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전주소리문화
2. 전주소리의 역사와 종류
1) 전주소리의 역사와 배경
2) 전북소리의 종류
3. 전주 소리의 특색
4. 동짓날과 전주대사습놀이
2. 전주소리의 역사와 종류
1) 전주소리의 역사와 배경
2) 전북소리의 종류
3. 전주 소리의 특색
4. 동짓날과 전주대사습놀이
본문내용
기하면 "전주대사습"은 조선후기에 전주부성의 통인들이 동짓날 밤에 이름난 광대들을 초청하여 판소리를 듣고 노는 잔치에서 유래하였다. 그러나 그 시작 시점과 단절 시기를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다만 최현식의 보고서에 의하면, 조사자들이 대부분 1884년 이후 출생자라는 점과 조사자 중에는 통인 출신도 있는 것으로 보아서 대한제국이 공식적으로 종말을 고하는 1910년 한일합방 직전까지는 존속되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전주대사습에 관한 또 하나의 사실은 -『조선창극사』에서는 확인되지 않고 다만 제보자들의 증언에 의한 내용이지만 - 전주부성과 전라감영의 경쟁적 놀음이라는 점이다. 주지하듯이 전라도 일대를 관장하는 관찰사(지금의 도지사)의 집무실이 있는 곳이 전라감영이고, 지금의 도청자리에 있던 선화당이 그곳이다. 그리고 전주부성을 관할하던 전주부윤(지금의 전주시장)의 집무실을 동헌이라고 하며, 위치는 지금의 풍남문과 객사를 잇는 도로에서 전북예술회관 뒤편 부근이다.
즉 전주부(全州府)와 전라감영(全羅監營)이 이름난 광대들을 대사습놀이에 경쟁적으로 초대하여 관중의 많고 적음으로 일종의 권위에 대한 우열을 가렸던 것이다. 따라서 대사습 준비는 한달 전부터 시작하였는데, 전주동헌과 전라감영의 통인들이 각각 훌륭한 광대를 찾아서 각지로 수소문하는가 하면, 수십리 밖에 사는 광대라도 불원천리하고 초청하였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관청에 미리 초대한 후에는 이들이 최고의 기량을 선보일 수 있도록 솜씨있는 음식집을 지정하여 숙식케하였다고 하니 그 대우가 어떠했는지를 짐작할 만 하다.
이렇듯 전주대사습은 참가하는 자체만으로 소리꾼에게는 더할나위 없는 영광이었으며 더없는 소원이었다. 그렇지만 전주대사습에서 인기를 끌거나 명예를 드높였다고 해서 특별한 칭호를 얻거나, 신분이 상승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주대사습 무대에 오르는 것을 소원하였다는 것은 그만큼 광대에 대한 대우가 전국에서 으뜸이었다는 것이고, 이미 전주에 판소리 전통이 뿌리깊게 착근하여 소리를 알고, 듣고, 열광하는, 일테면 소리문화가 확고했음을 반증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대사습놀이가 계속되면서 전주부성과 전라감영의 경쟁이 과열이 되다보니, 통인들 간에, 한량들 간에, 또는 관중들 간에 설전이 벌어지거나, 심하면 투석전이 벌어지는 등 폐단이 발생하게 되었다. 그러자 전라감영에서는 이러한 폐단을 차단하기 위해서 격년제로 대사습을 개최케하거나, 아예 동짓날을 피하여 7월 연(宴)날에 역시 전국의 뛰어난 명창들을 수소문하여 초대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배경에는 한편으로는 전라감영측에서 전주부측과 겨룸에 있어 열세를 면치 못했음직 하고, 또 한편으로는 전주를 텃밭으로 대대로 세습되던 전주아전들의 위세를 짐작할 수 있는 일면도 있다.
전주대사습은 1910년을 전후해서 단절된 이후로 6∼70년이 지난 1975년에 전라북도 국악협회의 헌신적인 노력에 의해서 「전주대사습놀이 부활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그 해 <제1회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를 경연대회 방식으로 개최한 이래 지금까지 26회를 거쳤다. 다행히도 단절된 이전의 모습대로 아직까지는 대한민국 최고의 국악인 등용문으로 자리잡고 있다. 뿐만아니라 국악 꿈나무 육성의 일환으로 시작한 「전주대사습놀이 학생전국대회」도 올해로 18회째를 맞이하고 있다.
개최 절기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다수의 고로(古老)들께서 증언한 바가 한결같이 동짓날이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서 과거의 대사습은 동짓날 통인놀이였음을 부정할 단서가 없으며, 부활된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가 전주시민의 날인 단오날에 행사 시기를 잡은 것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부활이나 복원에 있어서 그 형식이나 시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권위와 전통을 여하히 계승하느냐가 더 관건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동짓날 밤에 통인청 앞마당에 호엽등과 숯불을 밝혀놓고 팥죽제 지낸 음식을 먹어가며 소리판을 벌렸던 전주만의 동지풍속이 오늘날 국악계 최고의 등용문으로 부활한 것이다. 이것은 곧 지역과 주민의 동질감과 정체성 확보에 팔을 걷어부친 지방자치시대로 볼 때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행해진 과거의 세시풍속이 시사하는 바 자못 크다고 하겠다.
