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68문학의 특수성
68문학과 주관성, 심미성
신주관성의 정치성
68혁명 이후 한 세대
1. 신화 허물기
1) 순환의 시간, 진보의 시간
2) 신좌파와 68혁명
3) 동북아시아의 맥락
4) '신좌파' 주체의 새로운 형성
2. 신좌파와 대학혁명의 담론
68문학과 주관성, 심미성
신주관성의 정치성
68혁명 이후 한 세대
1. 신화 허물기
1) 순환의 시간, 진보의 시간
2) 신좌파와 68혁명
3) 동북아시아의 맥락
4) '신좌파' 주체의 새로운 형성
2. 신좌파와 대학혁명의 담론
본문내용
추어내는 활발한 이론 작업도 양적, 질적으로 부쩍 성장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이러한 흐름들을 모두 일별할 수는 없으며, 여기서는 주로 학운단위의, 그리고 특히 기존의 학운 집단이 조직적으로 신좌파적 논의를 받아들이는 경우를 이야기하려 한다. 해외 이론들의 소개, 그리고 국재 연구의 발전에 힘입어 '사생활의 정치' 담론은 양적으로 팽창했을뿐 아니라 질적으로도 매우 심화되었다. 그런데 학생운동 집단이 이러한 담론을 수용하면서, 교육개혁-대학혁명을 주제어로 채택하고 다양한 영역에서의 해방을 위한 일상적 투쟁을 이슈로 제기하는데 있어, 68년 5월의 프랑스 학생봉기와 60년대 미국의 신좌파 학생운동이 갖는 상징성은 매우 큰 것으로 보인다. 이 두 사례는 이들의 활동이 장차 정치적 폭발력을 가질 수 있으리라는 인식에 강력한 역사적 근거를 제공하는 실례로 해석되고 있다--특히 프랑스 학생봉기에 대한 인식. 또 어떤 경우에는 '낡은' 맑스주의 교의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사회비판적이며 동시에 해방의 열정을 폭발적으로 발산할 수 있는 '반란'의 실례로 해석되기도 한다--특히 '발런티어' 그룹의 미국 학생운동 해석.
이들의 이러한 인식이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러한 해석이 대단히 일면적임은 지적할 수 있겠다. 우선 두 사례 모두, 베트남전이라는 역사적 배경이 바탕에 깔려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프랑스로부터 독립한지 불과 10여년밖에 안된 땅에서 벌어진, 미국이 직접 개입한 전쟁에서 특히 구정공세 이후 베트남 인민들의 민족해방투쟁은 당시 구미의 지식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베트남 인민들에 대한 국제주의적 연대의 정서가 매우 널리 확산되었다. 프랑스의 경우 베트남전에 대한 프랑스 공산당 및 거대 노조들의 애매한 태도에 대한 비판이 특히 지식인사회 내에서 거세게 일었고, 이것이 구좌파로부터의 대중의 이반, 그리고 학생들의 폭발에 큰 역할을 하였다. 미국의 경우는 좀더 복잡했는데, 대학 내의 교육개혁이라는 이슈 보다는 종종 반전이라는 이슈가 더 압도적이었다. 또 프랑스의 경우 기존에 존재하던 (비스탈린주의적) 맑스주의 계열의 소정파들 및 지식인들이 얼마간 역할을 했고, 기성세대에 대한 반감은 특히 그들의 나찌부역이라는 전력에 대한 반감과 관련되어 있었다는 사회적 특수성이 존재했다. 미국의 경우 당시의 격동에서 보다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은 인종적 갈등이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어떤 점에서는 고전적 의미에서의 '계급갈등'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활동은 그다지 '비폭력적'이지도 않았고, 설사 비폭력 투쟁이라 하더라도 그 바탕에는 매우 높은 수준의 결의와 투쟁력이 전제되어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지 않으면 그것이 대중에게 그렇게 깊은 인상을 줄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남한 학생운동 집단이 해외의 역사적 사례에 대해 제대로 해석하고 있는가를 따지는 문제는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해외의 사례를 제대로 해석하든 아니든 그것이 현실에 유의미한 문제제기를 하고 활동을 벌여나가는 자양분이 된다면 잘못된 해석이 오히려 환영받을만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활동들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이들 집단들이 해외의 사례들에서 제기된 이슈들뿐만 아니라 그 사례 안에 존재하는 각종 활동방식들까지도 토씨하나 바꾸지 않고 그대로 끌어쓴다는 점에서 쉽게 확인되듯이, 이들의 활동은 이 사례들에 전면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들은 이 두 해외의 사례 안에 존재했던 한계들까지도 그대로 수용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80년대 후반에 레닌의 저작이 표준 어휘집이었고, 볼셰비키의 전략과 조직모델이 남한 사회에 그대로 적용되어야할 정언명령이었던 것의 거울상이라고나 할까.
