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서론
2.어구해석
3.작자와 제작경위
4.내용
5.형식
6.장르귀속 문제
7.민속학적 고찰
8.문학사적 의의
9.결론
10.원문 및 현대역
2.어구해석
3.작자와 제작경위
4.내용
5.형식
6.장르귀속 문제
7.민속학적 고찰
8.문학사적 의의
9.결론
10.원문 및 현대역
본문내용
고려 태조때부터 전해 오는 팔관회에서 신숭겸, 김낙의 가면무희를 하였을 때 <가상잉기무여생인언(假像仍起舞如生人焉)>하여 <자차배치락정이위상(自此排置樂庭以爲常)>하였다
) 장절공유사
고 한다. 신숭겸, 김낙의 신상(神像)이 고려 태조 때에는 단순한 machinery에서 출발하여 예종 15년(1120)에 이르러서는<기마용약주순어정(騎馬踊躍周巡於庭)>하는 가면희로 발전하여 왔기 때문에 고려의 산대잡상(山臺雜像)으로 발전되고 본격적인 mimic으로서 고려조의 민속 예능의 연희로 정착되었다고 본다
) 이두현, 한국가면극, 문공부 문화재관리국, 1969
.
8. 문학사적 의의
도이장가는 고려 제16대 예종 15년(A.D.1120년) 왕이 서경에 행차하여 동시월(冬十月)에 열린 팔관회를 구경하였을 때 국초공신(國初功臣) 김락과 신숭겸의 가상(假像)을 보고 감명(感銘)받은 바 있어 이 두 장수(將帥)를 기리고 추도한 노래이다. 이 노래는 신라향가(新羅鄕歌) 8구체 형식에 향찰체 표기로 되어 있어 정서(鄭 )의 정과정곡과 아울러 향가가 고려 중엽까지 애송되어 고려속요, 경기체가 등 고려문학 양식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쳤고, 신라에서 융성했던 향가 장르가 이 무렵까지 잔존했었다는 증거가 되는 중대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 게다가 현전하는 고려시대의 노래 중 그 작자와 제작 연대를 분명히 알 수 있는 많지 않은 작품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또한 찬양하는 말로써 죽은 사람을 추모하고, 그 정신을 본받자는 노래의 전통은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이러한 전통과, 향가나 고려 시가에 드러나는 주술적인 표현 방식, 그리고 동질적인 정서를 바탕으로 새로운 시가 형식을 모색하는 과도기의 모습을 이 작품은 잘 보여주고 있다. 더불어 국가통치라는 추상적 과제를 문학과 음악을 통하여 구체화함으로써, 현실가 괴리되지 않는 문학의 전통도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되고 보면 그 가지고 있는 내용의 가치란 것보다 있는 그 존재에 벌써 충분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 조윤제, 조선시가사강, 을유문화사, 1958
는 평가는 어느 일면에서만 타당한 의미를 지녀야 할 것이다
) 정병헌, <悼二將歌>의 製作 經緯와 文學史的 意義, 한국고전시가작품론1, (백영정병욱선생10주기추모논문집), 집문당, 1992
.
9. 결론
지금까지 <도이장가>에 대하여 살펴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도이장가>는 고려 16대 睿宗 15년(서기 1120년)에 예종에 의해 지어졌다.
둘째, 예종은 두 공신을 哀悼稱頌함으로써 國家敎化를 꾀하고 신하들의 위국 충성의 결의를 굳게 하기 위해 이 노래를 지었다.
셋째, <도이장가>는 三國遺事나 均如傳의 다른 시가들 처럼 자간을 떼어 경계를 표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형식에 있어서 의견이 분분한데, 김동욱은 8구체 향가형의 단형시가(短形詩歌)로 규정하였고, 나경수는 단가이장(短歌二章)이라는 문구에 주목하여 2행 4구 8음보형의 노래 두 수로 재구하였다.
넷째, <도이장가>는 창작 시기와 표기법으로 인하여 고려속요냐, 향가냐 하는 장르 귀속의 문제가 있으나, 우리는 이 작품이 향가의 가장 큰 특징인 이두식 표기인 반면 고려속요의 가장 큰 특징인 후렴구와 분련체의 요건은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고 보아 향가에 귀속시켰다.
다섯째, <도이장가>는 연희 때 불려졌을 가능성이 높다.
