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개신교 찬송가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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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선교 초기의 찬송가 편찬 (1900이전)

Ⅱ.1900년 이후에 출간된 「찬미가」와 「찬셩시」(1900-1906년)

Ⅲ.최초의 장로교․감리교 연합 찬송가,「찬숑가」(1908)

Ⅳ.성결교회의 초기 찬송가,「복음가」,「부흥성가」

Ⅴ. 20세기 초에 초판된 기타 찬송가

Ⅵ.1930년대 출간된 감리교, 장로교 찬송가

Ⅶ.장로교, 감리교, 성결교의 「합동찬송가」(1949년)

Ⅷ.1960년대 분열된 찬송가

Ⅸ.개신교 100주년의 해에 출간된 개신교 「통일찬송가」(1983년)

본문내용

목사 부인이 부르기 쉽도록 곡조를 낮게 전조한 것이 특징이다. 찬숑가에 수록된 곡은 19세기 미국의 찬송가 곡조와 주일학교 노래, 그리고 부흥회 노래가 지배적이며 이들이 한국 교회음악의 뿌리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Ⅳ.성결교회의 초기 찬송가,「복음가」,「부흥성가」
­성결교회는 미국의 감리교 신자였던 카우만 선교사 내외가 일본 동경에서 1901년에 창설한 개신교 예수교의 교파로, 처음에는 교회 이름을 "복음전도관"이라 하였다. 한국에 성결교회가 시작된 것은, 1907년 3월 "동경성서학원"을 졸업한 정빈과 김상준이 한국에 돌아와서 같은 해 5월 30일 서울 종로, 염동에 "동양선교회 복음전도관"을 세운 것이 시초였다.
복음가 초판이 악보판이지는 알 수 없으나 증보된 신증 복음가는 악보판이며, 이의 재판인 신증 복음가에는 211곡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는 11곡이 증가되었음을 말해 준다.
Ⅴ. 20세기 초에 초판된 기타 찬송가
1. 구세군 찬송가, 「구세군가」(1912년)
2. 한국 성공회 최초의 성가집,「성회송가」(1903년)
3. 한국 카톨릭 교회의 최초의 성가집,「죠션어 셩가」(1924년)
Ⅵ.1930년대 출간된 감리교, 장로교 찬송가
1.감리교 찬송가,「신정찬송가」(1931년)
­신정찬송가는 최초의 장·감 연합 찬송가인 찬숑가를 개정·증보한 찬송가로, 원래는 장·감 공용찬송가로 편찬하였지만 장로교가 「신정찬송가」의 사용을 거부하고 따로 「신편 찬송가」를 발행하므로, 「신정찬송가」는 감리교 전용찬송가로 「합동찬송가」가 나오기 전까지 사용되었다.
1924년에서 1928년 1월까지 4년간 개정 작읍을 한 후 총 314장을 선정하였는데, 반수 이상이 「찬숑가」에서 택한 것이고 70편이 「청년찬송가」에서 채택한 것이다.그리고 6편은 한국인 창작 찬송으로 현상모집에서 채택된 것이며 나머지는 새로운 번역 찬송이었다.
신정 찬송가는 여러 문제점이 있었지만 새로운 찬송을 많이 편입한 점과 가사와 음악의 억양을 조화시킨 점, 곡조를 원래대로 환원한 점, 가사의 번역을 원문에 가깝게 한 점 등의 장점도 가지고 있었다.
2. 장로교 찬송가,「신편 찬송가」(1935년)
­신정 찬송가는 원래 장·감 공용으로 쓰기 위하여 개편된 것인데, 1931년 장로교 총회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이것을 채택하지 않고 구 찬숑가(1908년)에 수십 장을 첨가하여 일반 교회에서 사용하기로 하고, 1932년에는 48장이 첨가 된 찬송가를 출간하였다. 1932년에 열린 장로회 총회에서 총회와 협의 없이 출판된 신정찬송가에 대해 교열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신정찬송가의 채택을 거부하고, 1934년 장로회 총회에서 종교 교육부에 맡겨서 더욱 잘 편찬하도록 가결하였다. 성급한 찬송가 개편에 대한 문제점은 다음 4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편집 기간이 너무 짧았다는 것이고, 둘째는 편집위원의 문제, 셋째는 재개편의 의의가 없고, 마지막은 발행권의 문제이다.
