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인의 자취와 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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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고분과 고분벽화

2. 건축과 탑

본문내용

데, 양양 진전사지 3층 석탑
) 양양 진전사지 3층석탑 : 진전사(陳田寺)는 통일 신라 시대에 창건한 사찰로 선문(禪門) 9산(山)의 효시인 가지산파(迦智山派)의 초조(初祖) 도의(道義) 선사(禪師)가 창건한 사찰이다. 하지만 16세기경에 폐사되어 현재는 절터에 3층 석탑, 부도 등의 석조물만이 남아 있다. 원래 이 절은 남향 사찰로 석탑의 남쪽 앞에는 50m 길이의 석축지(石築址)가 있고, 북쪽으로는 법당지에 민묘(民墓)가 있으며 주변의 경작지에서는 기와 조각들이 수습되고 있다. 절터 주변에서 ‘진전(陳田)’이라 새겨진 기와조각이 발견되어 절의 이름이 밝혀졌다. 상하기단과 초층 옥신에 장엄 조각이 있는 작지만 군더더기가 없는 매우 아름다운 탑이다. 하대석에는 각 면석마다 천의를 바람에 날리며 연화좌 위에 앉은 비천상을 조각하였고, 상대석 중석에는 팔부신중(八部神衆 : 부처님 말씀을 수호하는 여덟의 신으로 용·건달바·야차 등이 있다.)을 조각하였다. 또 옥신 네 면에는 여래상이 1구씩 조각되었다. 큰 바위에 조각된 사면불은 많이 전래되나, 옥신에 부처상을 장엄한 경우는 매우 드물다. 오대산 자락의 미천골 휴양림 안에 있는 선림원지 3층석탑(보물 제444호, 높이 : 5m)도 진전사지 탑과 비슷한 양식을 보여주고 있어 관동지방의 조형양식이 반영된 것 같다. 진전사지는 강원도 기념물 제52호이다.
<문화재청 홈페이지> http://www.ocp.go.kr
은 기단과 탑신에 부조로 불상들을 새긴 것으로 이름이 나 있다.
신라 말기에 선종이 널리 퍼지면서 승려들의 사리를 봉안하는 승탑
)승탑 : 승탑은 부도·부두·불도 등으로 표기되는데, 원래는 붙타와 같이 범어의 Buddha를 번역한 것으로 층탑형식, 석종형식·석등형식 및 특수형식 등 네 가지의 유형으로 구분된다. 일반적으로 사리를 봉안한 탑을 묘탑이라고도 하는데 부도도 여기에 포함된다.
우리나라 승탑의 건립은 불교가 전래함에 따라 이루어졌다고 추측할 수는 있으나 처음부터 승탑이 존재하지는 않았고 모든 승려의 유골이 화장된 후 승탑에 안장되는 것도 아니었다 신라의 고승 원효는 죽은 후 유골로 초상이 만들어져 분황사에 안치되었고 자장의 유해는 석혈에 봉안되었으며, 백제의 승려 혜현의 시신은 석실에 두어 호랑이 밥이 되게 하였고 통일신라시대의 진표율사는 죽은후 제자들이 흩어지려는 유골을 모아 흙 속에 매장하였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으로 보아 고승들의 장례에도 승탑이 세워지지않았음이 확인된다 오히려 진표율사와 같은경우는 유골을 흙 속에 매장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매장한 곳이 파손되어 유골이 이리저리 흩어지는 바람에 일부는 잃어버리는 수난까지 겪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까닭에 한편에서는 고승들의 유골을 안전하게 납골하여 보전하는 수단을 강구하게 되었을것인데 마침 중국으로 건너가 유학하고 귀국한 학승들로부터 승탑을 세우는 새로운 장례법이 들어봐 이로부터 우리나라에도 승탑이 세워지기 시작하였으리라고 추정된다
한용근, 2000, 「우리역사 우리문화」서경문화사
과 탑비
)탑비(塔碑) : 대부부의 부도에는 주인공의 행적을 기록하는 탑비가 세워져 당시의 사회 및 문화의 일면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한용근, 2000, 「우리역사 우리문화」서경문화사
