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의 수원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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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정조의 수원화성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화성의 축성계획과 공사방식
(1)기존축성론과화성의축성계획
(2)화성축성의 공사방식

2. 현륭원의 조성

3. 과천행궁 개축과 용주사 창건

본문내용

가 있을 따름이어서 창건시 지어진 절의 규모나 격식을 대부분 확인할 수 있다. 사적기에 의하면 이 때 조성된 전각은 대웅전 9칸, 칠성각 6칸(지금 없음), 향로전 12칸(지금 없음), 제각 6칸(6.25때 소실), 선당 39칸, 승당 39칸, 천보루 15칸, 좌우종루 4칸, 외삼문 3칸, 좌우익랑 3칸, 동문 9칸, 춘가 2칸이었다고 한다.
용주사의 전체 가람배치는 조선후기 산간에 세워지던 일반적인 선종계토의 사찰과는 약간 다른 특징을 보인다. 대개 조선후기 선찰들은 산간의 지형조건을 살리면서 각 법당의 예불과 승려들의 수도생활이 반영되어 각 법당 앞에는 독립된 마당이 있으면서 이 마당들이 서로 기능적으로 연결되는 유기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에 반하여 용주사는 평탄한 지형을 택하여 여러 단의 낮은 석축으로 대지를 조성하고 중요한 전각들이 대체로 좌우대칭을 이루고 중심부가 되는 대웅전 앞마당은 선당과 승당이 완전한 대칭으로 구성되고 전면의 누각에서 행각이 이어지면서 닫혀지는 등 매우 균형잡힌 구성을 보여준다. 따라서 그 대칭적인 배치에서 나오는 그 엄격함과 닫혀진 공간에서 보이는 정적인 분위기가 마치 관가건물을 대하는 듯하다. 그런데 용주사 가람배치의 이런 특징은 조선시대 다른 능찰에서도 유사하게 발견된다. 즉 광릉의 봉선사나 선릉의 봉은사 역시 용주사와 같은 대칭적이고 폐쇄적인 중심부 마당을 구성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조선 중기에 조성된 봉은사는 여러 면에서 용주사와 유사한 점이 발견된다. 봉선사에는 창건당초 조성된 장대한 석축들이 남아있는데, 그 흔적으로 미루어 중요 전각이 직선 축을 따라 일렬로 배열되었음을 짐작하게 해준다. 봉은사는 지금도 석축을 비롯하여 중요 전각의 잔재가 남아 있고 일제때 촬영한 조선시대 절의 모습이 전하고 있는데, 대웅전 앞마당의 대칭적인 구성과 전면 누각, 좌우 행각에 의한 폐쇄적인 구성이 용주사와 매우 유사한 모습을 전해준다. 따라서 좀 비약을 한다면 아마도 용주사의 가람구성은 봉은사를 모범으로하여 계획된 결과가 아닌가 여겨지기도 한다. 전체 사찰의 규모면에서 보아도 용주사는 봉은사와 거의 유사하다. 봉은사 역시 대웅전을 중심으로 7,8동의 전각이 조성되어 있었다. 이런 점들로 미루어 용주사는 봉선사나 봉은사와 같은 조선초기나 중기 왕실 능찰의 전통을 이어 받아 조성된 능찰이었다고 정의할 수 있으며 규모면에서도 일반능찰의 규모를 취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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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3.10.15
  • 저작시기2003.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26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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