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바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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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칼바르트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 칼 바르트의 생애

- 칼바르트의 신학

- 생애에 따른 신학의 변화

- 로마서 1판과 2판의 내용

- 로마서 강해 제2판의 신학적 내용

본문내용

그분의 사랑, 그분의 은총, 그분의 약속의 불변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인격성은 흔들리지 않는 반석이다. 즉, 하나님의 약속과 은총과 사랑이 영원토록 변치 않는다는 것이다.
네 번째, 하나님의 전능하심
이 전능하심을 하나님이 악을 행할 수 있다. 그런 의미의 전능하심은 아니다. 하나님은 자기 자신속에 근거가 없는 일을 행하실 수 없다.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다는 의미의 전능하심은 아니다. 바르트 신학에서 특별히 눈길을 끄는 것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하나님의 무능하심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바르트의 십자가의 신학의 귀결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십자가의 무능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십자가를 보니 사랑 때문에 무능해진 신이 계시되어져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에게 반역하는 자를 때리고 심판하고 힘으로 승리하는, 다시 말해서 그의 전능한 힘으로 정복해서 승리하는 신이 아니고, 저항할 수 없는 사랑과 거대한 은총의 힘으로 승리하신다. 그의 능력은 멸시받음과 순종 속에 나타난다. 만군의 주님께서 승리하시는 길이 바로 여기에 계시되어 있다. 하나님의 능력은 십자가의 능력이고 십자가 속에서 완성되었다. 모든 사람을 참으로 굴복시키는 힘이 십자가 속에 계시되어 있다.
C. 예정론
예정이란, 하나님의 예정이 이중적이다. 즉 선택과 유기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유기는 버린다는 말이다. 영원전부터 하나님은 일군의 무리를 선택으로, 영원복락으로 예정하시고, 일군의 무리는 저주로, 영원한 형벌로 예정하셨다. 이것은 우리가 태어나기도 이전에 창세전에 일어난 하나님의 결정이다.
첫째, 무시무시한 하나님의 이중예정교리는 잘못되었다고 우선 첫째로 말할 수 있다. 영원전에 일군의 무리는 영원한 축복으로, 일군의 무리는 영원한 저주로 예정했다는 그런 의미에서 전통적 이중예정의교리는 잘 못된 교리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한사람까지도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사랑의 신이지, 영원전에 일군의 무리를 지옥에 보내시려고 작정하시고 그대로 일군의 무리를 지옥에 보내시는 그런 하나님은 없다.
두 번째, 예정론은 복음의 총화다. 칼바르트가 강조한 것이다. 엡1:4-5, 창세전에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안에서 그 안에서 ....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창세전에 하나님이 어떤 거룩하신 경륜과 예정이 일어났는데 그 예정의 핵은 예수 그리스도, 예수그리스도안에서 우리를 살리려고 하는 은총의 결의가 영원전에 일어났다는 것이다.
세 번째, 예정론은 선행하는 하나님의 은총을 전하는 교리이다. 예정론은 근본적으로 복음을 요약한 것이다. 하나님이 영원 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하셨다. 예수 그리스를 예배하시고 교회를 하시고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의 삶을 마지막 구원하실 때까지 그렇게 인도해 가신다는 것이다. 복음을 요약한 교리가 예정론이다. 예정론은 하나님의 섭리론의 핵심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섭리하고 계신 것이다. 그 위대한 섭리론의 중심에 들어 있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예정이다.
D. 삼위일체론
칼바르트는 삼위일체론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했고, 자신의 교회교의학의 뼈대로 놓았다.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자기계시의 사건으로 이해했다. 그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하나님 자신의 계시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계시된 하나님이시다. 바르트의 삼위일체론의 서방교회의 삼위일체론을 계승한 것이다. 터툴리안의 삼위일체론을 정확하게 현대의 독일어로 번역한 것이다. 그래서, 터툴리안 처럼 양태론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서방교회의 삼위일체론은 하나님을 한 분이라는 전제를 가지고 세분이심을 보여주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동방교회에서는 세분이라는 전제에서 하나이심을 추구한다.
삼위일체론이란 것은 3=1 이라는 논리적 모순을 설명하려는 교리가 아니다. 이 삼위일체론이란 교리는 세분 하나님이 함께 존재하고 상호 침투하고 있는 소위 페리코레시스, 초대교회 교부들의 표현을 그대로 인용하면, 페리코레시스로 존재하고 있는 하나님의 존재의 신비한 존재의 양태를 설명하려고 하는 교리가 삼위일체 교리이다. 그래서, 초대교회가 만들어 놓은 사변이 아니고 성경의 그 깊은 차원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대단히 중요한 교리다.
E 인간론
바르트는 인간을 참으로 알 수 있는 곳은 계시,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인간의 참된 모습을 알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참된 인간이 그 안에서 인간의 참된 모습, 참된 본질을 발견할 수 있다.
크게 두 가지 시각으로 나누어서 보았다. 첫째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둘째는 이웃 인간과의 관계에서 인식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볼 때 인간은 하나님을 위해 존재하는 존재로 보았다. 하나님을 위한 존재다.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하는 존재다. 또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나누어서 생각해 보면,
첫째,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이고 동시에 죄인이다. 인간은 전능한 신이 아니고 첫째로 인간은 피조물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본질은 죄인이라는 것이다.
둘째는, 인간은 왕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십자가를 통해서 보면 죄인인데, 인간의 죄를 짊어지고 죽으셨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것이 정확하게 계시되어 있다는 것이다.
F 화해론
칼바르트의 화해론은 객관적 화해론이라고 한다. 객관적 화해론이란 것은 주관적 화해론과 대립되는 개념이다. 객관적 화해론이란 것은 우리가 언제 화해가 되었느냐? 화해된 순간이 언제냐 하는 시점에 대한 문제인데,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을 때 예수께서 만민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셨기 때문에 그리고 만민을 하나님과 화해시키셨기 때문에, 죽으신 그 순간에 하나님과 화해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바르트에 의하면 만민은 하나님과 화해되어 있다는 것이다. 내가 예수를 믿고 있느냐 믿고 있지 않느냐와는 관계없이 십자가에서 예수께서 돌아가셨을 때 만민의 죄를 지고 돌아가셨기 때문에 만민의 죄를 이미 해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만민은 객관적으로 하나님과 화해되어 있다는 뜻이다. 만민은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생각은 주관적 화해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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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06.28
  • 저작시기2004.0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57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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