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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에서는 신문과 방송을 통해 광주 시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폭도들의 만행'이라고 보도하였다. 이 때 올바르고 공정한 언론 매체가 없었다는 사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또한 광주민중항쟁이 22년이 흐른 지금도 광주 시민들을 향해 총을 쏜 '발포 명령자'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 당시 지휘권을 가지고 있던 장성급 군인들도 모두 자신은 아니라며 발뺌하고 있다. 그럼에도 광주에서는 계엄군이 쏜 총에 의해 무참하게 학살된 시민들이 무수히 많다. 왜 아직도 '발포'에 대한 진상이 밝혀지지 않고 있는지 많은 의문점을 남긴다.
그 당시 사건의 현장에는 많은 광주의 청소년들이 함께 하고 있었다. 시대적 배경이 다른 두 세대간이지만 지금의 우리 모습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만일 1980년 의 '나'라면 과연 어떻게 대처했을까? 마음속으로 자문해본다.
참고 사이트 : '5.18민중항쟁' (http://www.518.org/)
'5·18 가상체험관 참여관 (http://www.cyber518.kwangju.kr)
참고 문헌 : 1) 김영택 외(1996) '실록 5·18 광주민중항쟁' 창작시대
2) '광주5월민중항쟁' [풀빛 109] 한국현대사사료연구소 편(1990)
또한 광주민중항쟁이 22년이 흐른 지금도 광주 시민들을 향해 총을 쏜 '발포 명령자'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 당시 지휘권을 가지고 있던 장성급 군인들도 모두 자신은 아니라며 발뺌하고 있다. 그럼에도 광주에서는 계엄군이 쏜 총에 의해 무참하게 학살된 시민들이 무수히 많다. 왜 아직도 '발포'에 대한 진상이 밝혀지지 않고 있는지 많은 의문점을 남긴다.
그 당시 사건의 현장에는 많은 광주의 청소년들이 함께 하고 있었다. 시대적 배경이 다른 두 세대간이지만 지금의 우리 모습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만일 1980년 의 '나'라면 과연 어떻게 대처했을까? 마음속으로 자문해본다.
참고 사이트 : '5.18민중항쟁' (http://www.518.org/)
'5·18 가상체험관 참여관 (http://www.cyber518.kwangju.kr)
참고 문헌 : 1) 김영택 외(1996) '실록 5·18 광주민중항쟁' 창작시대
2) '광주5월민중항쟁' [풀빛 109] 한국현대사사료연구소 편(1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