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6부 체제의 변동과정 연구
본 자료는 2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해당 자료는 2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2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신라6부 체제의 변동과정 연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머리말

2. 6부의 용례

3. 6부체제의 변동

4. 6부체제의 전개와 그 운영

5. 맺음말

본문내용

를 상징하는 표현으로 쓰이기 시작했다고 생각된다.
2. 尼師今時期 6部體制의 運營
마립간시기에 부간 역학관계가 보다 분명해지고 또 김씨왕실에 의한 권력집중이 증대되어 나갔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추세는 그 이전 이사금시기 부체제의 변화를 의미한다. 여기서 마립간시기 부체제의 변화를 토대로 이사금시기 그것의 운영을 역으로 추적하는 것이 가능하다.
마립간시기에 갈문왕에 임명되는 대상이 김씨왕계의 친족에 한정됨에 비해 그 이전 시기에는 王妃·王母의 父가 갈문왕에 임명되든가 王父를 그에 추봉하였다. 왕비나 왕모의 부가 갈문왕으로 임명된 인물들이 모두 왕과는 다른 성씨를 가졌다. 이처럼 왕과 대립되는 성씨집단이 왕비·왕모를 배출하였고, 그녀들의 父를 갈문왕으로 임명하였던 것은 갈문왕을 정치적인 연합의 필요에 따라 임명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정치구조를 유추케 해준다. 왕비나 왕모는 왕과는 다른 부 소속이었고 그러한 혼인방식은 왕이 속한 부와 여타 다른 부와는 정치적 연합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특히 3성이 交立하여 왕위를 계승한 사실은 특정 부에서만 왕이 배출되지 않았음을 말해주며, 특정 부에서만 왕위를 배출한 마립간시기와는 달리 이사금시기에는 특정 부의 절대적 우위가 확립되지 않은, 즉 왕권이 상대적으로 미약한 정치체제였음을 이에서 역추할 수 있다. 또한 이 시기 부의 구조는 삼한지역에서 보이는 소국의 내부구조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소국에는 국읍과 읍락이 있었고, 소국은 바로 국읍세력이 읍락세력을 제대도 통제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들이 완만하게 연합한 정치체였다. 이러한 구조는 읍락에 공동체적인 관계와 면모가 중요한 기능을 하였던데서 연유하였다. 이렇게 볼 때 각부내의 부내부에서도 역시 공동체적인 관계가 중요한 기능을 하였고, 부 역시 그에 기반하여 통치를 하였다고 할 수 있겠다. 신라 초기에 부가 자치적으로 통치할 수 있었던 사회기반은 바로 위와 같은 것이었으며, 때문에 정치사회단위체로서의 부집단의 해체도 읍락공동체의 해체와 밀접하게 연계되었음은 물론이다.
이와 같은 부체제 하에서 왕은 그 체제를 유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왕은 그 체제에서 여러 부집단 간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조정자였으며, 때에 따라서는 부집단에 대해 일정한 통제력을 가하기도 하였다. 이때 왕은 여러 부세력들과 혼인정책을 통해 부세력과의 결속을 강화하거나, 아니면 그것으로 그들을 통제하였다. 왕권에 의한 부의 통제는 후대에 갈수록 정치적·군사적인 통제의 강도가 보다 강화되는 추세였고, 결국에 가서는 왕권의 일원적인 통제 아래 완전히 편제되기에 이른다.
五. 맺음말
이상의 검토를 통해서 이사금시기에 성립된 6부체제가 마립간시기 金氏王權의 권력집중 결과 부간 역학관계의 균형이 깨지면서 변화하기 시작하였고, 결국은 530년대 왕권이 일층 강화됨과 동시에 소멸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아울러 이러한 부체제의 변동과정은 왕을 정점으로 한 중앙집권적인 정치체제의 구축과정과 궤를 같이하였으며, 지방의 영역화작업도 그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밝힐 수 있었다.
  • 가격1,000
  • 페이지수7페이지
  • 등록일2003.10.15
  • 저작시기2003.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26355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