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의 역사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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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의 도움을 받아 나라를 회복하게 되었으나, 이후로 그 이전의 국력을 회복하지 못하였다. 게다가 4세기에 이르러 진(晉)나라가 북방민족에게 쫓겨 남쪽으로 옮겨가고, 고구려의 공격까지 받게 되자 더 이상 원래의 중심지를 유지하기 어려워진 부여는 서쪽으로 근거지를 옮기게 된다.
그 이후 부여는 346년 전연(前燕)왕 모용황의 침입으로 큰 타격을 입고 급격히 국력이 기울어졌다. 그러나, 이 때에 부여가 멸망했다고 볼 수는 없다. 침입했던 연 나라군대가 귀환하자 부여인 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자 하였다. 당시는, 북중국 방면으로 진출하기 시작한 연이 부여에 대한 압력을 늦추었고, 고구려도 연의 침입과 남쪽의 백제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에 집중하고 있을 때였다.
근근히 명맥을 유지하던 부여는 5세기 광개토왕의 대규모 정벌로 고구려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하여 부여왕은 고구려가 부여 지역을 다스리기 위한 방편으로서 유지될 뿐이었다. 그리고 5세기말에 이르러 국왕과 그 일족이 고구려에 망명, 항복해 온 것으로 부여는 완전히 멸망하게 된다.
<참고>
이복규, [부여 고구려 건국신화 연구] (집문당)
서병규, [동이족과 부여의 역사] (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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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06.19
  • 저작시기2004.0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56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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