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조선조 열녀전의 전개와 유형
ㄱ) 조선조 이전의 열녀전
ㄴ) 임란 이전(1516세기)
ㄷ) 양란 직후 (16세기 말17세기 전반)
ㄹ) 17세기18세기
ㅁ) 19세기20세기 초
2) 열행의 유형
1) 수절
2) 훼절 또는 정절 모해에 대한 저항
4) 복수와 헌신
4) 복수와 헌신
5) 신체 훼상
ㄱ) 조선조 이전의 열녀전
ㄴ) 임란 이전(1516세기)
ㄷ) 양란 직후 (16세기 말17세기 전반)
ㄹ) 17세기18세기
ㅁ) 19세기20세기 초
2) 열행의 유형
1) 수절
2) 훼절 또는 정절 모해에 대한 저항
4) 복수와 헌신
4) 복수와 헌신
5) 신체 훼상
본문내용
그러나 윤지당에게서 보이는 것처럼 남편의 죽음을 따르는 것만이 삼종지의가 아니라 부모 또는 남편의 원수를 갚는 것도 효, 절의 윤리적 테두리 위에서 받아드리고 있을 뿐 아니라 이를 실제로 실천한 여인들이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헌신이란 남편을 살리기 위해 부인이 자기 몸을 바치는 것을 의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여성에게 결혼자체가 헌신이라고 할 수 있다. 남편을 위해 순절하는 것은 물론이고 만사를 폐하고 오직 억울하게 죽은 남편의 원수를 갚기 위해 남은 생애를 보냐는 삶 역시 헌신이다. 열녀전의 열녀는 한결같이 남편이 병들면 목욕 제게하고 자신이 남편을 대신하여 죽기를 기원하거나 이것 역시 헌신적 행위일 것이다. 열녀들은 대부분에게 나타나는 이러한 보편적 헌신 외에 여인이 남편을 위해 죽었으나 남편은 살아남은 경우가 있는데 「서열녀송씨사」에서는 남편이 죽는 줄 알고 여인이 자결했으나 남편은 살아났고, 「엄열부전」에서는 자신 때문에 남편이 아프다는 점장이의 말을 듣고 여인은 자결했으나 남편은 건강을 회복하여 잘 살았다. 이들은 모두 19세의 작품으로 복수와 마찬가지로 열행의 유형이 여인의 목숨을 보
다 경시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 남편의 복수에 몸 바친 경우
① 최홍이녀(임윤지당)
「윤지당유고」에 수록되어있는 이전은 여성 작가가 쓴 유일한 열녀전이기도 하다. 최씨와 홍씨는 모녀간인데, 홍씨의 부친이 살해되자 두 사람은 원수를 갚는 것이 절개이고 효도라고 생각하면서 수년 간 틈을 엿보던 중 기회를 얻어 그를 죽이고 관에 자복한다. 작가는 일반적으로 열녀와 행위를 대장부의 그것과 비교하면서 사회적 의미로 확대하던 다른 사대부 작가들과 달리 이 두 여인의 복수를 '비록 남자라도 미칠 수 없다'고 하여 남녀의 우열로 평가 한 점에서, 이 작가가 평소 남녀의 불평등한 인식에 대한 반감을 갖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② 열녀 이씨전(김양근)
이씨는 소실로 남편이 적도에게 살해되자 자신의 몸도 몽둥이와 도끼로 맞아 숨이 넘어갈 위급한 지경에 있지만 적도의 음성과 얼굴을 기억해 두어 변고를 듣고 온 정실의 아들에게 귓속말로 매우 상세하게 알려 주어 결국 원수를 갚게 한다.
