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임시정부와 한국의 건국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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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삼 일운동과 임정(1919)에 대한 법 및 정치적 조명을 위해

Ⅱ. 민권 입헌사상 및 운동의 흐름과 삼 일독립운동

Ⅲ. 3 1독립운동의 의의와 그 혁명성

Ⅳ. 상해임시정부의 지위와 그 민족적 정통성

Ⅴ. 임정의 법통과 대한민국

Ⅵ. 맺음말

본문내용

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봉건지배체제하의 식민지화가 추진되고 따라서 그 나라의 근대화는 왜곡되게 된다. 우리의 경우도 이 점은 그대로 들어 맞는다. 이왕조와 그 지배층은 민중의 변혁의 요구를 외세를 이용하여 탄압하고자 한데서 결국 민중을 결정적으로 배반하게 되는 것이 1894년 갑오농민전쟁 당시의 상황이었다. 나아가서 封建支配層은 外來帝國主義 세력의 침략에 대해 變革을 통해 民衆的 力量을 결집하여 대항하기보다 제국주의 세력중에 강대한 쪽으로 빌붙으려고 하는 추태를 나타낸다. 그 가장 두드러진 보기가 高宗의「아관파천」이다. 이미 자주적인 통치능력을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을사보호조약이란 주권의 포기에 있어서도 민중에게 호소할 자신도 없이 궁중안의 협박극에서 백성을 배반했다. 나아가서 1910년의 식민지화에서는 황실의 지위보존이란 것과 함께 일부 지배층 양반의 특전을 감수하며 한민족을 등지고 스스로의 지위를 포기해 버린 것이다. 따라서 이 시기부터 우리 민족은 本來의 主權者로 돌아가서 植民地 暴力支配와 싸워서 나라의 주인으로서 제 위치를 찾아야 하는 과제를 걸머지게 되었다. 따라서 3 1독립운동이 革命이고 이를 통해 탄생한 임정이 혁명정부로서 민주공화제의 입국을 지향하였다고 하는 것은 실로 중대한 의의를 지니다. 대한민국이 그러한 혁명과 혁명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 민족사에 있어서 나라의 주인이 백성이 되는 숙망을 이루어가는 한 계기를 마련한 점에서 이를 다시 평가해야 한다.
_ 그간에 李承晩의 집권이래 親日的 殘滓를 청산하지 못하거나 민중을 거역하는 정치의 작태가 이어오기도 하였으나, 문제는 체제와 제도를 통해 민족의 정통성을 어떻게 바르게 살려나가는가 하는 것이 시대의 과제라고 하겠다.
[811]
Ⅵ. 맺음말
_ 이 글을 발표한 사람은 역사에 깊은 이해를 가진 사람은 물론 아니며, 자기 학문이 法學이라고 하는 지극히 한정된 분야에서 공부하고 있는 사람이다. 따라서 歷史的 사실에 대한 실증적인 고증이나 논구의 방법이 애당초 한계가 있으리라고 하는 점은 스스로가 알고 있다. 다만 3 1운동의 革命性과 그에 따라 탄생한 臨時政府의 革命性을 法學의 側面에서나마 우리가 인식하지 아니하면 歷史學的 政治學的 論究의 귀중한 성과가 법학적이라고 하는 시각을 통해서 흐려지고 나아가서 法學的 論議의 時代的限界性인 帝國主義的 法理論의 體系로 말미암아 후세에까지 우리가 죄를 짓게 된다는 생각에 문제점을 밝히고자 시도해 본 것이다.
_ 이에 따라 法理的인 면에서의 제국주의 본위의 한계상황을 대담하게 뛰어넘어야 된다고 하는 점을 간접적으로나마 밝혔다. 1950년대 이후에는 제3세계 나라들에 있어서 帝國主義 시대의 國際法은 이미 사장되었다. 이미 反植民 투쟁과정에서 그러한「강자의 논리」는 결코 인정할 수 없는 것이었다. 우리가 日帝와 투쟁할 때 비밀조약과 담합으로 꾸며지고 不平等條約으로 짜여진 제국주의 국제질서를 인정하고 나갈 수 없었다. 더우기 不平等條約이라고 하는 강압과 기만에 의한 왜곡된 관계를 인정하는 전제를 두고는 반제 항일 민족해방투쟁의 논리는 어디에서고 나올 순 없다. 특히 그것은 봉건적 지배층의 통치포기와 민중배반의 투항이었기 때문이다.
