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 론
Ⅱ. 본 론
A. 브루너의 생애
B. 브루너와 바르트
1. 브루너와 바르트의 공통점
2. 브루너와 바르트의 신학논쟁(차이점)
C. 만남으로서의 계시
D. 브루너의 신학에 대한 비판
Ⅲ. 결 론
Ⅱ. 본 론
A. 브루너의 생애
B. 브루너와 바르트
1. 브루너와 바르트의 공통점
2. 브루너와 바르트의 신학논쟁(차이점)
C. 만남으로서의 계시
D. 브루너의 신학에 대한 비판
Ⅲ. 결 론
본문내용
증거였다.
그러나 브루너가 이렇게 인간의 말과 하나님의 말씀이 일치하는 이 한 번의 경우를 인정하게 되자, 명제적 진리와 신적 계시 사이에 그어져 있던 선명한 '차원적 구분'은 깨져 버렸다.
D. 브루너의 신학에 대한 비판
현대에 있어서 급진적인 독창성만이 진실로 위대한 신학자의 정수로 여겨지는 경우가 왕왕 있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브루너는 보통 우리가 말하는 의미로 급진적이거나 독착적이 되려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극단적인 보수주의나 극단적인 자유주의의 양극단이 가지는 오류들을 피하여 고전적인 개혁신학을 현대적으로 재조명하는데 관심을 기울였다.
Ibid., 132-133.
이것들 중 어떤 것들은 우리가 다시 한번 새겨보고 본받아야만 할 것들도 있다.
또한 브루너의 인간적인 면들-그의 가정에서의 따뜻하고 성실한 모습, 인격에 대한 강조, 하나님을 사랑하고, 제3세계의 필요를 위해 기꺼이 노쇠한 몸을 이끌고 떠나갔던 그의 용감함- 도 현대의 각박하고 메마른 신학과 교회생활에 신음하는 우리들에게 신선하고도 따뜻한 감동을 전해준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치명적인 문제점들을 갖고 있다. 그는 바르트의 초월성과 자유주의의 내재성 사이에서 중도를 찾아내려고 하다가 결국에는 자기 정체를 잃어버린 사람이 되고 말았다.
위에서 우리가 살펴본 바와 같이 브루너는 계시된 성경자체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고 있지 않다. 요한복음에 대한 그의 주장을 본바와 같이 그는 성경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고 있지 않으며, 따라서 성경에 부여되어야 할 절대적인 권위를 한 단계 낮은 뛰어난 권위정도에 그치게 하고 있다. 따라서 절대적 진리로서의 성경의 권위는 약화되며, 하나님을 분명히 알 수 있는 계시로서의 성경의 지위도 사라지게 된다.
만남으로서의 계시를 주장하는 브루너에 대해 던져진 "어떻게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성육하신 말씀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브루너는 이렇게 대답했다. "증명 가능한 계시가 여전히 참다운 계시일 수 있는가?", "증명될 수 있는 신이 도대체 어떤 모양의 신이겠는가?"
에밀 브루너, 58-59.
이러한 주장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나는 이렇게 질문하고 싶다. "그럼 하나님은 자기 자신에 대해 알릴 만한 능력도 가지고 계시지 않은 분인가? 그리고 그 분은 인간과 대화하시기 위해 인간의 언어를 사용해서 자신을 계시하실 수 없는 분인가?"라고 말이다. 브루너의 계시론에 의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지식을 얻는다는 것은 매우 불투명하며 기대하기 어렵다. 물론 어느 정도 브루너가 성경에 권위를 두고 있지만, 절대적 권위가 주어지지 않는 성경에서 어느 것이 하나님의 말씀인가를 찾아낸다는 것은 지뢰밭을 걷는 모험과 같을 것이다.
그리고 브루너가 말한 만남으로서의 계시인 '당신-진리'의 구조에서 얻어지는 지식, 즉 하나님 자신을 알리는 계시도 그것이 진정으로 계시이고, 진리인가를 규명하는 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결국 브루너가 말한 바와 같이 성경의 절대성을 부인하게 되면 우리를 구원할 유일한 구명조끼를 벗어버리는 셈이 된다. 그리고 그 결과는 망망대해에서 죽도록 헤엄을 치며 유리하던지 아니면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일 뿐이다.
