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원시부족국가
2.고구려
- 영토확장과 전성기
- 수·당과의 투쟁
- 정치제도
- 사회경제
- 문화교육
- 시가와 음악
- 미술
- 불교
- 도교
- 풍속
- 멸망
3.부여
4.옥저
5.동예
6.삼한
- 통치제도
- 종교
- 산업
- 생활양식 및 풍습
7.마한
8.진한
9.변한
2.고구려
- 영토확장과 전성기
- 수·당과의 투쟁
- 정치제도
- 사회경제
- 문화교육
- 시가와 음악
- 미술
- 불교
- 도교
- 풍속
- 멸망
3.부여
4.옥저
5.동예
6.삼한
- 통치제도
- 종교
- 산업
- 생활양식 및 풍습
7.마한
8.진한
9.변한
본문내용
조직은 매우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2. 종교
삼한시대에는 천군(天君)이라 부르는 제사장(祭祀長)이 각 국읍(國邑)마다 1인씩 있어서 소도(蘇塗:솟대)라 부르는 제사 지역을 관할하였는데, 소도는 신성한 지역으로서 법률의 힘이 여기에 미치지 못하였고 범죄인이 이 곳으로 도피하면 그를 돌려보내지도 않았으며, 또 이들을 잡아가지도 못하게 되어 있었다.
3. 산업
농업과 양잠 길쌈 등이 삼한을 통하여 널리 행하여졌다. 특히 평야가 많은 삼한지역에는 벼농사가 일찍부터 행하여졌고 수리시설로 저수지도 많이 만들었던 것 갈다. 그 한 예로 김제(金堤)의 벽골지(碧骨池), 밀양의 수산제(守山堤), 제천(堤川)의 의림제(義林堤) 등은 이 때의 저수지이다. 목축도 성했고 해안지대에는 어업도 성하였다. 특히 진한 변한에서는 철이 많이 산출되어 널리 쓰였다. 철은 물품매매에 화폐처럼 사용되고 낙랑 방면과 일본에까지 수출하였다고 한다.
4. 생활양식 및 풍습
삼한시대에는 농업이 그들 경제의 최대 근본이었으므로 씨를 뿌리는 봄과 추수하는 가을에는 계절적인 제사가 성행하였다. 씨를 뿌리고 난 5월에는 부락 전체의 군중이 모여 신에게 제사하고 가무(歌舞)와 음주로 밤낮을 즐겁게 놀았고 추수가 끝난 10월에도 그러하였다.
집은 대개 평지에 움집, 산지에는 귀틀집이 많았는데, 의복은 삼베 모시 명주 등으로 만들어 입었다. 남자는
도포
처럼 된 웃옷을 입고 상투를 틀고 가죽신 또는 짚신을 신었으며 이때부터 지게가 사용되었다. 그리고 구슬을 재보(財寶)로 삼았고, 또 그것을 치레로 옷에 달기도 하였으며 귀고리와 목걸이도 사용하였다. 이러한 유물은 지금도 당시의 고분에서 많이 출토되고 있다.
진한 변한에서는 길 가던 사람들이 서로 길을 사양하였다 하니 풍속의 순후함을 말해 주고 있으며 혼인 등 예절에는 남녀의 구별이 있었고 법과 형벌은 일반적으로 엄하였다. 자연환경이 온화하고 곡식이 풍부하여 명랑하고 쾌활한 성격을 지니고 있어서 노래 춤 음주가 성행하였으며 특히 변한 마한 지역에는 비파와 같은 악기도 있었다고 한다.
마한 : 한반도 중부 이남 지역에 분포한 삼한(三韓) 중의 하나.
대체로 BC 1세기~AD 3세기에 경기 충청 전라도 지방에 분포한 54개의 소국(小國)을 가리킨다. 진수(陳壽)의 《삼국지》 위지동이전에 따르면, 마한 54소국은 큰 나라는 1만여 가(家), 작은 나라는 수천 가로서 모두 합하면 10여 만 호(戶)가 된다고 한다.
