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성 답사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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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華城 개요
華城 일주
화성의 사대문(四大門)
곳곳에 스민 조상의 숨결
華城의 특징
화성 복원 사업 그러나 지금은..

본문내용

이에 대하여 정조는 "성을 쌓을 때 바깥쪽 모두 다져서 쌓는 것이 최선이나 우리는 이런 방법에 능하지 못 하다."고 했다. 내외 협축이 견고함을 잘 알면서도 이와같이 내탁의 방법을 사용한 것은 산을 의지한 산성 양식이었던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성이 호참을 판 경우가 많지 않은 이유가 그 때문이다. 팔 수도 없었을 뿐더러 할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이른바 천혜의 요새라고 불리우는 경우 자연적인 호참을 이용한 경우가 많다. 예로부터 외침을 많이 받아왔던 우리에게 국토의 특성상 산이 많았던 것은 여러모로 도움이 되었던 듯 싶다. 또한 그 방어의 기재로 자연을 효율적으로 활용한 조상의 지혜를 볼 때 당시의 무수한 외침의 역사를 짐작할 수 있다.
성 기
화성을 역사상 가장 아름답고도 근대적인 성곽으로 평가하는 잘 보이지 않지만 커다란 이유일 듯 싶은 것이 성의 기초의 견고함이다. 모든 건축이 다 그렇겠지만 터를 다지는 일은 성곽의 가장 중요한 기초 작업이다. 화성의 기초 공사는 성기를 파내고 자갈돌로 다진 것이다. 이때에 인부들의 의욕을 고취하기 위해 일을 하는 양에 따라 돈을 주었다고 한다. 당시 정조의 화성 축조에 대한 정성을 알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렇게 단단한 기초를 지녔던 화성이 실제 외침에는 쓰이지 못 하고 동족 상잔의 비극인 6.25 전쟁 때 파괴되었다는 사실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채 석
성벽을 쌓을 재료인 석외를 마련하는 방법도 매우 과학적이었다고 한다. 채석장에서 떼어낸 돌을 즉석에서 가공함으로써 나르는 데 무게를 덜게 하였고, 가공함에도 원래의 석재 크기에 따라 대,중,소의 3급을 나누어, 대석은 한 덩이가 한 수레,중석은 두 덩이가 한 수레가 될 수 있도록 하여 규격을 통일하였다. 석재를 다듬고 규격을 통일하지 않고서는 석재와 석재 사이에 틈이 생기기 때문이다. 또 지탱하는 면적을 크게 하기 위하여도 필요한 일이었다. 그렇게 규격화된 돌로 대석을 아랫부분에 쌓고 차차 위로 올라가면서 작은 석재를 써서 석재를 들어 올리는 수고를 덜 뿐만 아니라 성벽 자체가 견고하게 하는 방법도 사용하고 있다. 아마도 이러한 합리성과 과학성은 당시 실학자들이 참여한 때문이 아닌가 싶다.
치 도
화성을 경우 공역에 필요한 기구가 수레바퀴에 달린 차 뿐만 아니라 썰매가 이용되고 있으므로
길을 잘닦지 않으면 기구의 파손, 운반의 힘겨움을 감수해야 했으므로 '숫돌면같이 판판히' 길을 닦아야 했다고 한다.
차 제
석재나 목재 등을 운반해야 하는 기구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바퀴가 달린 수레의 장단점이 있고, 바퀴가 없는 썰매에도 장단점이 있어 결국 두 가지 기구가 모두 쓰였다. 대석재의 운반은 바퀴 달린 수레가 싣고 내리는 데 불편하지만 썰매는 비록 운반하기에는 많은 힘이 들어도 올리고 내리는 데는 편리하다는 이점이 있었다. 특히 실학자들은 여러 가지 역사적 사실을 들어,또한 실생활의 편리함을 들어 차의 사용을 적극 주장했다고 한다.
성 제
성제란 축성 자체의 모든 것을 말한다고 한다. 그 성이 어떤 성인가는 바로 성제에 의해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내가 답사를 하는 경우에 있어서 쉽게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이 대게 이성제에 해당되었다. 먼저 성벽의 구성이 수직으로 쌓인 것이 아니었다. 쉽게 생각하면 수직으로 쌓아야 적병이 올라올 수가 없을 듯 싶지만, 수직으로 쌓으면 무너지기가 쉽고 적병이 달라붙었을 때 발견하기도 쉽지 않다고 한다. 수원 화성의 경우 아랫 부분에서 위로 3분의 2정도는 안으로 물매를 주어 쌓고 다시 위의 3분의 1은 밖으로 내몰아 쌓아서 무너질 염려도 없을뿐더러 보기에도 아름다웠다. 마치 첨성대의 그것과 같은 단아하고도 늘씬한 느낌이었다.
여 장
여장의 타구는 높이를 가슴 높이로 하여 서서 쏘기 편하게 되어 있었으며 특히 흥미로운 발견이었던 것이 구멍의 안팎을 옆을 깎아서 각 방향에서 총을 쏘는 것이 고려되어 있었다. 또 총혈과 사혈의 크기가 다른 것도 새로운 발견이었다.
옹 성
화성의 옹성은 방어형의 본래 기능 뿐만 아니라 반원형의 모양새가 미적으로도 결코 뒤지지 않는 것을 볼수 있었다.
내·외벽
화성을 돌아다니다 보면 아이들이 쉽게 성벽 위에까지 오를 수 있도록 내벽이 경사가 완만하개 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반면 외벽은 높고 가파라 방어의 기능을 충분히 수행할 듯 싶었다.
화성 복원 사업
그러나 지금은...
육교 건설 공사
내가 화성에서 처음으로 접한 것이 화서문이었는데, 그 곳은 한창 공사가 진행되고 있어서 매우 어수선하였다. 문화 유산을 답사하러 왔다는 생각이 들기보다는 어떤 공사 현장에 왔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화성의 복원작업을 하고 있는 줄 알았고, 훌륭한 문화유산을 가꾸고 보존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현재 화서문 일대는 성곽을 일부 헐어내고 육교를 건설하고 있는 중인데, 무너져내려 있는 선조들이 쌓아올렸던 돌무더기를 볼 때마다 나의 마음도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장안문쪽에는 이미 그런 육교가 벌써 2개나 건설되었다. 그 육교에는 커다랗게 '위대한 수원시민! 월드컵의 주역시민!'이라고 써있는데, 우선 외관상으로도 보기가 좋지 않았으며 수원의 월드컵유치를 위해서 우리의 문화 유산인 화성이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이 나의 기분을 씁쓸하게 하였다.
하지만 화성의 복원사업과 관리가 모두 나쁘게만 진행되는 것은 아니었다. 화성 주위에는 여러 공원들이 화성과 잘 배치되어 있어 가족이나 연인들이 즐거운 시간을 갖고 있었다. 현재 공사는 신풍 초등학교의 옆에서 진행되고 있는데, 내가 찾아간 날이 일요일이어서 그런지 공사는 진행되지 않고 있었다. 언제가 완공예정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어서 완공이 되어 화성의 또 하나의 명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화성 곳곳을 다니면서 나는 여러 잘못 복원되고 있는 모습과 관리상의 허점들을 볼 수 있었다. 문화유산은 우리에서만 끝날 것이 아니라, 다음 또 그 다음의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것이라 생각할 때 단기적인 차원이 아닌 장기적인 안목에서 복원과 관리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때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화성도 그 빛을 찬란히 밝힐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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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04.07.19
  • 저작시기2004.07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61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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