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공정
본 자료는 2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해당 자료는 2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2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동북공정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머리말

Ⅱ.본론
1. 화이관과 소중화의식
2. 북벌론의 전개
3. 존주론과 조선중화주의
4. 화이관의 변화와 북벌론
5. 실학과 실학서

Ⅲ. 맺음말

본문내용

또한 군비확충을 꾀하여 중앙군 병력을 금군 1000명, 어영청 2만명, 훈련도감 1만명으로 증강했으며 기병강화를 위해 금군의 완전기병화를 추진하고 군기와 전술개량에도 힘을 기울여 네덜란드의 표류인 하멜의 도움을 받아 조총을 개량하였다.
북벌운동의 성격으로서 거론되는 것이 효종의 북벌사상이 당시로서는 혁신적이라 할만큼 진보적인 것이었다고 보고 이를 우리민족 내부에 잠재해 있던 북진사상과 결부지어 보고 있다. 따라서 이 북벌운동은 그 역사적 정통성과 유구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 견해에서는 지금까지 효종조의 북벌운동이 한낱 명분적이었다고 인식하고 있는 입장에 대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실을 들어 비판하고 있다.
첫째로, '북벌운동'이 조선조 후기에 정치상황의 변천에 따라 송시열적 '북벌론'으로 그 성격이 변질해 버렸다고 한다.
둘째로, 북벌론 연구에 관한 문헌상의 문제점도 지적하고 있다. 지금까지 『효종실록』 등 제1차 사료가 무시된 채 일정한 한계가 있는 송시열의 개인문집인 『송자대전』 에 전적으로 의존해 왔다고 한다.
위에서 북벌론을 둘러싼 두 가지 대립된 견해를 간단하게나마 살펴보았다. 그 북벌론의 진의에 대해 판단을 내리기는 상당히 곤란한 측면이 있다. 어떤 입장에 서더라도 각기 타당한 일면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북벌론을 정리하면서 연암 박지원이 지은 허생전을 떠올려 보았다. 연암은 이 허생전에서 북벌을 도울 인재를 찾아온 이완장군을 통렬하게 꾸짖고 있다. 허생의 입을 빌려 허례허식에 빠져 있으면서 말로만 북벌을 떠들고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위정자들과 우리 나라의 실정을 파헤치면서 북벌의 허구성을 통렬하게 꾸짖고 있었다. 물론 연암이 시기적으로 효종대로부터 후대인으로서 북벌운동이 수그러들고 북학사상이 대두되는 시기에 살았기에 그의 입장을 두둔할 수만은 없다할지라도 그의 의견은 충분히 검토할만하다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변방의 오랑캐로 멸시해오던 여진족에게 그런 치욕적인 항복을 당하여 조선왕조의 권위와 자존심이 상한 것은 충분히 상상이 간다. 또한 임진왜란 때 조선에 원병을 보내준 명에 대한 의리를 지키려는 유학자들의 그 충심 또한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몇 차례의 침략을 당하고 황폐해진 조선사회에서 과연 그 많은 민들은 또 다시 피비린내나는 전쟁을 원했겠는가 이것은 당시의 상황으로 보면 불가능 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당시의 상황을 고려할 때 효종조의 북벌운동은 변화해가는 국제질서의 흐름을 읽지 못한 채 대의명분에 빠져 현실을 도외시한 결과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더욱이 북벌계획에 의해 실제로 강화된 군대는 왕의 친위군과 수도경비 군사력의 강화에만 그쳤고 또한 1659년 효종이 서거하자, 북벌계획이 중단되어 버린 사실을 볼 때 팽배해있던 민들의 불만을 밖으로 돌리기 위한 임시방편책으로 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지배계층의 실천성없는 북벌의식은 중국을 지배하고 있는 청나라의 문화를 선진문화로 인정치 않고 중국문화 수입을 봉쇄함으로써 문화적 쇄국주의를 가져왔다고 생각한다.

키워드

  • 가격1,300
  • 페이지수7페이지
  • 등록일2004.06.15
  • 저작시기2004.0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55638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