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중세사] 고려왕권의 확립과정과 호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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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혜종대의 호족과 왕권

2) 정종의 왕위계승과 왕권의 동향

3) 광종과 경종의 왕권강화책

4) 호족 연합정권설의 문제

본문내용

게 되었다. 하나는 중앙으로 진출하여 문벌귀족이 되었고 다른 하나는 지방에 남아 있으면서 왕권 강화와 더불어 향리화의 길을 걸었다. 고려시대 문벌귀족의 저변에도 호족의 후신이라 할 수 있는 향리의 세계가 있었던 것인데 중국의 경우와 비슷하다고 하겠다.
호족의 개념과 성격이 대략 이렇다고 할 때 나말여초의 사회 상황을 논할 경우 호족이란 용어의 사용이 과연 정당한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호족이란 존재가 주로 고대사회를 설명할 때 언급되는 것으로 고려시대에 호족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적당치 않다는 주장이 있다.
) 李純根, <羅末麗初 「豪族」용어에 대한 연구사적 검토>(《聖心女大論文集》19, 1987).
그래서 호족 대신 다른 용어들이 사용되기도 했고 타당한 측면도 있지만 호족이란 용어의 사용이 아주 부적절한 것은 아니다. 보편적으로 사용해 온 용어를 바꾸는 것은 혼란만 초래할 뿐이고 호족이란 용어가 중국사와 일본사에도 사용되고 있어 비교사학적인 측면에서도 유용하다. 다만 호족과 비슷한 용어가 다수 쓰이고 있음은 유의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聯合政權」에 대해 알아보겠다. 일반적 개념으로 연합이란 일정한 목적 아래 둘 이상의 개별적인 조직체가 일정한 테두리 안에서 서로 어울려 하나를 이루는 것을 뜻하지만 정치학 용어로 쓰일 땐 다른 의미를 갖는다.
현대의 정치적 용법에 있어 「Confederation」(국가연합이라 번역할 수 있다)은 국가결합의 한 형태로 외부와 관련된 공통의 행동을 위한 몇몇 독립국(주권국)들의 영구적인 결합을 뜻한다. 이러한 결합관계가 더욱 강화되면 중앙정부의 강력한 통제력으로 인해 구성국은 국제법상의 능력을 상실하게 되어 「Federation」(國家聯邦)이 되는 것이다. 현재의 미국이나 소련(독립국가연합 이전)이 그 예이다.
독립국(주권국)들의 연합체제는 몇 가지 특징과 공통 운영 원리를 갖는다. 첫째, 연합관계는 성문법에 성립된다는 점이다. 둘재, 철저한 지방분권이 보장된다. 셋째, 권력에 대한 지역적인 분배라는 특징을 갖는다. 이러한 특징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 가지 제도와 장치가 운영되는데 시민들은 대표를 뽑아 지방정부나 중앙정부에 보낸다. 지방분권을 유지할려면 각 지방정부의 지배 영역이 영속적으로 보장되고 독자적 행정·입법·사법제도의 설치가 보장되고 정당체계의 존재도 인정된다.
위와 같은 특징과 제도를 가진 국가결합이 형태를 국가연합(Confederation)이라 하고 이렇게 탄생된 국가를 연합국가 내지 연합정권이라 하는 것이다. 문제는 호족연합정권설이 이러한 정치학적 개념의 검토하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중국 후한시대의 용어를 빌려 쓴 것인데 여기서 중국의 호족 연합정권설에 대해서 알아볼 필요가 있다.
후한의 호족 연합정권설에 대한 핵심은 두 가지인데 첫째, 후한을 세운 광무제 유수가 처음 거병했을 때의 군대가 종래 豪族內婚制를 통해 결합되어 있던 남양호족의 연합군이었다는 것과 둘째, 이러한 상황이 유수의 황제 즉위 이후에도 계속되어 연합적 성격을 띤 남양호족들이 정계의 주도권을 잡고 있었다는 것이다.
) 宇都官淸吉, <劉秀と南陽>(《漢代社會經濟史硏究》, 弘文堂, 1954), 393∼394쪽.
그런데 이러한 견해가 근본적 사실 파악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유수가 처음 거병했을 때 남양은 물론 다른 지역의 호족도 거의 참여치 않았고 즉위 후 32공신중에서 남양 출신이 13명밖에 되지 않았단 사실에서 호족 연합정권설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후한에 적용된 호족 연합정권의 개념을 가지고 고려 초기의 상황을 논하는 것은 불합리한 일이라 할 수 있다.
또 한편 정치학에서 정의된 연합정권의 개념을 굳이 역사학에도 적용시켜야 하느냐 하는 지적이 있는데 역사학 나름대로 개념을 정립해 사용하면 되지 않느냐는 말이다. 그러나 역사학이라고 해서 그것이 역사학자들만의 전유물이라 생각해선 안 되고 역사는 모든 인간들의 공유물이라고 생각해야 된다. 평범한 사람은 물론 정치학자가 역사를 읽을 때에도 그것을 이해하도록 써야 한다. 결국 우리는 정치학적으로 개념이 정립된 연합정권이란 용어에 유의하면서 호족 연합정권을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豪族聯合政權」개념을 정치학적으로 살펴 본다면 독자성을 가진 호족들이 상호간의 조약이나 합의를 통해 창출된 정권이라 하겠다. 그리하여 호족들의 지배 영역이 하나의 독립국처럼 되어 있고 지방과 중앙과의 관계가 거의 평등해야 한다. 그리고 지방과 중앙과의 사이에 연락체계가 존재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정치학적인 호족 연합정권의 개념인 것이다.
3) 고려 초기의 정치형태
고려 초기의 정치적 성격은 종래 주장대로 호족 연합정권이라 할 수 있을까? 이 말이 맞는가 한 번 알아보겠는데 신라 말의 지방세력인 호족들은 거의 독자적으로 자신의 관할 구역을 통치하고 있었다 그들의 관할 구역은 하나의 독립국처럼 되어 있었고 신라의 통제권에서 벗어나 고려 왕조에 마음대로 귀부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상황을 잘 보여 준다.
고려정권은 호족들의 계약 내지 합의에 의해 성립된 것이 아니다. 왕건을 추대한 자부터 호족이 아니었다. 왕조 성립 후 고려정부와 호족들과의 관계는 정부가 관리를 파견하여 정치·경제적인 면에서 감시, 통제하였으나 호족들의 독자성은 어느 정도 유지되었다. 속군·현에선 호족들이 정치·행정·조세 업무를 처리했다.
요컨대, 고려 초기 호족들은 행정·징세 및 사법권 등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고려는 한 국가였기 때문에 나라를 대표하는 외교권은 중앙정부가 가지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호족들과 중앙 정부 사이엔 사심관제와 기인제를 통한 연락관계가 지속되었다. 따라서 고려 초기의 정권은 연합체제적인 성격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긴 했지만 정권의 성립 자체가 호족들 간의 조약이나 합의에 의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호족 연합정권이라 잘라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시기에 호족들의 세력이나 독자성이 다른 어느 시기보다 강했던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고려 초기의 정권을 「호족연합적 성격을 가진 정권」이라든가 이 시기를 「호족의 시대」라고 부르는 것도 크게 잘못된 것이 아니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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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09.30
  • 저작시기20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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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268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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