<참고자료>
1. <평산신씨고려태사장절공유사(平山申氏高麗太師壯節公遺事)> 원문
2. 해독
<양주동>
니믈 오잎오싶힝
밑힝밑 까하다 밋곤
넉시 가샤딪
사밑샨 벼슬마 힝힝져
힝힝져 빛라며 아리라
그다 두 功臣여
자최다
나토샨뎌
<정열모>
님을 굳휴싶힝 밑싶믄
저 하다 및건
넉시 가샤딪
중삼오 시켜 구실 니수려
니수려 바링미 아리링 믿비리
믿비리 두 功臣 하 오라나
고딪자최까밑
나토시메
<지헌영>
님을 올오싶오 밑힝믄
밑힝믄 까하늘 미치곤
넉시 가샤이여
싶링여이신 짐딪다링
짐딪다링
자피어 두 功臣여
고딪자리는
나토샤져
<김완진>
니믈 오잎오싶힝
밑힝믄 까하늘 밋곤
넉시 가샤딪
몸셰오신 말아
셕 맛도려 활자바리 가싶와뎌
됴타 두 功臣아
오래옷 고딪 자최다
나토신뎌
<유창균>
님을 오가오싶힝
밑힝믄 까 하다 미칭곤
넉시 가샤딪
밑싶 삼오샤 내리신 벼슬 말아
힝 힝고져 빛람 아니라
다밑 뎌곳 두힝 功臣아잎
곧 나딪 자초
그힝기 나토샬뎌
3. 현대어역
<김완진>
님을 온전케 하온
마음은 하늘 끝까지 미치니,
넋이 가셨으되
몸세우고 하신 말씀,
직분 맡으려 활 잡는 이 마음 새로워 지기를
좋다. 두 공신이여
오래오래 곧은 자최는 나타내신저.
<유창균>
님을 온전하게 하오신
마음은 하늘 끝까지 미치거니,
영혼은 가시었으되
마음에 (깊이) 새기시어 내려주신 변슬의 綸音
또 하려므나 하는 바람(希望)을 알 것이로다
더불어 저곳에 있는 두 功臣의
곧 나타난 그 功績
그윽히 나타나게 하신 것이로다.
<참고문헌>
http://bh.knu.ac.kr/∼mkkim/
김동욱, 도이장가의 문헌 민속학적 고찰, 고려가요연구, 새문사, 1982
장덕순, 구문학통론, 신구문화사, 1972
최용수, 고려가요연구, 계명문화사, 1993
김기동, 구문학개론, 정연사, 1960
김기탁, 도이장가에 대하여, 영남어문학, 영남어문학회, 1982
김동욱, 도이장가의 문헌 민속학적 고찰, 고려가요연구, 새문사, 1982
김상선, 한국시가의 형태적 고찰, 중앙대 논문집 13집, 1968
김완진, 도이장가의 새로운 해독을 위하여, 연암현평효박사회갑기념논총, 1981
나경수, 향가문학론과 작품연구, 1995, 집문당
성기옥, 도이장가의 장르 귀속, 국어국문학연구 16집, 영남대 국어국문학회, 1974
양주동, 여요전주, 을유문화사,1947.
유창균, 향가비해, 형설출판사, 1996
이두현, 한국가면극, 문공부 문화재관리국, 1969
이임수, 고려가요연구, 경북대박사학위논문, 1988
정병헌, <悼二將歌>의 製作 經緯와 文學史的 意義, 한국고전시가작품론1, (백영정병욱선생
10주기추모논문집), 집문당, 1992
조동일, 한국문학통사, 지식산업사, 1992
조윤제, 조선시가사강, 을유문화사, 1958
) 장절공유사
고 한다. 신숭겸, 김낙의 신상(神像)이 고려 태조 때에는 단순한 machinery에서 출발하여 예종 15년(1120)에 이르러서는<기마용약주순어정(騎馬踊躍周巡於庭)>하는 가면희로 발전하여 왔기 때문에 고려의 산대잡상(山臺雜像)으로 발전되고 본격적인 mimic으로서 고려조의 민속 예능의 연희로 정착되었다고 본다
) 이두현, 한국가면극, 문공부 문화재관리국, 1969
.
8. 문학사적 의의
도이장가는 고려 제16대 예종 15년(A.D.1120년) 왕이 서경에 행차하여 동시월(冬十月)에 열린 팔관회를 구경하였을 때 국초공신(國初功臣) 김락과 신숭겸의 가상(假像)을 보고 감명(感銘)받은 바 있어 이 두 장수(將帥)를 기리고 추도한 노래이다. 이 노래는 신라향가(新羅鄕歌) 8구체 형식에 향찰체 표기로 되어 있어 정서(鄭 )의 정과정곡과 아울러 향가가 고려 중엽까지 애송되어 고려속요, 경기체가 등 고려문학 양식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쳤고, 신라에서 융성했던 향가 장르가 이 무렵까지 잔존했었다는 증거가 되는 중대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 게다가 현전하는 고려시대의 노래 중 그 작자와 제작 연대를 분명히 알 수 있는 많지 않은 작품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또한 찬양하는 말로써 죽은 사람을 추모하고, 그 정신을 본받자는 노래의 전통은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이러한 전통과, 향가나 고려 시가에 드러나는 주술적인 표현 방식, 그리고 동질적인 정서를 바탕으로 새로운 시가 형식을 모색하는 과도기의 모습을 이 작품은 잘 보여주고 있다. 더불어 국가통치라는 추상적 과제를 문학과 음악을 통하여 구체화함으로써, 현실가 괴리되지 않는 문학의 전통도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되고 보면 그 가지고 있는 내용의 가치란 것보다 있는 그 존재에 벌써 충분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 조윤제, 조선시가사강, 을유문화사, 1958
는 평가는 어느 일면에서만 타당한 의미를 지녀야 할 것이다
) 정병헌, <悼二將歌>의 製作 經緯와 文學史的 意義, 한국고전시가작품론1, (백영정병욱선생10주기추모논문집), 집문당, 1992
.
