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남대총 남분 출토 은제관의 도상해석과 그 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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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머리말

2. 유적 개요

3. 동북아의 비슷한 예

4. 은제관의 도상 해석과 그 계보

5. 맺음말

본문내용

식이 매미를 상징하고 있으므로 남분의 은제관도 이와의 관련성을 부인할 수가 없다. 그 밖에 천마총 등에서 출토되는 금제, 금동제, 은제등의 조익형 관식도 결국 신분제를 표시하는 것으로 중국→동호ㆍ오환→선비ㆍ부여→고구려 등을 통해 신라에 전파되었음을 알 수가 있다. 이렇게 보면 위의 계보 가운데 선비까지는 잘 연결이 되나 어떻게 고구려가 들어가는지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현재 학계에서는 마구류등의 경우에 대개 선비→3연→고구려→백제ㆍ가야ㆍ신라의 계보를 설정하고 있다.
) 董高, 1995, 〈公元 3至 6世紀 慕容鮮卑, 高句麗, 朝鮮, 日本馬具之比較硏究〉《文物》 1995-10.
그러면 은제관과 고구려와는 어떤 관련성이 있을까?
현재까지의 자료에 따르면 남분의 은제관과 유사한 예는 고구려에서는 출토된 바가 없다. 앞으로 고구려 고분의 발굴조사에서는 그러한 예가 출토될 것으로 믿는다. 그러면 남분의 은제관에서는 고구려적인 요소가 있는지 여부를 검토해 보기로 하자.
이러한 남분 은제관의 양쪽에 서 있는 은판을 가위로 잘라서 꼬이게 만든 기법은 고구려 고분과 신라 관에서 보이는데 대개 그 기원은 고구려에 두고 있다. 이를 도시하면 다음의 〈도4〉와 같다.
) 咸舜燮, 1995, 〈大邱 飛山洞 37號墳 二石室 出土冠〉《古代硏究》4, p.98에서 전제하였 다.
따라서 신라 황남대총 남분의 은제관은 그 기원을 중국의 한대에 매미형 장식에 있고, 이들이 동호ㆍ오환을 거쳐서 선비 부여에 전해졌고,
) 물론 위진남북조 초기의 도상들이 전파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풍소불묘를 전후하여 삼연에서 고구려를 거쳐 백제ㆍ신라ㆍ가야에 전파된 것으로 이해된다.
5. 맺음말
지금까지 논의해 온 바를 간단히 요약하여 맺음말로 대신하고자 한다. 먼저 황남대총의 남분 출토의 은제관을 검토키 위해 황남대총의 개요를 간단히 살펴보았다.
다음으로 요녕성 일대에 출토된 관 가운데 황남대총 남분과 유사한 조양 왕자분산 토광묘, 조양 전초구 석곽묘, 북연 풍소불 부부묘 등을 간략하게 소개하였다.
그 다음으로 남분 은제관의 도상은 중국의 한대 매미에서 유래되며, 이러한 예들은 천마총을 비롯한 신라의 고분군에서 다량으로 발견되고 있으며, 고구려에서는 그러한 예가 없고, 금동판을 가위로 잘라서 만드는 이른바 우모형관(식)은 고구려와 신라고분에서 집중적으로 보이고 있어서 그 계보를 중국 한→동호ㆍ오환→선비ㆍ부여→3연→고구려→백제ㆍ신라ㆍ가야로 설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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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09.08
  • 저작시기2004.09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65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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