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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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각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I. 서 론

II. 본 문
1. 조각이 처음에는 어떠했을까?
2. 조각이란 무엇인가?
3. 조각작품의 90%는 인체
4. 조각가에게 필수품인 공간(空間)
5. 형태를 길이로 보지 말고 두께로 보게 - 양감의 구현(具現)
6. 움직이는 조각을 위해서
7. 조각에서 빛은 왜 중요한가?

본문내용

점심 때, 저녁 때 그렸다고 한다. 이것은 빛의 변화를 보인 것이다. 빛에 따라서 그림을 그려 놓았다. 빛은 대단한 존재이다. 화가가 삼차원적 형태를 이차원적인 캔버스에 옮겨 놓으려 할 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빛의 횡포로부터 벗어나는 일이며, 이것은 우리의 직접적인 감각에 호소력을 갖는 입체의 형태를 창조하기 위해 갖는 노력을 다하는 조각가들에게는 보다 더 중요한 과업이다라고 한다. 어떤 의도에서 창조된 조각이든 간에 모든 조각은 놓여진 그 장소에 떨어지는 빛의 지배를 받게 되어 있다. 빛을 어떻게 조절하느냐 에 따라 작품이 하늘과 땅 차이로 달라 보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나는 조각이 넓은 장소에 아무 것이나 놓으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조각가는 미리 빛의 충격을 미리 예견하고 작품에 떨어질 빛의 효과를 이용하고자 하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조각의 형태가 애써 광선과의 충돌을 견디어내도록 계획되지 않는 한, 조각의 세부는 빛의 압력에 의해서 여지없이 분해되고 만다. 물론 조각가는 자기의 작품이 건축가가 제시한 자리에 영구히 위치할 것으로 예측한다.(그림 159) 조각의 위치에 관한 이 정도의 자유 외에도, 조각가는 재료의 선택 또는 형태의 꾸밈에 있어서도 자신을 억제해야 한다. 조각의 재료 역시 건축가에 의해서 선택될 때가 많지만, 이론적으로는 조각가는 다양한 여러 재료에 떨어지는 빛의 영향을 고려하여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조명을 아무리 바꾸어 보고, 관찰자로서 우리의 시각을 변화시켜 보아도, 움직이고 변화하는 광선의 성질을 우리는 발견하게 된다. 또한 광선이 단단한 물체의 매끄러운 표면 위에 떨어질 때, 그 빛은 우리들이 갖는 물체의 조형성에 대한 인상을 수정하거나 완전히 바꾸어 버린다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미술가에게 제시된 이러한 딜레마를 해결하는 방법은, 광선에 정면으로 도전하여 작품 표면의 반사효과를 거울 표면과 같은 정도로 만들어, 바람직한 미학적인 효과를 낼 수 있을 때까지 빛의 역할을 개발하는 일이다. 이렇게 하면 우리는 움직임의 환영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반사광을 개발한 가장 훌륭한 예는 브랑쿠시(Brancusi)의 광택 있는 작품들일 것이다.(그림 197)
조각예술의 고유한 극치는, 조각가가 촉감의 가치, 만져 본다는 것에 대한 가치, 중량감, 그리고 양감 등을 명백히 하기 위해서 거의 맹목적으로 매진할 때 비로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눈에만 명백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상상 속에서 만져 보고 눌러도 보는 모든 감각에 의해서 얻어지는, 그러한 통합적인 볼륨은 조각만이 지닌 고유한 정서이다. 막말로, 우리는 비단지갑을 돼지 가죽으로 만들 수 없다고 비유한다. 이 말은 물건을 손으로 만져 봄으로써 축감을 가장 정확하게 느낀다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우리의 진정한 목표는 현실, 즉 넓은 의미의 현실에 대한 이해를 위한 도구로서 무한히 광범위하고 복잡 미묘한 인간의 감각을 다루는 것이며, 또한 그러한 도구를 어떻게 올바르게 적용하느냐 하는 방법문제를 조금이라도 익히려는 것이다.