참고 문헌
http://www.sori.jeonbuk.kr
http://www.jjmhy.or.kr
목 차
1. 전주소리문화
2. 전주소리의 역사와 종류
1) 전주소리의 역사와 배경
2) 전북소리의 종류
3. 전주 소리의 특색
4. 동짓날과 전주대사습놀이
전주대사습에 관한 또 하나의 사실은 -『조선창극사』에서는 확인되지 않고 다만 제보자들의 증언에 의한 내용이지만 - 전주부성과 전라감영의 경쟁적 놀음이라는 점이다. 주지하듯이 전라도 일대를 관장하는 관찰사(지금의 도지사)의 집무실이 있는 곳이 전라감영이고, 지금의 도청자리에 있던 선화당이 그곳이다. 그리고 전주부성을 관할하던 전주부윤(지금의 전주시장)의 집무실을 동헌이라고 하며, 위치는 지금의 풍남문과 객사를 잇는 도로에서 전북예술회관 뒤편 부근이다.
즉 전주부(全州府)와 전라감영(全羅監營)이 이름난 광대들을 대사습놀이에 경쟁적으로 초대하여 관중의 많고 적음으로 일종의 권위에 대한 우열을 가렸던 것이다. 따라서 대사습 준비는 한달 전부터 시작하였는데, 전주동헌과 전라감영의 통인들이 각각 훌륭한 광대를 찾아서 각지로 수소문하는가 하면, 수십리 밖에 사는 광대라도 불원천리하고 초청하였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관청에 미리 초대한 후에는 이들이 최고의 기량을 선보일 수 있도록 솜씨있는 음식집을 지정하여 숙식케하였다고 하니 그 대우가 어떠했는지를 짐작할 만 하다.
이렇듯 전주대사습은 참가하는 자체만으로 소리꾼에게는 더할나위 없는 영광이었으며 더없는 소원이었다. 그렇지만 전주대사습에서 인기를 끌거나 명예를 드높였다고 해서 특별한 칭호를 얻거나, 신분이 상승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주대사습 무대에 오르는 것을 소원하였다는 것은 그만큼 광대에 대한 대우가 전국에서 으뜸이었다는 것이고, 이미 전주에 판소리 전통이 뿌리깊게 착근하여 소리를 알고, 듣고, 열광하는, 일테면 소리문화가 확고했음을 반증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대사습놀이가 계속되면서 전주부성과 전라감영의 경쟁이 과열이 되다보니, 통인들 간에, 한량들 간에, 또는 관중들 간에 설전이 벌어지거나, 심하면 투석전이 벌어지는 등 폐단이 발생하게 되었다. 그러자 전라감영에서는 이러한 폐단을 차단하기 위해서 격년제로 대사습을 개최케하거나, 아예 동짓날을 피하여 7월 연(宴)날에 역시 전국의 뛰어난 명창들을 수소문하여 초대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배경에는 한편으로는 전라감영측에서 전주부측과 겨룸에 있어 열세를 면치 못했음직 하고, 또 한편으로는 전주를 텃밭으로 대대로 세습되던 전주아전들의 위세를 짐작할 수 있는 일면도 있다.
전주대사습은 1910년을 전후해서 단절된 이후로 6∼70년이 지난 1975년에 전라북도 국악협회의 헌신적인 노력에 의해서 「전주대사습놀이 부활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그 해 <제1회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를 경연대회 방식으로 개최한 이래 지금까지 26회를 거쳤다. 다행히도 단절된 이전의 모습대로 아직까지는 대한민국 최고의 국악인 등용문으로 자리잡고 있다. 뿐만아니라 국악 꿈나무 육성의 일환으로 시작한 「전주대사습놀이 학생전국대회」도 올해로 18회째를 맞이하고 있다.
개최 절기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다수의 고로(古老)들께서 증언한 바가 한결같이 동짓날이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서 과거의 대사습은 동짓날 통인놀이였음을 부정할 단서가 없으며, 부활된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가 전주시민의 날인 단오날에 행사 시기를 잡은 것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부활이나 복원에 있어서 그 형식이나 시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권위와 전통을 여하히 계승하느냐가 더 관건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동짓날 밤에 통인청 앞마당에 호엽등과 숯불을 밝혀놓고 팥죽제 지낸 음식을 먹어가며 소리판을 벌렸던 전주만의 동지풍속이 오늘날 국악계 최고의 등용문으로 부활한 것이다. 이것은 곧 지역과 주민의 동질감과 정체성 확보에 팔을 걷어부친 지방자치시대로 볼 때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행해진 과거의 세시풍속이 시사하는 바 자못 크다고 하겠다.
참고 문헌
http://www.sori.jeonbuk.kr
http://www.jjmhy.or.kr
목 차
1. 전주소리문화
2. 전주소리의 역사와 종류
1) 전주소리의 역사와 배경
2) 전북소리의 종류
3. 전주 소리의 특색
4. 동짓날과 전주대사습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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