우선 프랑스 학생봉기의 추동력이 무엇이었는가에 대한 결론은 다소 유보해야할 듯 하다. 당시 운동의 동력이 '소비자본주의에 대한 전면적 거부'였는지, 아니면 '소비자본주의에 편입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었는지에 대한 평가는 애매하다. 68년 당시 이들의 활동에 대해 구좌파 지식인들 사이에서 '쁘띠부르조아적 투정'이지 않은가 하는 비난이 있기도 했다는 점은 한번쯤 염두에 두어볼만 하다. 그래도 이 경우, 봉기에 대한 '급진적 해석'(알랭 투렌느-정수복 류의)이 우리에게 보다 익숙하다는 점은 어떤 의미에서는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사례에 대한 해석에서는 상당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사례를 전용하는 최근의 경우를 보면, 그 안에 존재했던 고도의 이상주의와 도덕성 및 투쟁력에 주목하기 보다는, 반문화의 쾌락주의적 성격, 일군의 비폭력주의 집단(특히 백인 중간계급 대학생운동에서의), 그리고 낭만주의적 자유주의에만 주목하고 있는 듯한 것이다. 어쨌든 프랑스와 미국의 사례 어느 경우에서나 아직까지 그에 대한 소개 및 해석이 대단히 제한적이고 일면적으로만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 문제가 된다. '사생활의 정치', '정체성의 정치', 그리고 '대학(교육)개혁' 투쟁이, 우리 사회에서는 물론 서구에서도 그 이론적 급진성과는 벌도로, 현실적으로는 사회적 보편성을 획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고민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장기적인 전망이 부재한 교육개혁 투쟁이 결국 절망의 몸짓이 될 수밖에 없음을 86년 프랑스의 학생소요가 보여주었다는 지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한의 학운은 이러한 점들에 대해 충분히 고려하고 있지는 않아 보인다. 또한 양 사례에 대한 이해에서 그것의 폭발력의 원천은 무엇이었는가에 대해서만 주목할뿐 그것들이 왜 그토록 허망하게 끝맺고 말았는가에 대해서는 전혀 논의되고 있지 못하다는 점도 아울러 지적해 두어야할 것이다.
요컨대, 프랑스 학생봉기나 미국의 신좌파 학생운동이나 모두 한 측면에서만 바라볼 수 없는 복잡한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해 함부로 역사적 평가를 내리는 것은 신중을 요하는 일이다. 적어도 남한 학생운동 집단에서는 이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으면서도, 또 오히려 더 중요할 수도 있는 측면은 간과하고 자의적으로 '상징화'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히 짚어져야할 문제로 보인다.
여기서 이러한 흐름들을 모두 일별할 수는 없으며, 여기서는 주로 학운단위의, 그리고 특히 기존의 학운 집단이 조직적으로 신좌파적 논의를 받아들이는 경우를 이야기하려 한다. 해외 이론들의 소개, 그리고 국재 연구의 발전에 힘입어 '사생활의 정치' 담론은 양적으로 팽창했을뿐 아니라 질적으로도 매우 심화되었다. 그런데 학생운동 집단이 이러한 담론을 수용하면서, 교육개혁-대학혁명을 주제어로 채택하고 다양한 영역에서의 해방을 위한 일상적 투쟁을 이슈로 제기하는데 있어, 68년 5월의 프랑스 학생봉기와 60년대 미국의 신좌파 학생운동이 갖는 상징성은 매우 큰 것으로 보인다. 이 두 사례는 이들의 활동이 장차 정치적 폭발력을 가질 수 있으리라는 인식에 강력한 역사적 근거를 제공하는 실례로 해석되고 있다--특히 프랑스 학생봉기에 대한 인식. 또 어떤 경우에는 '낡은' 맑스주의 교의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사회비판적이며 동시에 해방의 열정을 폭발적으로 발산할 수 있는 '반란'의 실례로 해석되기도 한다--특히 '발런티어' 그룹의 미국 학생운동 해석.