각 소국에는 우두머리가 있는데, 세력의 대소에 따라 신지(臣智) 읍차(邑借)라 불렀다. 이들 소국은 다수의 읍락(邑落)으로 구성되었으며, 중심 읍락인 국읍(國邑)은 각 읍락간의 물자교역의 중심지이고, 국읍의 주수(主帥)는 대내외 교역활동을 장악함으로써 경제적인 측면에서 각 읍락을 통솔하고 유사시에는 군사활동의 지휘권까지 행사한 것으로 보인다.
마한 소국을 형성한 주체에 대해서는 마한족이라는 별개의 종족이 한반도 중남부 지역에 이주 정착하여 성립시켰다고 보는 삼한이동설의 입장도 있으나, 대부분은 선주(先住) 토착집단의 점진적인 발전의 결과 삼한이 대두했다고 본다. 즉, BC 3,2세기 중남부 지역에 좁은놋단검[細形銅劍]문화를 배경으로 한 다수의 정치집단이 존재했는데, 더욱 선진적 정치집단은 다른 지역에 비해 충남 전라 지역에 밀도있게 분포함으로써 이들이 마한 소국의 상당 부분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BC 1세기 이후 위씨조선계 유민과 문화의 유입, 철기의 보급, 부여계 유이민 집단의 정착 등의 정치 문화적 변화 속에서 철기문화를 배경으로 하는 새로운 세력권이 형성됨에 따라 청동기문화 단계의 마한의 영향력은 점차 위축되었다. 그리하여 2세기 이후부터 백제가 마한을 완전히 통합할 때까지 마한 지역은 한강 유역의 백제국 중심의 소국연맹체와 목지국(目支國) 중심의 토착세력권이 병존하는 상태였으며, 이후 백제국 중심의 소국연맹체가 점차 마한의 주도권을 장악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편제 질서를 확립해간 것이다. 마한 54국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진한 : 한반도 중부 이남 지역에 분포한 삼한(三韓) 중의 하나.
대체로 기원 전후부터 4세기경에 지금의 대구 경주 지역에 분포한 12개의 소국을 가리킨다. 여기에는 맹주(盟主)인 경주의 사로국(斯盧國)을 위시하여 기저국(己
國) 불사국(不斯國) 근기국(勤耆國) 난미리미동국(難彌理彌凍國) 염해국(
奚國) 군미국(軍彌國) 여담국(如湛國) 호로국(戶路國) 주선국(州鮮國) 마연국(馬延國) 우유국(優由國)이 있다. 진수(陳壽)의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따르면 진한 12개의 소국은 큰 나라는 4,000 5,000가(家), 작은 나라는 600 700가 정도였다고 한다.
진한의 형성 주체에 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데, 《삼국지》에서는 진한을 옛 진국(辰國)이라 하고 《후한서》에서는 진국이 진한뿐만 아니라 삼한 전체를 포괄한다고 한다. 또 다른 기록은 《삼국지》 진한조에 중국 진(秦)나라의 유민들이 노역을 피해 한(韓)나라로 이주해와서, 마한의 동쪽 땅을 분할받아 진한을 형성하였다고 한다.
이들 소국들은 3세기 후반에 신라의 기본세력으로 편제되어갔으며, 그 중 일부는 가야(伽倻)의 소국(小國)으로 발전한 듯하다.
변한 : 한반도 중부 이남 지역에 분포한 삼한(三韓) 중의 하나.