이러한 비판과 호소에도 불구하고 장로회 총회 종교 교육부는 1935년 6월에 신편찬송가를 발행하였다. 신편찬송가는 총 400장으로 되었는데 구 찬숑가 중 늘 부르지 않는 것 40장을 삭제하고, 신정찬송가에서 좋은 것 70장과 새 찬송가 100장 가량을 첨부했는데, 구 찬숑가와 찬송가 장수를 같게 하고 빠진 것만 새 찬송으로 첨가하여 교인들이 찾기 쉽게 하였다.
Ⅶ.장로교, 감리교, 성결교의 「합동찬송가」(1949년)
­1930년대부터 감리교는 신정찬송가(1931), 장로교는 신편 찬송가(1935), 성결교는 부흥성가(1930)를 사용하다가, 조국의 해방과 함께 장·감·성 세 교파에서는 찬송가의 하나됨을 원하여 1949년에 찬송가란 명칭으로 통친 합동찬송가를 출간하였다. 새로운 편찬이 아니라 세 가지 찬송가를 합한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곡과 가사의 중복이 많고, 처음부터 불려지던 미국의 부흥회 노래인 복음찬송이 성결교의 부흥성가를 통해서 더욱 증가되어 한국 찬송가의 중심이 되었다.
Ⅷ.1960년대 분열된 찬송가
1.「새찬송가」(1962년)
­1959년 예장이 통합과 합동으로 분열하면서 합동 측은 합동찬송가의 사용을 거부하고 별도의 찬송가 편찬위원회를 구성했다. 1960년 12월 합동 측과 고려파가 새 총회를 구성하면서 합동 기념 사업으로 새 찬송가의 출판을 결의하고1962년 12월에 '새찬송가'란 명칭으로 선교 단체인 팀미션의 생명의 말씀사에서 발간하였다. 이로써 교파의 분열은 찬송가의 분열을 가지고 왔다.
2.「개편 찬송가」(1967년)
­1963년에 시작된 개편 작업은 4년동안의 노력 끝에 1967년 12월, 「개편 찬송가」를 출간시켰다. 개편 찬송가에는 한국인 창작 찬송 27편을 포함한 600편의 찬송이 수록되었고 성결교단의 특색있는 복음찬송 20곡을 후에 부록으로 첨부하였다.
개편 찬송가에는 종래의 한국 찬송가가 선교사들이 전도의 목적으로 사용했던 복음가, 부흥가들로 주축을 이루고 있었음에 비하여, 예배 찬송과 교회의 의식에 관계된 찬송을 보강하므로 부흥회 중심의 경향에서 예배 중심의 찬송가로 변화를 시도하였다.
Ⅸ.개신교 100주년의 해에 출간된 개신교 「통일찬송가」(1983년)
­개신교의 통일 작업은 1970년대에 이미 연구와 노력이 있었지만 결실을 맺지 못하였다. 1981년에 와서 "한국 찬송가 공회"가 발족되어 통일찬송가의 편집, 간행, 고나리를 주관하게 됨으로써 박차를 가하게 되어, 1983년 11월 9일에 한국 교회가 염원하던 통일찬송가의 출간을 보게 되었다. 명칭은 "찬송가"로 그 동안 한국 개신교회가 사용해 오던 세 가지 찬송가 "합동 찬송가"(1949년), "새 찬송가"(1962년), "개편 찬송가"(1967년)를 하나로 통일한 것으로 1949년 합동 찬송가 편찬 신정 찬송가(1931년), 신편 찬송가(1935년), 부흥성가(1930년)를 하나로 합한 것과 비슷한 과정으로 편집되었다.
통일 찬송가는 선교 100주년에 이룩한 교회 일치와 연합 사업의 결실로서, 세 종류의 찬송가를 사용하던 불편을 해소하고 한 가지 찬송가로 같이 부르는 기쁨과 감격을 둘 수 있었던 장점이 있었으나 찬송가의 질적인 면을 고려할 때 많은 문제점을 보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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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3.09.27
  • 저작시기20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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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225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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