성경은 성경저작의 영감설을 분명히 지지하고 있다. 몇 가지 구절을 살펴보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 3:16-17),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벧후 1:20-21),
메이첸의 말로 본 장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기독교적 체험은 그것이 우리를 도와 신약성경에 수록된 제 사건이 실지로 일어났다는 것을 확신시킬 때, 정당하게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 사건의 발생 여부를 막론하고 우리를 기독신자가 되게 할 수는 없다. 그것은 아름다운 꽃이며 따라서 신의 선물로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성경 중에 있는 그의 뿌리로부터 그 꽃을 끊어 보라. 그러면 곧 그것은 시들어져 죽을 것이다."
그레샴 메이첸,「기독교와 자유주의」(서울 : 크리스챤비젼하우스, 2001), 101.
Ⅲ. 결 론
이제 글을 맺을 때가 왔다. 글을 쓰며 계속 필자의 지식의 한계와 이해의 협소함에 안타까웠고, 혹여 허공을 치는 글이 되지는 않았는지 탈고에 앞서 염려가 앞선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 자체가 신학의 바다로 뛰어드는 귀한 계기가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 소논문을 준비하느라 몇 권의 책을 읽어나가며, 마음 속에 계속 생각한 것 한 가지는 개혁자들이 외친 '성경으로 돌아가자'라는 구호였다. 길을 안내 받을 수 있는 지침이 있다는 것, 행동을 달아보고, 우리가 경험하고, 이해한 것이 바른 것인가를 알아볼 수 있는 기준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그리고 또한 그것은 결코 다른 것으로 대치될 수도 없는 소중한 기쁨이다.
개혁자들의 신학으로 신앙으로 돌아가자.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도록…. 또한 지속적으로 발전되어 가는 신학을 방관만 하지말고,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이 세대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나가자. 개혁자들의 철저한 성경으로 돌아감과 사회에 대한 책임을 지는 봉사의 그 균형을 잃지 않도록 하자.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성경의 무오성을 부인하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임을 선포하자. 주님이 오시는 그 날까지….
참고서적
간하배.「현대신학해설」서울 : 개혁주의신행협회, 1998.
그레샴 메이첸.「기독교와 자유주의」서울 : 크리스챤비젼하우스, 2001.
맹용길.「현대신학사상」서울 : 성광문화사, 1996.
목창균.「현대 신학 해설」서울 : 도서출판 두란노, 1995.
스탠리 그렌츠, 로저 올슨.「20세기 신학」서울 :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1998.
에밀 브루너.「위기의 신학」서울 : 성광문화사, 1991.
그러나 브루너가 이렇게 인간의 말과 하나님의 말씀이 일치하는 이 한 번의 경우를 인정하게 되자, 명제적 진리와 신적 계시 사이에 그어져 있던 선명한 '차원적 구분'은 깨져 버렸다.
D. 브루너의 신학에 대한 비판
현대에 있어서 급진적인 독창성만이 진실로 위대한 신학자의 정수로 여겨지는 경우가 왕왕 있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브루너는 보통 우리가 말하는 의미로 급진적이거나 독착적이 되려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극단적인 보수주의나 극단적인 자유주의의 양극단이 가지는 오류들을 피하여 고전적인 개혁신학을 현대적으로 재조명하는데 관심을 기울였다.
Ibid., 132-133.
이것들 중 어떤 것들은 우리가 다시 한번 새겨보고 본받아야만 할 것들도 있다.
또한 브루너의 인간적인 면들-그의 가정에서의 따뜻하고 성실한 모습, 인격에 대한 강조, 하나님을 사랑하고, 제3세계의 필요를 위해 기꺼이 노쇠한 몸을 이끌고 떠나갔던 그의 용감함- 도 현대의 각박하고 메마른 신학과 교회생활에 신음하는 우리들에게 신선하고도 따뜻한 감동을 전해준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치명적인 문제점들을 갖고 있다. 그는 바르트의 초월성과 자유주의의 내재성 사이에서 중도를 찾아내려고 하다가 결국에는 자기 정체를 잃어버린 사람이 되고 말았다.
위에서 우리가 살펴본 바와 같이 브루너는 계시된 성경자체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고 있지 않다. 요한복음에 대한 그의 주장을 본바와 같이 그는 성경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고 있지 않으며, 따라서 성경에 부여되어야 할 절대적인 권위를 한 단계 낮은 뛰어난 권위정도에 그치게 하고 있다. 따라서 절대적 진리로서의 성경의 권위는 약화되며, 하나님을 분명히 알 수 있는 계시로서의 성경의 지위도 사라지게 된다.