변진(弁辰)이라고도 한다. 대체로 기원 전후부터 4세기경까지 지금의 김해 마산 지역에 분포한 정치 집단을 가리킨다. 진한과 변한의 구분은 종족적 지역적인 구분에 의해서 대비되지만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변진은 진한과 잡거하며 언어 법속 의식주가 같고 다만 귀신의 섬김이 다르다"고 한 것으로 보아 진한과 변한은 전체적으로 같은 문화기반을 가진 정치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삼국지》에 변진은 12개의 소국 이외에 독립된 거수(渠帥)가 있는 여러 소별읍(小別邑)이 있다는 기록으로 보아 변진은 경상도 지역에 분포한 여러 정치 집단 가운데 진한연맹체에 속하지 않은 세력들을 통칭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들 중 대부분은 뒤에 가야연맹체를 구성하였다. 변한은 유명한 철산지로서 중국 군현과 왜에 철을 수출하였고 왜와 인접한 지역에서는 문신(文身)의 풍속이 있었다고 한다
2. 종교
삼한시대에는 천군(天君)이라 부르는 제사장(祭祀長)이 각 국읍(國邑)마다 1인씩 있어서 소도(蘇塗:솟대)라 부르는 제사 지역을 관할하였는데, 소도는 신성한 지역으로서 법률의 힘이 여기에 미치지 못하였고 범죄인이 이 곳으로 도피하면 그를 돌려보내지도 않았으며, 또 이들을 잡아가지도 못하게 되어 있었다.
3. 산업
농업과 양잠 길쌈 등이 삼한을 통하여 널리 행하여졌다. 특히 평야가 많은 삼한지역에는 벼농사가 일찍부터 행하여졌고 수리시설로 저수지도 많이 만들었던 것 갈다. 그 한 예로 김제(金堤)의 벽골지(碧骨池), 밀양의 수산제(守山堤), 제천(堤川)의 의림제(義林堤) 등은 이 때의 저수지이다. 목축도 성했고 해안지대에는 어업도 성하였다. 특히 진한 변한에서는 철이 많이 산출되어 널리 쓰였다. 철은 물품매매에 화폐처럼 사용되고 낙랑 방면과 일본에까지 수출하였다고 한다.
4. 생활양식 및 풍습
삼한시대에는 농업이 그들 경제의 최대 근본이었으므로 씨를 뿌리는 봄과 추수하는 가을에는 계절적인 제사가 성행하였다. 씨를 뿌리고 난 5월에는 부락 전체의 군중이 모여 신에게 제사하고 가무(歌舞)와 음주로 밤낮을 즐겁게 놀았고 추수가 끝난 10월에도 그러하였다.
집은 대개 평지에 움집, 산지에는 귀틀집이 많았는데, 의복은 삼베 모시 명주 등으로 만들어 입었다. 남자는
도포
처럼 된 웃옷을 입고 상투를 틀고 가죽신 또는 짚신을 신었으며 이때부터 지게가 사용되었다. 그리고 구슬을 재보(財寶)로 삼았고, 또 그것을 치레로 옷에 달기도 하였으며 귀고리와 목걸이도 사용하였다. 이러한 유물은 지금도 당시의 고분에서 많이 출토되고 있다.
진한 변한에서는 길 가던 사람들이 서로 길을 사양하였다 하니 풍속의 순후함을 말해 주고 있으며 혼인 등 예절에는 남녀의 구별이 있었고 법과 형벌은 일반적으로 엄하였다. 자연환경이 온화하고 곡식이 풍부하여 명랑하고 쾌활한 성격을 지니고 있어서 노래 춤 음주가 성행하였으며 특히 변한 마한 지역에는 비파와 같은 악기도 있었다고 한다.
마한 : 한반도 중부 이남 지역에 분포한 삼한(三韓) 중의 하나.
대체로 BC 1세기~AD 3세기에 경기 충청 전라도 지방에 분포한 54개의 소국(小國)을 가리킨다. 진수(陳壽)의 《삼국지》 위지동이전에 따르면, 마한 54소국은 큰 나라는 1만여 가(家), 작은 나라는 수천 가로서 모두 합하면 10여 만 호(戶)가 된다고 한다.
각 소국에는 우두머리가 있는데, 세력의 대소에 따라 신지(臣智) 읍차(邑借)라 불렀다. 이들 소국은 다수의 읍락(邑落)으로 구성되었으며, 중심 읍락인 국읍(國邑)은 각 읍락간의 물자교역의 중심지이고, 국읍의 주수(主帥)는 대내외 교역활동을 장악함으로써 경제적인 측면에서 각 읍락을 통솔하고 유사시에는 군사활동의 지휘권까지 행사한 것으로 보인다.