9. 결론
지금까지 <도이장가>에 대하여 살펴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도이장가>는 고려 16대 睿宗 15년(서기 1120년)에 예종에 의해 지어졌다.
둘째, 예종은 두 공신을 哀悼稱頌함으로써 國家敎化를 꾀하고 신하들의 위국 충성의 결의를 굳게 하기 위해 이 노래를 지었다.
셋째, <도이장가>는 三國遺事나 均如傳의 다른 시가들 처럼 자간을 떼어 경계를 표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형식에 있어서 의견이 분분한데, 김동욱은 8구체 향가형의 단형시가(短形詩歌)로 규정하였고, 나경수는 단가이장(短歌二章)이라는 문구에 주목하여 2행 4구 8음보형의 노래 두 수로 재구하였다.
넷째, <도이장가>는 창작 시기와 표기법으로 인하여 고려속요냐, 향가냐 하는 장르 귀속의 문제가 있으나, 우리는 이 작품이 향가의 가장 큰 특징인 이두식 표기인 반면 고려속요의 가장 큰 특징인 후렴구와 분련체의 요건은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고 보아 향가에 귀속시켰다.
다섯째, <도이장가>는 연희 때 불려졌을 가능성이 높다.
<참고자료>
1. <평산신씨고려태사장절공유사(平山申氏高麗太師壯節公遺事)> 원문
2. 해독
<양주동>
니믈 오잎오싶힝
밑힝밑 까하다 밋곤
넉시 가샤딪
사밑샨 벼슬마 힝힝져
힝힝져 빛라며 아리라
그다 두 功臣여
자최다
나토샨뎌
<정열모>
님을 굳휴싶힝 밑싶믄
저 하다 및건
넉시 가샤딪
중삼오 시켜 구실 니수려
니수려 바링미 아리링 믿비리
믿비리 두 功臣 하 오라나
고딪자최까밑
나토시메
<지헌영>
님을 올오싶오 밑힝믄
밑힝믄 까하늘 미치곤
넉시 가샤이여
싶링여이신 짐딪다링
짐딪다링
자피어 두 功臣여
고딪자리는
나토샤져
<김완진>
니믈 오잎오싶힝
밑힝믄 까하늘 밋곤
넉시 가샤딪
몸셰오신 말아
셕 맛도려 활자바리 가싶와뎌
됴타 두 功臣아
오래옷 고딪 자최다
나토신뎌
<유창균>
님을 오가오싶힝
밑힝믄 까 하다 미칭곤
넉시 가샤딪
밑싶 삼오샤 내리신 벼슬 말아
힝 힝고져 빛람 아니라
다밑 뎌곳 두힝 功臣아잎
곧 나딪 자초
그힝기 나토샬뎌
3. 현대어역
<김완진>
님을 온전케 하온
마음은 하늘 끝까지 미치니,
넋이 가셨으되
몸세우고 하신 말씀,
직분 맡으려 활 잡는 이 마음 새로워 지기를
좋다. 두 공신이여
오래오래 곧은 자최는 나타내신저.
<유창균>
님을 온전하게 하오신
마음은 하늘 끝까지 미치거니,
영혼은 가시었으되
마음에 (깊이) 새기시어 내려주신 변슬의 綸音
또 하려므나 하는 바람(希望)을 알 것이로다
더불어 저곳에 있는 두 功臣의
곧 나타난 그 功績
그윽히 나타나게 하신 것이로다.
<참고문헌>
http://bh.knu.ac.kr/∼mkkim/
김동욱, 도이장가의 문헌 민속학적 고찰, 고려가요연구, 새문사, 1982
장덕순, 구문학통론, 신구문화사, 1972
최용수, 고려가요연구, 계명문화사, 1993
김기동, 구문학개론, 정연사, 1960
김기탁, 도이장가에 대하여, 영남어문학, 영남어문학회, 1982
김동욱, 도이장가의 문헌 민속학적 고찰, 고려가요연구, 새문사, 1982
김상선, 한국시가의 형태적 고찰, 중앙대 논문집 13집, 1968
김완진, 도이장가의 새로운 해독을 위하여, 연암현평효박사회갑기념논총, 1981
나경수, 향가문학론과 작품연구, 1995, 집문당
성기옥, 도이장가의 장르 귀속, 국어국문학연구 16집, 영남대 국어국문학회, 1974
양주동, 여요전주, 을유문화사,1947.
유창균, 향가비해, 형설출판사, 1996
이두현, 한국가면극, 문공부 문화재관리국, 1969
이임수, 고려가요연구, 경북대박사학위논문, 1988
정병헌, <悼二將歌>의 製作 經緯와 文學史的 意義, 한국고전시가작품론1, (백영정병욱선생
10주기추모논문집), 집문당, 1992
조동일, 한국문학통사, 지식산업사, 1992
조윤제, 조선시가사강, 을유문화사, 19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