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미술과 중세미술의 이해와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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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중세미술

♧ 르네상스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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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렵의 작품으로는 《성모자(聖母子)와 두 성(聖)요한》(85, 베를린 국립미술관 소장) 《마르스와 비너스》(런던 내셔널갤러리 소장) 《토르나브오니 렌미가(家)의 별장에서 나온 벽화》(루브르미술관 소장)를 비롯하여 《비너스의 탄생》 《메라그라나의 성모》(87) 《산바르나바의 성모》(우피치미술관 소장) 등이 있다.
《비너스의 탄생》은 사실주의를 무시하고 양식화된 표현과 곡선의 묘미를 구사하여, 장식적 구도 속에 시적 세계를 표현한 걸작이다. 그러나 그 후의 대표적인 작품을 보면, 《수태고지》(89) 《성모대관(聖母戴冠)》(90, 우피치미술관 소장)처럼 차차 신비적인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다. 때마침 91년에 도미니크회의 영걸(英傑) 지롤라모 사보나롤라가 성마르코수도원 원장으로 부임하여, 메디치가의 이교주의적 정책과 피렌체의 퇴폐적 세태를 격렬한 예언자적 설교로 공격하기 시작하자, 보티첼리는 그 설교에 매혹되어 신비적인 경향을 더욱 강화시켰으며, 단테의 《신곡(神曲)》의 삽화에 열중하여, 조형(造形)예술가로서는 자멸의 길을 밟았다.
《카룬니아(비방)》(우피치미술관 소장) 《피에타》(뮌헨 알테 피나코테크 소장) 《게세마네 언덕의 기도》(그라나다 카필랴레알 소장) 《성(聖)히에로니무스의 최후의 만찬》(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소장) 등이 그런 경향을 보인다. 그러다가 98년 사보나롤라가 순교하자 보티첼리는 그의 슬픈 추종자로서 예언자적 신비주의로 변모하였으며, 1501년 제작한 《신비의 강탄(降誕)》(런던 내셔널갤러러 소장)이나 《신비의 십자가》(미국 케임브리지 포그미술관 소장)와 같은 신비적 환상으로 가득 찬 작품을 그렸다. 1504년 미켈란젤로의 다윗상의 설치장소를 심의하는 위원회에 레오나르도 다 빈치 등과 함께 출석하였으나, 그 후 그는 제작활동을 거의 중단하고 소식마저 끊었다.
치마부에 : 이탈리아의 피렌체화파의 시조.
본명 Bencivieni di Pepo. B.조토의 스승이라고 하나 확증은 없다. 문헌상의 사실로는 1272년 로마에 있었고, 1301년에 피사에서 산타키아라성당의 성모자도를 그렸다는 것과, 그해부터 그 이듬해에 피사대성당 제실(祭室)에 모자이크 장식으로 성요하네상을 만들었다는 것 등을 들 수 있을 뿐이다.
같은 시대의 시인 단테의 《신곡(神曲)》의 <지옥편> 제11가(歌)에서 “그림에서는 치마부에가 패자(覇者)의 자리를 유지한다고 생각하는데, 지금에 와서는 조토의 명성만이 높고 그의 이름은 희미하게 되었네”라는 것만 보아도 그가 조토 이전의 화단에서 이름을 떨쳤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전기작가(傳記作家) G.바사리도 그의 《미술가열전》(1550)을 치마부에부터 쓰기 시작하였다.
그의 작품으로 인정되는 것에는 현재 피렌체의 우피치미술관에 있는 《성삼위일체의 성모》(1290), 산타크로체성당의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 아레초의 성도미니크성당의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 루브르미술관의 《성모자 제단화》 등이 있다. 피사대성당의 《복음서 저자 성요한》, 최대 걸작이라고 하는 아시시의 성프란체스코성당의 벽화 《그리스도 책형(刑)》과 《성모자와 4천사 및 성프란체스코》는 아직 비잔틴 화풍을 남기고는 있지만, 그 늠름한 조형 의욕과 자상한 감성의 추구에서 르네상스의 여명을 보여주고, 조토에 의하여 실현되는 신회화(新繪畵)의 탄생을 예고하였다.
지오르지네 : 이탈리아의 화가. 본명 Giorgio Barbarelii. 베네토 지방의 카스텔프랑코 출생.
르네상스 최성기의 베네치아파 화가로 조르조네라는 이름은 그가 명성을 얻은 후 대(大)조르조라는 뜻으로 붙여진 통칭이다.
1495년경 베네치아로 가서 G.벨리니에게 그림을 사사하였는데, 천부적인 재능으로 동시대의 베네치아화가들을 단연 능가하였고, 티치아노에 이어지는 최성기의 르네상스양식을 확립하였다.
최대 걸작인 《잠자는 비너스》(드레스덴회화관 소장)와 《전원(田園)의 합주(合奏)》(루브르미술관 소장)는 근대미술로 발전한 나체화의 기조를 만들었다. 그 밖에 주요작품으로 《3명의 철학가》 《폭풍우》 《솔로몬의 심판》 《성(聖)프란체스코와 성(聖)조르조를 동반한 성모》 등이 있다.
지오토 : 이탈리아의 화가·조각가·건축가.
피렌체파 회화의 창시자로서 그 명성은 동시대의 시인 단테의 《신곡》 <연옥편 제11가>에서 G.치마부에와 대비, 찬양되고, F.페트라르카나 보카치오 등의 저작에서도 나온다.
그러나 초기의 미술활동에 관한 확실한 문헌은 없고, 소년시절 양(羊)을 사생하고 있을 때 치마부에에게 발견되어 그의 문하에 들어갔다는 일화가 있다.
초기의 주요작 아시시의 산프란체스코성당 상원(上院)의 벽화 《성프란체스코전(傳)》 28도(圖)에 관해서는, 의문시하는 학자도 있어 논의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새에 설교하는 성프란체스코》 등 몇 점의 그림은 조토의 작품으로 간주되고 있다. 또 《성인전(聖人傳)》 상단(上段)의 로마화파에 속하는 《구·신약회전(舊·新約繪傳)》 중의 몇 점(<이삭의 이야기>나 <그리스도에게 통곡하다> 등)도 성인전에 앞선 조토의 작품으로 간주된다.
대표적인 작품은 파도바의 산타마리아 아라 아레나성당(별칭 스크로베니예배당)의 내부를 장식한 《마리아와 그리스도의 이야기》 37도, 우의상(寓意像) 14도, 《최후의 심판》 등의 벽화군(1305년경)이다. 화면의 간명한 합리적 구성, 인물상의 조형성, 극적 내용의 심리적 표현 등에서 획기적인 기법을 보였다. 그 직후의 걸작은 피렌체의 온니산티성당에 그린 제단화 《장엄한 성모》(우피치미술관 소장)이다.
그의 미술사적 의의는, 선배 치마부에의 비잔틴주의를 극복함과 동시에, 조각가 N.피사노나 로마화파 카발리니 등의 영향을 발전시켜, 그림을 그리스도교 교의(敎義)의 그림해석으로부터 해방, 인간성과 종교성이 융합한 예술적 표현의 세계로 높인 데 있다. 거기서는 주제로서 필요한 것만이 파악, 단순화되어 있다.
화면은 인물과 공간과의 합리적인 연관으로 무대적으로 구성됨과 동시에, 인물상은 조형적으로 형태화되어 각각 마음의 움직임이 개성적으로 표현되었다. 이탈리아 회화의 창시자로 불리며, 정신성과 현실성과의 종합으로 고딕회화를 완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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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05.14
  • 저작시기2004.0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5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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