마한 소국을 형성한 주체에 대해서는 마한족이라는 별개의 종족이 한반도 중남부 지역에 이주 정착하여 성립시켰다고 보는 삼한이동설의 입장도 있으나, 대부분은 선주(先住) 토착집단의 점진적인 발전의 결과 삼한이 대두했다고 본다. 즉, BC 3,2세기 중남부 지역에 좁은놋단검[細形銅劍]문화를 배경으로 한 다수의 정치집단이 존재했는데, 더욱 선진적 정치집단은 다른 지역에 비해 충남 전라 지역에 밀도있게 분포함으로써 이들이 마한 소국의 상당 부분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BC 1세기 이후 위씨조선계 유민과 문화의 유입, 철기의 보급, 부여계 유이민 집단의 정착 등의 정치 문화적 변화 속에서 철기문화를 배경으로 하는 새로운 세력권이 형성됨에 따라 청동기문화 단계의 마한의 영향력은 점차 위축되었다. 그리하여 2세기 이후부터 백제가 마한을 완전히 통합할 때까지 마한 지역은 한강 유역의 백제국 중심의 소국연맹체와 목지국(目支國) 중심의 토착세력권이 병존하는 상태였으며, 이후 백제국 중심의 소국연맹체가 점차 마한의 주도권을 장악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편제 질서를 확립해간 것이다. 마한 54국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진한 : 한반도 중부 이남 지역에 분포한 삼한(三韓) 중의 하나.
대체로 기원 전후부터 4세기경에 지금의 대구 경주 지역에 분포한 12개의 소국을 가리킨다. 여기에는 맹주(盟主)인 경주의 사로국(斯盧國)을 위시하여 기저국(己
國) 불사국(不斯國) 근기국(勤耆國) 난미리미동국(難彌理彌凍國) 염해국(
奚國) 군미국(軍彌國) 여담국(如湛國) 호로국(戶路國) 주선국(州鮮國) 마연국(馬延國) 우유국(優由國)이 있다. 진수(陳壽)의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따르면 진한 12개의 소국은 큰 나라는 4,000 5,000가(家), 작은 나라는 600 700가 정도였다고 한다.
진한의 형성 주체에 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데, 《삼국지》에서는 진한을 옛 진국(辰國)이라 하고 《후한서》에서는 진국이 진한뿐만 아니라 삼한 전체를 포괄한다고 한다. 또 다른 기록은 《삼국지》 진한조에 중국 진(秦)나라의 유민들이 노역을 피해 한(韓)나라로 이주해와서, 마한의 동쪽 땅을 분할받아 진한을 형성하였다고 한다.
이들 소국들은 3세기 후반에 신라의 기본세력으로 편제되어갔으며, 그 중 일부는 가야(伽倻)의 소국(小國)으로 발전한 듯하다.
변한 : 한반도 중부 이남 지역에 분포한 삼한(三韓) 중의 하나.
변진(弁辰)이라고도 한다. 대체로 기원 전후부터 4세기경까지 지금의 김해 마산 지역에 분포한 정치 집단을 가리킨다. 진한과 변한의 구분은 종족적 지역적인 구분에 의해서 대비되지만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변진은 진한과 잡거하며 언어 법속 의식주가 같고 다만 귀신의 섬김이 다르다"고 한 것으로 보아 진한과 변한은 전체적으로 같은 문화기반을 가진 정치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삼국지》에 변진은 12개의 소국 이외에 독립된 거수(渠帥)가 있는 여러 소별읍(小別邑)이 있다는 기록으로 보아 변진은 경상도 지역에 분포한 여러 정치 집단 가운데 진한연맹체에 속하지 않은 세력들을 통칭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들 중 대부분은 뒤에 가야연맹체를 구성하였다. 변한은 유명한 철산지로서 중국 군현과 왜에 철을 수출하였고 왜와 인접한 지역에서는 문신(文身)의 풍속이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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