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산신씨본관과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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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평산 신씨 본관 유래

Ⅱ 평산 신씨의 시조 신숭겸
1. 대표적인 일화인 공산전투
2. 사안도에 관한 일화와 도이장가
(1)사안도 일화
(2)도이장가

Ⅲ.고려사(高麗史)에 기록된 장절공(壯節公)의 행적
1. 태조 세가(太祖 世家)의 기록
2.성종 세가의 기록
3.현종 세가의 기록
4.예종 세가의 기록
5.공양왕 세가의 기록
6.예지의 기록
7.선거지의 기록

Ⅲ. 가문을 빛낸 인물

Ⅳ. 맺음말

본문내용

인물이 되었다.
명인의 아들 익(翌)은 명종때 무과에 급제하여 함평 현감으로 나가 치적을 쌓았고, 선조때
제주 목사, 전라도 병마절도사, 순천 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그는 본래 남대문 밖 청파의 배다리 근처에 살았다. 하루는 집근처를 지나가던 병조판서
[류전]의 행차를 범하여 전도하는 하인에게 끌려가 욕을 당했다. 익은 모르고 범한 것인데 너무 지나치게 욕을 보였다 하여 이 하인을 번쩍 들어 도랑에 내던져 버렸다. 이 소란을 보고 있던 류전은 익을 장하게 보고 임금에게 대장부 하나를 발견했다고 아뢰어
선전관에 특채되었으며, 명종이 서교에 나갔을 때 거센 돌풍에 어막의 끈이 끊겼는데 익은
그 끈을 붙잡고 어막이 넘어지지 않도록 혼자 버티고 있었다고 한다.
명장으로 유명했던 입(砬)은 1583년 온성부사가 되어 야인들의 소굴을 소탕하고 개선하자
선조 임금은 교외에까지 직접 마중을 나가 맞았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는 손수 불러
보검을 내리며 왜군 토벌을 부탁했으나 빈약한 병력으로 적군과 대결하다 참패하자
부하장 김여물과 함께 강물에 투신 자결했다.
입(砬)의 아들 3형제 중 장남 경진은 공조참의와 병조참판을 거쳐 병조판서에 올라
훈련, 호위, 포도의 3대장을 겸하고 병자호란 때는 남한산성 수비를 담당했다.
특히 그는 아버지가 투신해서 죽은 강의 물고기를 어찌 먹을 수 있겠느냐 하며 평생 동안
물고기를 먹지 않았으며, 우의정·좌의정을 거쳐 평성부원군에 봉해지고 영의정에 이르러,
정사이등공신에 봉해진 아우 경우(景裕), 동성군 경인과 함께 의절의 무맥을 이었다.
숙종 때 대사헌에 올랐던 완(玩)은 이조판서를 거쳐 우의정에 올라 희빈 장씨의 처벌을 주장했고 북한산성의 축조를 건의하여 왕의 승낙을 받았으나 일부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으며, 영의정에 올라 평천군에 봉해졌다.
영조 때 알성문과에 급제했던 만(晩)은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을 지내고 영중추부사에 이르러, 역시 영의정을 역임한 후 기로소에 들어간 아우 회(晦)와 함께 가문을 대표했다.
한말에 와서 가문을 빛낸 인물로는 독립군 양성에 전력했던 팔균(八均)이 토비의 습격을 받고 순절했으며, 대한민국 건국 초 제헌국회 의원에 당선되어 초대 부의장을 지내고
민주국민당 최고위원과 민주당 대표최고위원으로 야당을 영도했던 익희(翼熙)는 자유당
독제정권 치하에서 민주당 공천으로 대통령에 출마하여 평산 신씨의 가맥을 더욱 빛냈다.
Ⅳ. 맺음말
앞에서 말한 것처럼 나는 평산 신씨 장절공파 32대손으로 태어났다. 어릴 적에는 신씨 성만 가지고 있으면 다 나와 먼 사촌쯤 되는 줄 알았고, 신씨 성을 지닌 인물들이 텔레비전 드라마에 나올 때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세종대왕이 나오던 드라마에서 나온 집현전 학자 신숙주가 조상인줄 알았고, 율곡 이이의 어머니인 신사임당이 먼 조상 할머니인줄 알았으며, 역사 속 신씨는 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인줄 알았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반에서 신씨는 항상 나뿐이었기 때문에 신씨라는 성씨는 내 별명을 짓는데 아주 유용했었다. 신발장, 신라면 등등 그 때는 그냥 내 성이 신씨라는 게 싫어서 그런 놀림을 받고 아버지한테 나는 신씨라는 성이 싫다고 울며 말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아버지가 보여주신 족보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먼지가 잔뜩 쌓인 오래된 종이 냄새가 가득한 그 책에는 나와 같은 신씨 성을 가진 사람들의 이름이 빼곡히 그 때 한동안은 내가 알고 있는 신씨 성을 가진 모든 사람들을 찾아보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었다. 신숙주도 신사임당도 우리 신씨가 아니구나 하고 했던 생각들이 아직도 생각하면 왜 그리 한심하고 웃겼었는지..
이번 학기에 수강하게 된 한국인의 역사의식이라는 수업에서 교수님께서 개강 첫 주에 처음 출석을 부르시며 일일이 본관과 몇 대 손인지를 물어보셨는데 상당수의 학생들이 대답을 하지 못했었던 일이 있었다. 그때 그 교수님께서는 자신의 뿌리를 바로 알아야 자기 자신도 바로 설 수 있다고 말씀해 주신 기억이 난다.
이번 과제를 준비하면서 나도 참 많은 것을 알게 된 것 같다. 신숭겸 장군에 대해서는 몇 년 전에 큰 인기를 끌었었던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 자세히 다루어지면서 가족들과 마음속에서 뭔가 뿌듯한 기분으로 그 드라마를 봤었다. 하지만 신숭겸 장군이외의 다른 역사 속에 우리 가문을 빛낸 분들에 대해서나 신숭겸 장군의 자세한 일화 등을 접할 기회는 없었는데 이번 과제를 통해 좀더 나를 있게 해주신 분에 대해서 알아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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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12.05
  • 저작시기20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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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440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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