③열녀 임씨전(이가환)
하층민 여성인 임씨가 남편이 살해된 것을 모르는 척 하면서 기회를 엿보았다가 부자의 배를 갈라 죽이고 자신도 칼에 엎어져 죽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서 열녀 임씨는 일찌감치 부자의 속셈을 엿보다 그 속내를 짐작했고, 또 남편이 부자에게 살해되었음을 직감하고 그 복수를 냉정하게 준비하는 인물로 그려져 있다. 작가는 임씨의 열행 자체보다는 그 지혜와 용기를 칭찬하고 있다.
5) 신체 훼상
신체 훼상이 많이 나타난 것은 19세기 이후의 일로 남편의 목숨을 사리기 위해 자신의 살을 베어내어 구워 먹이거나 무명지를 짤라 그 피를 흘려 넣어주는 일이 빈번하게 나타났다. 그러나 이런 신체 훼상을 통한 남편의 구명은 순절보다 더 힘들거나 옳지 않은 것으로 보는 시각도 나타났으며, 이러한 신체 훼상의 열행은 청상과부의 맹목적이고 충동적인 행위가 아니며 그들의 행위에는 오직 남편을 위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자연스럽고 지극한 애정에 기인된 바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 몸을 베어 남편을 간호한 경우
① 생열녀전(이옥)
신씨 부인은 남편의 병을 고치기 위해 살을 베어 구워 먹이고, 그것으로 열녀의 정려는 바 았다. 작가는 이에 대해 살을 베어내는 것은 죽는 것보다 오히려 어렵고, 고약한 시아버지를 봉양하며 사는 것이 살을 베어 내는 것보더 더 어렵다고 하였다. 즉 이옥은 한 번 죽어 열녀가 되는 것보다 살아가면서 열행을 실천하는 것이 더욱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을 보여준다.
② 열부 상산 박씨전(전병순)
아전의 딸인 박씨는 여공과 글재주와 덕을 모두 갖춘 부인으로 남편이 몇 년간 병으로 뼈만 앙상히 남게 되자 넓적다리 살을 베어 먹였는데 며칠 안가 완쾌했고, 후에 남편이 명을 다해 먼저 죽게 되자 무명지를 짤라 그 피를 입에 넣어 소생시키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햇다. 남편이 죽고 나서 아들을 키워 장가까지 들이고 죽는다. 그는 넓적다리를 베어내고 손가락을 짜르는 것은 공자의 예법에서 경계한 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나 사정이 급박하니 얽매일 수 없다고 하여, 여성들의 행위가 무조건 의리를 이념화해서 순종하려 했던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③ 절부 변부인전(성해웅)
변부인의 행동은 조선 시대 교과서에 나옴직한 모범 그 자체이다. 변부인은 친정 부모를 효성으로 섬겼고, 위기 속에서도 의연히 남편을 내조하고, 병약한 남편을 지극히 간호하였다. 그러나 남편은 보람도 없이 죽고 변부인도 약을 먹고 따라 죽는다. 효와 열을 행하였는데도 복을 받지 못한 것을 보고 하늘이 변부인에게 준 것은 복이 아니라 명예라고 하고, 한 부인의 힘으로 지방의 백성을 안심시킨 공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Ⅲ. 결론
삼국시대는 유교가 중요시되는 사상체계였으므로 열녀관념도 존재했을 것이지만, 그것은 민간 층에까지 확산된 만큼 보편적인 것은 아니었다. 조선전기에 간행되고 배포된 자료들에도 이 같은 양상이 반복되거나 확장되어 있을 뿐, 새로운 시각이 나타나지 않는데 이 시기가 여성의 삶 속에 열녀이념이 뿌리내리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여성들은 학습된 이념을 자신의 것으로 오인하고 맹종하게 되어갔기 때문에 조선후기에는 열녀관념이 정착되는 시기였다.