III. 결론
조각은 입체를 수단으로 공간에 표현하는 조형미술이다. 무심한 돌덩이를 깎아 마치 피가 도는 듯한 인물형상 등을 창조하는 것이 조각의 경이로운 연금술이다, 영구의 추상조각가 헵워드(Barabara Hepworth, 1903∼75)는 자연의 이런저런 형상들을 단순히 모방·재현하는 조각이 아닌, 인간의 저 깊은 정신을 특정한 꼴로 깍아내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어느 날 자신의 친구인 문예비평가 허버트 리드에게 물었다.
요약하자면 '정신을 재료에 일치시키는 조각의 포름'에 대한 질문이었다. 리드는 뜻밖에도 「장자」를 인용해 대답한다. 그것은 장자의 달생편에 나오는 재경이란 인물의 우화였다. 이 사람은 요샛말로 목공예가에 해당하는 뛰어난 기술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솜씨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우선 나무를 찾아 깎기 이전에 며칠간 마음을 차분한 상태로 가라앉힌다. 한 사흘 기(氣)를 모으면 남들이 잘한다 칭찬하거나 상준다는 말에 현혹되지 않는다. 닷새가 지나면 또 남이 형편없다고 헐뜯거나 욕하는 소리에도 무감해진다. 이레가 되는 날은 내 손발이나 모습까지 깡그리 잊혀진다. 바로 이때 내가 쓸 나무를 찾아 산으로 간다. 손도 발도 몸뚱이도 다 잊었으니 그저 내 마음만 남아 나무의 마음과 서로 통할 수밖에 없다.
이 정도가 되면 그가 깎는 나무는 벌써 자아와 분리된 대상이 아니다. 제 마음을 술술 빚어내는 무아(無我)의 유희로 몰입한 셈이다. 그러면서 허버트 리드는 "자연속의 천명이 인간으 천명과 합일하는 행위"라는 다소 고답적인 말로 조각과 정신의 조화를 설명했다. 조각가가 모자상(母子像)을 빚어냈으되 그것이 단순히 어머니와 자식의 형상만이 아니요, 사랑이 넘치는 것이 되거나, 도통 어떤 모양인지 말로 잘 표현되지 않는 추상조각이 그 작가의 속깊은 내면을 대변하게 되는 것, 역시 그런 과정을 겪고 탄생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장자」에는 조각의 기술과 도를 깨닫게 하는 대목이 더 있다. 바로 '포정해우'라는 잘 알려진 애기도 깎고 쪼고 잘라내는 조각의 기본행위를 연상시킨다. 포정( 丁)은 소를 잘 잡는 백정으로 워낙 유명해 국내에도 개봉된 「신용문객잔」이란 홍콩영화에서는 그가 모델이 된 '식도(食刀)잡이'마저 소개될 정도다.
포정이하도 기막힌 솜씨를 보인지라, 누군가가 그런 기술이 어디서 나왔느냐고 캐물었다. 그는 대답했다. "기술이 아니라 도이다. 괜한 힘으론 안된다. 소의 가죽과 살, 살과 뼈 사이의 틈이 내겐 보인다. 그 사이를 내 칼이 헤집고 들어가 고기를 발라내니 9년 쓴 칼인들 어제같지 않으랴. 그게 소를 잡는 정신이다."'
현대조각은 재료 자체가 고유하게 지닌 물성(物性)을 드러내는 경향이 강하다. 재료의 성질이 조각의 인간화를 앞질러가는 것이라면 결국 '정신의 물화(物化)'로 치닫게 되지나 않을지 염려된다.
<참고문헌>
허버트 리드, 李熙淑 譯, 『조각이란 무엇인가』, 열화당, 1984
그림, 손철주, 『아는만큼 보인다』, 효형출판, 2001
엘버트 E. 엘센, 최병길 역, 『근대조각사』, 집문당,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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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3.10.20
  • 저작시기2003.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27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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