은 먼저 존재하고 最後에 자유인 것이 아니다. 인간의 존재와 인간이 자유이다와의 사이에는 구별이 없다. 그러므로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인간존재의 嚴密한 解明을 기다려서 비로소 충분히 논의할 수 있는 어떤 문제에 前面으로부터 부딧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無의 문제와 관련시켜서 자유를 論하고, 자유가 無의 出現의 조건이 되는 限에 있어서 그 자유를 論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키워드

규정,   존재,   ,   통일,   순수
  • 가격500
  • 페이지수11페이지
  • 등록일2003.01.23
  • 저작시기2003.0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20216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