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노동 - 인간과 자연의 물질 대사
- 인간과 자연의 관계
- 인간의 노동
- 조각가
- 도구의 사용
- 인간은 개인적으로 생산하지 않는다.
2. 죽음과 노동 -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
-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
- 근대적 주관의 지평
3. 소외된 노동의 구조 -마르크스의 비판
4. 인간 소외와 노동
- 상품
- 상품물신성
- 인간 노동의 이중적 구조 - 구체적 노동과 추상적 노동
5. 결론
- 인간과 자연의 관계
- 인간의 노동
- 조각가
- 도구의 사용
- 인간은 개인적으로 생산하지 않는다.
2. 죽음과 노동 -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
-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
- 근대적 주관의 지평
3. 소외된 노동의 구조 -마르크스의 비판
4. 인간 소외와 노동
- 상품
- 상품물신성
- 인간 노동의 이중적 구조 - 구체적 노동과 추상적 노동
5. 결론
본문내용
면이 아니라 형식적 측면, 즉 어느 만큼의 화폐로 구입될 수 있는지가 관심의 대상이 될 뿐이다. 자기가 소비하는 물건의 취득이 화폐를 통해 기계적이고 무차별적으로 이루어짐에 따라, 주위의 세계는 색깔을 잃고 공허한 공간이 되어 버린다. 사람들은 그 공허함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친다. 강렬한 자극과 긴장을 추구한다.
/ 인간 노동의 이중적 구조 - 구체적 노동과 추상적 노동
인간의 노동은 한편으로 특정의 유용성을 갖는 물건을 만들어 내기 위해 특정의 변형 과정을 거친다는 측면이 있다. 이것을 구체적 노동이라 한다. 다른 한편 노동은 일정한 시간 동안 인간의 두뇌와 근육을 사용하여 노고를 감수한다는 측면이 있다. 이것을 추상적 노동이라 한다. 노동 생산물이 상품일 경우 추상적 노동이 반영되어 가치를 이루고, 이는 결국 화폐에 의해 가격으로 표시된다. 구체적 노동은 상품의 사용 가치, 즉 유용성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상품은 교환되어야 하고, 교환은 가치에 따라야 하기 때문에, 상품 생산의 노동은 추상성이 구체성을 압도할 수밖에 없게 된다. 노동의 추상성이 압도하게 되면, 무엇을 어떻게 만드느냐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가 되고, 몇 시간 고생해서 얼마를 버느냐가 본질적인 문제가 된다.
이렇게 노동 과정이 단순히 돈벌이를 위한 노고가 된다면, 노동의 긍정적 의미는 어디서 찾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그 노동의 산물이 자본가에게 귀속된다면, 더군다나 그 노동 과정이 자본가에 의해 통제된다면?
5. 결론
인간 소외를 극복하려면 노동의 긍정적 의미를 회복해야 한다. 앞서 이야기했던 조각가의 노동처럼 긍정적 노동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 과연 그것은 가능한 일일까? 노동이 인간 본질의 실현 과정이 되려면, 먼저 노동의 주체성이 회복되야 하고. 그 다음에 노동의 창조성이 회복되어야 한다. 노동의 구체성이 우위에 있기 위해서는 사회 관계가 어떻게 되어야 할까? 그것은 어떻게 해서 이루어질 수 있을까? 노동의 구조를 바꾼다는 것은,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혁한다는 것을 뜻한다. 사회 변혁은 엄청난 작업이다.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 참고문헌 ●
한국철학사상연구회, 노동과 소외, 자연과 의식, 역사와 변혁, 삶, 사회 그리고 과학, 동녘, 1991.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건강한 욕망, 병든 욕망, 노동과 소외, 상품과 근대 사회, 삶과 철학, 동녘, 1994.
김호균, 신정치경제학개론, 이론과 실천, 1993.
/ 인간 노동의 이중적 구조 - 구체적 노동과 추상적 노동
인간의 노동은 한편으로 특정의 유용성을 갖는 물건을 만들어 내기 위해 특정의 변형 과정을 거친다는 측면이 있다. 이것을 구체적 노동이라 한다. 다른 한편 노동은 일정한 시간 동안 인간의 두뇌와 근육을 사용하여 노고를 감수한다는 측면이 있다. 이것을 추상적 노동이라 한다. 노동 생산물이 상품일 경우 추상적 노동이 반영되어 가치를 이루고, 이는 결국 화폐에 의해 가격으로 표시된다. 구체적 노동은 상품의 사용 가치, 즉 유용성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상품은 교환되어야 하고, 교환은 가치에 따라야 하기 때문에, 상품 생산의 노동은 추상성이 구체성을 압도할 수밖에 없게 된다. 노동의 추상성이 압도하게 되면, 무엇을 어떻게 만드느냐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가 되고, 몇 시간 고생해서 얼마를 버느냐가 본질적인 문제가 된다.
이렇게 노동 과정이 단순히 돈벌이를 위한 노고가 된다면, 노동의 긍정적 의미는 어디서 찾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그 노동의 산물이 자본가에게 귀속된다면, 더군다나 그 노동 과정이 자본가에 의해 통제된다면?
5. 결론
인간 소외를 극복하려면 노동의 긍정적 의미를 회복해야 한다. 앞서 이야기했던 조각가의 노동처럼 긍정적 노동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 과연 그것은 가능한 일일까? 노동이 인간 본질의 실현 과정이 되려면, 먼저 노동의 주체성이 회복되야 하고. 그 다음에 노동의 창조성이 회복되어야 한다. 노동의 구체성이 우위에 있기 위해서는 사회 관계가 어떻게 되어야 할까? 그것은 어떻게 해서 이루어질 수 있을까? 노동의 구조를 바꾼다는 것은,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혁한다는 것을 뜻한다. 사회 변혁은 엄청난 작업이다.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 참고문헌 ●
한국철학사상연구회, 노동과 소외, 자연과 의식, 역사와 변혁, 삶, 사회 그리고 과학, 동녘, 1991.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건강한 욕망, 병든 욕망, 노동과 소외, 상품과 근대 사회, 삶과 철학, 동녘, 1994.
김호균, 신정치경제학개론, 이론과 실천, 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