이들의 이러한 인식이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러한 해석이 대단히 일면적임은 지적할 수 있겠다. 우선 두 사례 모두, 베트남전이라는 역사적 배경이 바탕에 깔려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프랑스로부터 독립한지 불과 10여년밖에 안된 땅에서 벌어진, 미국이 직접 개입한 전쟁에서 특히 구정공세 이후 베트남 인민들의 민족해방투쟁은 당시 구미의 지식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베트남 인민들에 대한 국제주의적 연대의 정서가 매우 널리 확산되었다. 프랑스의 경우 베트남전에 대한 프랑스 공산당 및 거대 노조들의 애매한 태도에 대한 비판이 특히 지식인사회 내에서 거세게 일었고, 이것이 구좌파로부터의 대중의 이반, 그리고 학생들의 폭발에 큰 역할을 하였다. 미국의 경우는 좀더 복잡했는데, 대학 내의 교육개혁이라는 이슈 보다는 종종 반전이라는 이슈가 더 압도적이었다. 또 프랑스의 경우 기존에 존재하던 (비스탈린주의적) 맑스주의 계열의 소정파들 및 지식인들이 얼마간 역할을 했고, 기성세대에 대한 반감은 특히 그들의 나찌부역이라는 전력에 대한 반감과 관련되어 있었다는 사회적 특수성이 존재했다. 미국의 경우 당시의 격동에서 보다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은 인종적 갈등이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어떤 점에서는 고전적 의미에서의 '계급갈등'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활동은 그다지 '비폭력적'이지도 않았고, 설사 비폭력 투쟁이라 하더라도 그 바탕에는 매우 높은 수준의 결의와 투쟁력이 전제되어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지 않으면 그것이 대중에게 그렇게 깊은 인상을 줄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남한 학생운동 집단이 해외의 역사적 사례에 대해 제대로 해석하고 있는가를 따지는 문제는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해외의 사례를 제대로 해석하든 아니든 그것이 현실에 유의미한 문제제기를 하고 활동을 벌여나가는 자양분이 된다면 잘못된 해석이 오히려 환영받을만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활동들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이들 집단들이 해외의 사례들에서 제기된 이슈들뿐만 아니라 그 사례 안에 존재하는 각종 활동방식들까지도 토씨하나 바꾸지 않고 그대로 끌어쓴다는 점에서 쉽게 확인되듯이, 이들의 활동은 이 사례들에 전면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들은 이 두 해외의 사례 안에 존재했던 한계들까지도 그대로 수용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80년대 후반에 레닌의 저작이 표준 어휘집이었고, 볼셰비키의 전략과 조직모델이 남한 사회에 그대로 적용되어야할 정언명령이었던 것의 거울상이라고나 할까.
우선 프랑스 학생봉기의 추동력이 무엇이었는가에 대한 결론은 다소 유보해야할 듯 하다. 당시 운동의 동력이 '소비자본주의에 대한 전면적 거부'였는지, 아니면 '소비자본주의에 편입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었는지에 대한 평가는 애매하다. 68년 당시 이들의 활동에 대해 구좌파 지식인들 사이에서 '쁘띠부르조아적 투정'이지 않은가 하는 비난이 있기도 했다는 점은 한번쯤 염두에 두어볼만 하다. 그래도 이 경우, 봉기에 대한 '급진적 해석'(알랭 투렌느-정수복 류의)이 우리에게 보다 익숙하다는 점은 어떤 의미에서는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사례에 대한 해석에서는 상당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사례를 전용하는 최근의 경우를 보면, 그 안에 존재했던 고도의 이상주의와 도덕성 및 투쟁력에 주목하기 보다는, 반문화의 쾌락주의적 성격, 일군의 비폭력주의 집단(특히 백인 중간계급 대학생운동에서의), 그리고 낭만주의적 자유주의에만 주목하고 있는 듯한 것이다. 어쨌든 프랑스와 미국의 사례 어느 경우에서나 아직까지 그에 대한 소개 및 해석이 대단히 제한적이고 일면적으로만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 문제가 된다. '사생활의 정치', '정체성의 정치', 그리고 '대학(교육)개혁' 투쟁이, 우리 사회에서는 물론 서구에서도 그 이론적 급진성과는 벌도로, 현실적으로는 사회적 보편성을 획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고민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장기적인 전망이 부재한 교육개혁 투쟁이 결국 절망의 몸짓이 될 수밖에 없음을 86년 프랑스의 학생소요가 보여주었다는 지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한의 학운은 이러한 점들에 대해 충분히 고려하고 있지는 않아 보인다. 또한 양 사례에 대한 이해에서 그것의 폭발력의 원천은 무엇이었는가에 대해서만 주목할뿐 그것들이 왜 그토록 허망하게 끝맺고 말았는가에 대해서는 전혀 논의되고 있지 못하다는 점도 아울러 지적해 두어야할 것이다.
요컨대, 프랑스 학생봉기나 미국의 신좌파 학생운동이나 모두 한 측면에서만 바라볼 수 없는 복잡한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해 함부로 역사적 평가를 내리는 것은 신중을 요하는 일이다. 적어도 남한 학생운동 집단에서는 이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으면서도, 또 오히려 더 중요할 수도 있는 측면은 간과하고 자의적으로 '상징화'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히 짚어져야할 문제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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