전통적으로 열녀란 개가할 수 있는데도 개가하지 않은 여인을 의미했으나 시대에 따라 열녀의 의미도 변하여갔으며, 우리 사회의 열녀관은 극단적이고 과격하기조차 한 것이었다. 남편이 죽으면 자살을 하거나, 한편 외간 남성에게 손을 잡혔다고 투신 자살을 감행하거나, 한편 남성측으로부터 자살을 권유 내지 강제 당하는 상황으로까지 치달았다. 열녀의 존재는 인간 비극이 표상이고 그들의 삶은 여성 종속과 인간성 박탈의 극치를 이루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여성의 존재와 지위를 다시 한번 인식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 참고 문헌
한국고전여성문학회 「조선시대의 열녀담론」월인 2002
박 주 「조선시대의 효와 여성」국학자료원 2000
이혜순 외 「한국의 열녀전」월인 2002
헌신이란 남편을 살리기 위해 부인이 자기 몸을 바치는 것을 의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여성에게 결혼자체가 헌신이라고 할 수 있다. 남편을 위해 순절하는 것은 물론이고 만사를 폐하고 오직 억울하게 죽은 남편의 원수를 갚기 위해 남은 생애를 보냐는 삶 역시 헌신이다. 열녀전의 열녀는 한결같이 남편이 병들면 목욕 제게하고 자신이 남편을 대신하여 죽기를 기원하거나 이것 역시 헌신적 행위일 것이다. 열녀들은 대부분에게 나타나는 이러한 보편적 헌신 외에 여인이 남편을 위해 죽었으나 남편은 살아남은 경우가 있는데 「서열녀송씨사」에서는 남편이 죽는 줄 알고 여인이 자결했으나 남편은 살아났고, 「엄열부전」에서는 자신 때문에 남편이 아프다는 점장이의 말을 듣고 여인은 자결했으나 남편은 건강을 회복하여 잘 살았다. 이들은 모두 19세의 작품으로 복수와 마찬가지로 열행의 유형이 여인의 목숨을 보
다 경시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 남편의 복수에 몸 바친 경우
① 최홍이녀(임윤지당)
「윤지당유고」에 수록되어있는 이전은 여성 작가가 쓴 유일한 열녀전이기도 하다. 최씨와 홍씨는 모녀간인데, 홍씨의 부친이 살해되자 두 사람은 원수를 갚는 것이 절개이고 효도라고 생각하면서 수년 간 틈을 엿보던 중 기회를 얻어 그를 죽이고 관에 자복한다. 작가는 일반적으로 열녀와 행위를 대장부의 그것과 비교하면서 사회적 의미로 확대하던 다른 사대부 작가들과 달리 이 두 여인의 복수를 '비록 남자라도 미칠 수 없다'고 하여 남녀의 우열로 평가 한 점에서, 이 작가가 평소 남녀의 불평등한 인식에 대한 반감을 갖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② 열녀 이씨전(김양근)
이씨는 소실로 남편이 적도에게 살해되자 자신의 몸도 몽둥이와 도끼로 맞아 숨이 넘어갈 위급한 지경에 있지만 적도의 음성과 얼굴을 기억해 두어 변고를 듣고 온 정실의 아들에게 귓속말로 매우 상세하게 알려 주어 결국 원수를 갚게 한다.
③열녀 임씨전(이가환)
하층민 여성인 임씨가 남편이 살해된 것을 모르는 척 하면서 기회를 엿보았다가 부자의 배를 갈라 죽이고 자신도 칼에 엎어져 죽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서 열녀 임씨는 일찌감치 부자의 속셈을 엿보다 그 속내를 짐작했고, 또 남편이 부자에게 살해되었음을 직감하고 그 복수를 냉정하게 준비하는 인물로 그려져 있다. 작가는 임씨의 열행 자체보다는 그 지혜와 용기를 칭찬하고 있다.
