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교육기관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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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고등교육기관

Ⅲ. 중등교육기관

Ⅳ. 초등교육기관

Ⅴ. 결론

본문내용

에 초등교육기관인 서당은 다른 교육기관보다 흥하였다.
서당의 설립은 네 가지로 볼 수 있는데, ① 훈영자영서당 - 이것은 훈장 자신이 자기의 생계를 위하거나 또는 가세가 넉넉한 선비가 일종의 육영사업으로 혹은 교육을 취미로 설립하는 서당이다. ② 유지독영서당 - 이것은 그 동리에서 가세가 넉넉한 이가 자기의 자제를 교육시키기 위하여 훈장을 단독으로 초청하여 일체 경비를 단독으로 부담하는 서당이다. 때로 여기에는 약간의 이웃집 근친의 자제도 함께 포함하는 수가 있는데, 이때 경비를 부담하지 않고 공부하는 것을 가리켜 동냥공부라고 한다. ③ 동조합서당- 한마을 사람이 합심하여 훈장 및 교육에 대한 경비를 공동으로 분담하고, 한 마을의 자제가 누구나 들어가 공부할 수 있는 서당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서당의 조직은 훈장, 접장, 학도로 구성되어있는데,
① 각 서당은 학덕이 겸비한 훌륭한 훈장을 모시는 것이 희망이지만, 대체로 학식이 놓고 덕망이 높은 선비 같으면 관계에 진출하거나 지방에서는 향교나 서원에 우선적으로 부임하기 때문에 서당의 훈장은 실력이 별로 넉넉지 않았다. 그러므로 훈장으로서 경서와 문의나 해득하는 자가 드물었고, 주석과 언해를 참고하면서 경서와 문의나 해득하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② 접장은 그 규모가 큰 서당에나 있는 것이니, 접이란 단체의 뜻으로 또는 다수를 뜻하는 것이며, 접장이란 그 단체의 장을 말한다. 규모가 큰 서당에는 학도의 수가 많아서 훈장 1인으로써 많은 학도를 가르칠 수 없으므로 학력과 연령이 높은 학도를 골라 접장으로 삼는 것이다. 그래서 접장은 훈장에게서 배운 것을 미쳐 깨우치지 못하는 동료학도나 혹은 하급자를 훈장 대신 가르치는 것이니 이것은 영국의 조교제도의 교수법과 비슷하다.
③ 학도는 보통 7,8세에서 15,6세 사이의 아동들이 중심이요, 20세 이상의 만학도나 지진아도 있었다. 그러므로 서당 학도의 학력은 십인 십색이라서 일률적인 교육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정도가 높은 학도가 낮은 학도를 가르쳐서 훈장 접장을 도우는 것이 실정이다. 이리하여 서당은 그 설립별 종류에서 본 바와 같이 그 서당 학도가 제한되어 엄격히 신분이 규정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여기에서 상인 및 백정의 자제는 입학하지 못했다.
) 김재만, 『敎育史』, 교육과학사, 1984
나. 교육의 목적과 내용
조선시대의 교육의 목적이 일반적으로 공통되는 점은 과거의 준비이지만, 서당교육의 목적은 과거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서당이 더 많은 서민교육의 역할을 담당하였음은 사실이지만, 일부의 학도들은 가문과 재력과 재능이 허락하는 대로 서원이나 향교를 거쳐 또는 사학이나 성균관으로 진학하였으며, 이리하여 출세의 길이 열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더 많은 학도들은 수신제가의 일반 교양이나 생활의례 및 관혼상제의 예를 치를 줄 아는 것으로 만족하였다. 후자의 경우는 본래 서당의 유생들도 향교나 사학에 입학하여 과거를 보아 입신양명하는 것을 희망하는 바였지만, 조선조의 고정된 신분제도와 과거제에서는 신분차별 때문에 성취하는 예가 드물다는데 그 이유가 있다.
그 때문에 서당의 학규는 특별히 정해진 것이 없고, 국가에서는 그대로 방관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서당의 교육은 읽기, 글짓기, 글씨 쓰기가 기본이며,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① 읽기의 교재는 천자문, 동몽선습, 통감, 소학, 사서삼경, 사기, 당송문, 당율등이 보통이고 춘추, 예기, 근사록등을 읽으면 좀 정도가 높은 편이요, 더 많이 나아가면 주자어류, 제성리학, 이정전서, 사략 등 높은 교양철학과목도 있었으니. 서당의 교과의 특징은 처음 천자문으로부터 한문의 기초를 공부한다는데 있었다.
② 글짓기로는 5,7언절구 사율과 고풍 18구시 작문 등이 보통이며, 훈장의 품위가 낮은 벽촌의 작은 서당에서는 제술이 제외된 데도 많이 있었다.
③ 글씨 쓰기는 해서와 초서였었고, 주로 훈장의 글을 받거나, 혹은 명필의 글을 본떠서 쓰는 것이 연습방법이었다.
) 김재만, 『敎育史』, 교육과학사, 1984
다. 교수방법
서당에 있어서의 교수법은 철저히 주입식이요, 암기 위주의 교수방법을 채용하였다.
) 김재만, 『敎育史』, 교육과학사, 1984
즉 처음에는 천자문 같은 것을 한 자씩 가르치고, 다음에는 동몽선습 같은 것으로 음독 법을, 이어서 구두의 문리와 문장의 대의를, 끝으로 스스로 풀이하여 읽도록 하였다. 강독에 있어 오늘 학습한 것을 기억해야 다음 장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서당에서는 또한 글공부에 있어 학과목과 절후를 조절하였는데, 예컨대 여름에는 흥취가 있는 시·율을 읽고 짓는 것으로 구성했으며, 봄·가을에는 사기와 고문으로, 겨울에는 경서를 주로 하였다.
서당이 기초단계의 사설교육기관으로써 민중들의 대중교육인 문자교육 그리고 예교적 학풍을 이루고 도덕을 순화하는데 끼친 영향은 막중했다. 따라서 왕조에서는 효종 10년 좨주 송준길에게 명하여 서당에 관한 학규라고 할 수 있는 향학지규을 마련하게 하였다.
) 이원호,『敎育史』,배영사, 1994
Ⅴ. 결론
지금껏 조선시대의 교육기관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조선시대의 교육기관은 고등교육기관으로써 성균관이 있고, 고등교육기관에는 사학, 향교, 서원이 있다. 또한 초등교육으로는 서당이 있다.
조선시대는 기본적으로 유교숭상사회였기 때문에, 모든 교육기관의 중심은 유교교육에 있었다. 조선조에 성균관은 최고의 교육기관으로써, 유교의 심화와 관료양성 공급에 이바지하였고, 교육 내용은 유교의 경서를 익히는 것이다. 학습의 자유도 어느 정도 보장되었으며, 입학자격은 생원·진사에게 주어졌다. 문묘와 숙소가 같이 있었고, 양현고라는 기관을 두어 제도적 운영을 꾀하였다.
사학은 성균관의 부속학교 격으로 동·서·남·중학을 말한다. 성균관과 차이는 문묘를 두지 않은 점에 있다.
향교는 지방문화 향상 및 성현에 대한 제사를 목적으로 하였으며, 생도의 유학교육에 힘을 기울였다. 서원은 향교가 부실해지자 학문의 덕행 연마, 향당의 문화와 유학을 발전시킬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서당은 기초교육기관으로써 지방문화 및 국민교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 이원호,『敎育史』,배영사,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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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11.25
  • 저작시기20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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