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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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금강산에 대하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금강산의 四季

봄(금강산)

여름(봉래산)

가을(풍악산)

겨울(개골산)

유명한 인물

본문내용

풍경곡(豊慶曲)에 맞추어 북쪽을 향하여 춘다’고 하였다.
이는 임실 운서정 안내판에 ‘지금으로부터 2천여 년 전 진안 마이산의 두 신선과 임실 운수산의 두 신선이 하루는 이곳 오천강 기슭에 모여 목욕을 즐기고 있었는데 까마귀가 날아와 함께 어울리고 있을 때 네 선녀가 내려와 학발 신선들을 호위하고 사라졌다고 하며 그 후에도 그맘때면 선남선녀들이 내려와 놀았다고 한다’의 내용과 연관성이 있음을 암시해준다.
김대문이 지은 『화랑세기』에는 “사선은 신라 효소(재위 692~701) 때의 화랑(述郞·南郞·永郞·安詳)으로 모두 영남 혹은 영동사람이며 국선(國仙)이다’고 하였는데 출생연대는 확실치 않다. 또 이들 네 선동(仙童)이 그의 무리 3천 명과 더불어 바닷가에서 놀았다고 하였으며 강릉의 경포대와 한송정, 속초의 영랑호, 간성의 선유담, 삼일포의 사선정, 금강산의 사선봉 등의 땅이름이 남아 오늘까지 전해오고 있다. 임실 사선대의 사선(四仙)과 동해안의 사선은 동일인물인가, 아니면 다른 인물인가.
풍류도가 성행했던 신라에서는 신선설화가 적지 않았다. 신라의 사선이 활동했던 효소왕 때는 백제가 멸망한 의자왕 26년(660) 이후이므로 임실지역은 신라의 지배를 받고 있던 때이다. 따라서 경치좋은 곳을 찾아서 심신을 수련하던 신라의 사선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참고로 현재 전국에 걸쳐 있는 사선에 관한 땅이름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사선대: 전북 임실(대)·무주(바위)·경남 거창(대)·남해(고적)·충북 단양(바위) 등■ 사선루: 충북 단양
■ 사선암: 전북 무주(바위)·경남 의령(바위)
■ 사선정: 강원 명주(정)
■ 사선지: 충남 태안(신선지 마을)
■ 영랑(리·마을): 강원 횡성·원주·속초
■ 영랑호: 강원·속초
■ 영랑사: 충남 당진(절)
위의 지역들은 대부분 자연경관이 수려한 곳으로 사선이나 영랑이 놀았거나 심신을 수련한 곳들이다. 그러나 무주의 사선암은 ‘주위가 절경이어서 (중국의) 상산사호가 놀고 갔다는 전설이 있다’고 하였는데 진시황 때 네 사람(신선)이 우리나라에 온 기록은 없다. 사선 중 영랑은 일찍이 향미산(向彌山)에 들어가 도를 닦았는데 90세에 얼굴빛이 어린애 같았다고 하며 마한의 신녀 보덕(寶德) 등과 같이 속세 밖에서 노닐었다고 전한다. 그들은 도를 닦기도 하고 노래와 음악으로 즐기기도 하고 산수에 노닐며 먼 곳이라도 이르지 않는 곳이 없었다고 하였다. 고려시대 이인로(李仁老)는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사선랑은 신라시대의 나그네
낮이면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랐네
천년 동안 남긴 자취 추적해 보니
삼산에는 약초만이 남아 있더라.
유명한 인물
화랑도의 5인에 속하는 금강산 방면의 유오(遊娛)가 있다.
마의태자 - 신라는 후백제 견훤과 고려 태조 왕건의 신흥세력에 대항할 길이 없자 군신회의를 열고 고려에 항복할 것을 논의하였다. 태자는 천년사직을 하루 아침에 버릴 수 없다고 반대하였으나. 결국 고려에 귀부를 청하는 국서가 전달되었다. 태자는 통곡하며 개골산(금강산)에 들어가 베옷을 입고 초근목피로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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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7페이지
  • 등록일2004.07.05
  • 저작시기2004.07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59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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