만남으로서의 계시를 주장하는 브루너에 대해 던져진 "어떻게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성육하신 말씀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브루너는 이렇게 대답했다. "증명 가능한 계시가 여전히 참다운 계시일 수 있는가?", "증명될 수 있는 신이 도대체 어떤 모양의 신이겠는가?"
에밀 브루너, 58-59.
이러한 주장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나는 이렇게 질문하고 싶다. "그럼 하나님은 자기 자신에 대해 알릴 만한 능력도 가지고 계시지 않은 분인가? 그리고 그 분은 인간과 대화하시기 위해 인간의 언어를 사용해서 자신을 계시하실 수 없는 분인가?"라고 말이다. 브루너의 계시론에 의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지식을 얻는다는 것은 매우 불투명하며 기대하기 어렵다. 물론 어느 정도 브루너가 성경에 권위를 두고 있지만, 절대적 권위가 주어지지 않는 성경에서 어느 것이 하나님의 말씀인가를 찾아낸다는 것은 지뢰밭을 걷는 모험과 같을 것이다.
그리고 브루너가 말한 만남으로서의 계시인 '당신-진리'의 구조에서 얻어지는 지식, 즉 하나님 자신을 알리는 계시도 그것이 진정으로 계시이고, 진리인가를 규명하는 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결국 브루너가 말한 바와 같이 성경의 절대성을 부인하게 되면 우리를 구원할 유일한 구명조끼를 벗어버리는 셈이 된다. 그리고 그 결과는 망망대해에서 죽도록 헤엄을 치며 유리하던지 아니면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일 뿐이다.
성경은 성경저작의 영감설을 분명히 지지하고 있다. 몇 가지 구절을 살펴보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 3:16-17),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벧후 1:20-21),
메이첸의 말로 본 장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기독교적 체험은 그것이 우리를 도와 신약성경에 수록된 제 사건이 실지로 일어났다는 것을 확신시킬 때, 정당하게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 사건의 발생 여부를 막론하고 우리를 기독신자가 되게 할 수는 없다. 그것은 아름다운 꽃이며 따라서 신의 선물로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성경 중에 있는 그의 뿌리로부터 그 꽃을 끊어 보라. 그러면 곧 그것은 시들어져 죽을 것이다."
그레샴 메이첸,「기독교와 자유주의」(서울 : 크리스챤비젼하우스, 2001), 101.
Ⅲ. 결 론
이제 글을 맺을 때가 왔다. 글을 쓰며 계속 필자의 지식의 한계와 이해의 협소함에 안타까웠고, 혹여 허공을 치는 글이 되지는 않았는지 탈고에 앞서 염려가 앞선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 자체가 신학의 바다로 뛰어드는 귀한 계기가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 소논문을 준비하느라 몇 권의 책을 읽어나가며, 마음 속에 계속 생각한 것 한 가지는 개혁자들이 외친 '성경으로 돌아가자'라는 구호였다. 길을 안내 받을 수 있는 지침이 있다는 것, 행동을 달아보고, 우리가 경험하고, 이해한 것이 바른 것인가를 알아볼 수 있는 기준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그리고 또한 그것은 결코 다른 것으로 대치될 수도 없는 소중한 기쁨이다.
개혁자들의 신학으로 신앙으로 돌아가자.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도록…. 또한 지속적으로 발전되어 가는 신학을 방관만 하지말고,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이 세대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나가자. 개혁자들의 철저한 성경으로 돌아감과 사회에 대한 책임을 지는 봉사의 그 균형을 잃지 않도록 하자.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성경의 무오성을 부인하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임을 선포하자. 주님이 오시는 그 날까지….
참고서적
간하배.「현대신학해설」서울 : 개혁주의신행협회, 1998.
그레샴 메이첸.「기독교와 자유주의」서울 : 크리스챤비젼하우스, 2001.
맹용길.「현대신학사상」서울 : 성광문화사, 1996.
목창균.「현대 신학 해설」서울 : 도서출판 두란노, 1995.
스탠리 그렌츠, 로저 올슨.「20세기 신학」서울 :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1998.
에밀 브루너.「위기의 신학」서울 : 성광문화사,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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