가 유행하였다. 팔각원당형
) 신라 시대의 승탑의 형식 : 염거화상탑과 같은 석조사리탑이 전형이 되어 이후의 승탑은 상,중, 하대를 갖춘 불상대좌형 팔각기단 위에 팔각의 탑신과 지붕을 얹고 꼭대기에는 보개형의 상륜을 장식하는 기본적인 형식을 따르고 있으며 각 부재에는 화려한 장식이 베풀어지는데, 당시의 승탑은 전국의 선종사찰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조영되는 까닭에 장식기법이나 조성형식이 약간씩 변형되는 등 지역적인 특징과 양식적인 차이를 보여주기도 한다. 즉, 가지산문의 중시조인 염거화상탑을 비롯하여 동리산문인 전남 화순의 쌍봉사철감선사탑, 실상산문인 전북 남원의 실상사 증각대사응료탑과 수철화상능가보월탑, 가지산문인 전남 장홍의 보림사 보조서사창성탑, 희양산문인 경북 문경의 봉암사 지증대사적조탑, 경남 하동의 쌍계사부도, 강원도 양양의 선림원지부도, 전남 구례의 연곡사동부도 등은 비교적 조성연대가 확실한 신라 하대의 대표적인 승탑으로 팔각당형의 전형적인 승탑형식을 이루면서 조형적인 면에서는 조성시기와 기량 및 지역에 따른 특징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쌍봉사철감선사탑에서는 기단부의 하대에 구름무늬와 사자를 휘감아 돌리고, 중대와 상대에는 가릉빈가와 연꽃을 장식하였으며, 탑신 받침대에는 안상을 세련되게 조각하고 안상내부에는 사람모습을 한 가릉빈가가 비파, 장구, 피리, 제금 등의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탑신에는 모서리마다 배흘림이 있는 원형기둥을 새기고, 팔각의 면은 앞뒤에 문고리와 자물통이 달린 출입문을 새기고, 팔각의 면은 앞뒤에 문고리와 자물통이 달린 출입문을 배치하고 문 좌우에는 칼을 찬 사천왕상을, 나머지 양면에는 쌍으로 된 천인공양상을 새겼다. 기둥과 처마를 연결하는 부분에는 창방과 기둥머리를 표현하고 그 위로 지붕을 받아 서까래와 기왓골, 처마받침의 향로와 꽃무늬 등은 마치 당시의 목조건물을 보듯이 생생하고도 완벽하게 표현되었으며, 심지어는 처마 끝의 수막새기와에도 일일이 연꽃무늬를 새기는 등 탑의 조형과 표면장엄에 원숙한 솜씨가 발휘되어 이미 9세기 중엽에 신라 석조미술의 백미를 이루는 가장 아름다운 석조예술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 약간 늦은 시기에 조성된 연곡사동부도는 기단으로부터 상륜부까지 완형을 남기고 있는데 각 부재마다 정교한 장식을 베풀어 다채로우면서도 당당한 구도를 창출하고 있다. 특히 이 승탑은 날개를 활짝 편 새를 사방으로 배치하고 꽃무늬장식의 보륜과 보개를 쌓아 올린 상륜의 조형미가 돋보이는데, 염거화상탑 계열의 승탑 가운데 가장 심미적인 안목으로 조영된 걸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한용근, 2000, 「우리역사 우리문화」서경문화사
을 기본형으로 삼고 있는 승탑과 승려의 일대기를 비에 새겨 세운 탑비는 세련되고 균형감이 뛰어나 이 시기 조형 미술을 대표한다. 이런 승탑과 탑비는 지방 호족들의 정치적 역량이 성장하였음을 반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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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3.12.18
  • 저작시기2003.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39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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