5) 신체 훼상
신체 훼상이 많이 나타난 것은 19세기 이후의 일로 남편의 목숨을 사리기 위해 자신의 살을 베어내어 구워 먹이거나 무명지를 짤라 그 피를 흘려 넣어주는 일이 빈번하게 나타났다. 그러나 이런 신체 훼상을 통한 남편의 구명은 순절보다 더 힘들거나 옳지 않은 것으로 보는 시각도 나타났으며, 이러한 신체 훼상의 열행은 청상과부의 맹목적이고 충동적인 행위가 아니며 그들의 행위에는 오직 남편을 위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자연스럽고 지극한 애정에 기인된 바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 몸을 베어 남편을 간호한 경우
① 생열녀전(이옥)
신씨 부인은 남편의 병을 고치기 위해 살을 베어 구워 먹이고, 그것으로 열녀의 정려는 바 았다. 작가는 이에 대해 살을 베어내는 것은 죽는 것보다 오히려 어렵고, 고약한 시아버지를 봉양하며 사는 것이 살을 베어 내는 것보더 더 어렵다고 하였다. 즉 이옥은 한 번 죽어 열녀가 되는 것보다 살아가면서 열행을 실천하는 것이 더욱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을 보여준다.
② 열부 상산 박씨전(전병순)
아전의 딸인 박씨는 여공과 글재주와 덕을 모두 갖춘 부인으로 남편이 몇 년간 병으로 뼈만 앙상히 남게 되자 넓적다리 살을 베어 먹였는데 며칠 안가 완쾌했고, 후에 남편이 명을 다해 먼저 죽게 되자 무명지를 짤라 그 피를 입에 넣어 소생시키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햇다. 남편이 죽고 나서 아들을 키워 장가까지 들이고 죽는다. 그는 넓적다리를 베어내고 손가락을 짜르는 것은 공자의 예법에서 경계한 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나 사정이 급박하니 얽매일 수 없다고 하여, 여성들의 행위가 무조건 의리를 이념화해서 순종하려 했던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③ 절부 변부인전(성해웅)
변부인의 행동은 조선 시대 교과서에 나옴직한 모범 그 자체이다. 변부인은 친정 부모를 효성으로 섬겼고, 위기 속에서도 의연히 남편을 내조하고, 병약한 남편을 지극히 간호하였다. 그러나 남편은 보람도 없이 죽고 변부인도 약을 먹고 따라 죽는다. 효와 열을 행하였는데도 복을 받지 못한 것을 보고 하늘이 변부인에게 준 것은 복이 아니라 명예라고 하고, 한 부인의 힘으로 지방의 백성을 안심시킨 공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Ⅲ. 결론
삼국시대는 유교가 중요시되는 사상체계였으므로 열녀관념도 존재했을 것이지만, 그것은 민간 층에까지 확산된 만큼 보편적인 것은 아니었다. 조선전기에 간행되고 배포된 자료들에도 이 같은 양상이 반복되거나 확장되어 있을 뿐, 새로운 시각이 나타나지 않는데 이 시기가 여성의 삶 속에 열녀이념이 뿌리내리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여성들은 학습된 이념을 자신의 것으로 오인하고 맹종하게 되어갔기 때문에 조선후기에는 열녀관념이 정착되는 시기였다.
전통적으로 열녀란 개가할 수 있는데도 개가하지 않은 여인을 의미했으나 시대에 따라 열녀의 의미도 변하여갔으며, 우리 사회의 열녀관은 극단적이고 과격하기조차 한 것이었다. 남편이 죽으면 자살을 하거나, 한편 외간 남성에게 손을 잡혔다고 투신 자살을 감행하거나, 한편 남성측으로부터 자살을 권유 내지 강제 당하는 상황으로까지 치달았다. 열녀의 존재는 인간 비극이 표상이고 그들의 삶은 여성 종속과 인간성 박탈의 극치를 이루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여성의 존재와 지위를 다시 한번 인식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 참고 문헌
한국고전여성문학회 「조선시대의 열녀담론」월인 2002
박 주 「조선시대의 효와 여성」국학자료원 2000
이혜순 외 「한국의 열녀전」월인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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