_ 이에 따라 상해 임시정부의 의의를 되새기며 그 정신을 이어받은 우리 建國의 精神에 따라 오늘의 문제를 제기해 보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_ (1) 3 1독립운동과 그에 따라 탄생한 臨政은 민주공화제에의 立國이며 그것은 민족의 自主 自立 自決의 원칙에 입각한 독립국가의 수립이다. 그러한 민족적 과제가 좌절된 마당에서 우리가 그 법통을 이어서 가장 소리높여 그에 따른 정신을 선양한다면 그 과제는 분단해소 민족통일이고 그것은 바로 民族의 同質性을 이어 나가는 것이다. 민족이란 역사적 문화적 동질성속에서 그 운명공동체적인 연대에서 우리의 경우에는 수천년을 이어오고 있고 앞으로도 이어가야 한다. 이 점이 중요하고 바로 그러하기 때문에 우리 민족의 反帝鬪爭思想의 연면한 민족적 지속성속에서 임정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_ (2) 이에 따라 아직도 미완성의 작업으로 남아있지만 民族的 正統性을 확립하기 위해 日帝 植民地的 殘滓를 청산하는 과업은 어떠한 어려움이 있던 계속하여[812] 진행해 나가야 한다. 이승만정권이 대한민국의 초기 정부이면서도 그가 건국의 공로자로보다도 친일세력의 비호와 그에 기반을 둔 정치인으로 규탄받고 있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지만, 그의 자연인으로서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입국의 정통성이란 점에서 우리가 할 일이 있다.
_ 이 일은 어려운 점이 있지만 이를 해내지 못하면 임정의 빛나는 법통에 누를 끼친다고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 민족사의 왜곡이 된다.
_ (3) 우리가 확인해야 할 일은 3 1독립정신이나 그에 따라 탄생한 임정은 민주공화제입국의 지향이었고 그러한 이념에 따라 대한민국이 탄생되었다. 그것은 무엇보다 나라가 民主化되어야 한다고 하는 當爲를 前提로 한 것이며 바로 그것은 민주화를 통한 人權을 신장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나라의 힘이 백성의 힘이고 백성의 힘이 그들의 자각된 의식에 바탕을 둔 권리와 자유에 있으며 그것이 바로 나라 힘이 된다고 하는 것을 우리의 선각자는 얼마나 애타게 외쳤는가? 이를 다시 두고 말할 것은 없지만 이 점이 가장 초점이 되는 문제이다.
_ 나라가 망하게 되는 것은 백성이 기를 못펴게 노예로 만들게 한데 있다고 하는 점을 많은 선각자가 말했고 사실로 그것은 역사적 사실이었다. 그래서 식민지로부터 해방을 위한 투쟁에서는 백성의 힘을 일으키는 것이 첫번째 과제가 되었다. 이를 安島山은 힘이라고 했고 중국의 孫文등은 노예근성의 탈피를 말했다. 그것은 서방사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계몽, 사람이 깨어야 한다고 하는 말이 18세기 市民革命 前夜의 과제가 아니었는가? 이를 바로 일으키기 위해 그 제국주의 침략의 시기에 말로 다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으면서 몸소 나라찾기에 몸바친 선각자로서 독립열사를 모시고 있고 임시정부라고 하는 혁명조직이 이어왔다고 하는 자랑스러운 역사적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이를 이어가는 것이 오늘에 사는 우리의 도리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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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09.08
  • 저작시기20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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