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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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제 1부 고대철학
제 1장 희랍로마 신화
그리스 철학(Greek philosophy)

제 2장 자연철학
1. 일원론적 자연철학
가. 밀레토스 학파
(1) 탈레스(Thales)
(2) 아낙시만드로스(Anaximandros)
(3) 아낙시메네스(Anaximenes)
나. 헤라클레이토스(Heracleitos)
다. 피타고라스(Pythagoras)
라. 엘레아 학파
(1)크세노파네스(Xenophanes, 570-480, B.C.)
(2)파르메니데스
(3)제논
2. 다원론적 자연철학
(1) 엠페도클레스(Empedocles)
(2)아낙사고라스
(3) 레우키포스(Leucippos)와 데모크리토스(Democritos):원자론자들

제 3장 아테네기의 철학
1. 소피스트(Sophist)
2. 소크라테스(Socrates, BC 469~BC 399)
* 산파술(maieutike)
*소 소크라테스 학파
(1) 키레네 학파<Kyrenaioi>
(2) 키니코스(Cynics/Kynikos) 학파
3. 플라톤(Platon, BC 429?~BC 347)
4.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BC 322)
*中庸論

제 4장 헬레니즘-로마시대의 철학
1.스토아 학파(Stoicism)
*금욕주의(asceticism)
2. 에피쿠로스(Epikouros, BC 342?~BC 271)
*에피쿠로스 학파(Epicurean school)
* 쾌락주의(hedonism)
3. 懷疑學派(skeptikoi)
4. 절충주의 학파
5. 신플라톤주의(Neo-Platonism)

제 2부 중세철학
*중세철학
제 1장 기독교사상
제 2장 교부철학
교부철학(Patrisic Philosophy)
(1)그노시스파
(2)호교파
▶호교가
▶알랙산드리아의 호교가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A., 354-430)

제 3장. 스콜라 철학(Scholasticism)
▶ 스콜라 철학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1274. 3. 7)

본문내용

였으며, 그 동안에 사제(司祭)가 되었다. 1252년 파리대학 신학부의 조수로 연구를 심화시키는 한편, 성서 및 《명제집(命題集)》의 주해에 종사하였고, 57년 신학교수가 되었다. 59년 이후 약 10년 간 이탈리아 각지에서 교수 및 저작에 종사, 68~72년 재차 파리대학에서 교편을 잡은 후 나폴리로 옮겼다. 74년 리옹 공의회(公議會)에 가던 도중 포사노바의 시토회 수도원에서 병사하였다. 그는 방대한 저작을 남겼는데, 그 종류는 그가 대학교수 및 수도회원으로서 행한 각종 활동을 반영하는 것이다. 우선 《신학대전(神學大全):Summa Theologiae》(1266~73) 《대이교도대전(對異敎徒大全):Summa de Veritate Catholicae Fidei Contra Gentiles》(59~64)등의 교과서적체계적 저작을 꼽을 수 있으며, 《진리에 대하여》 《신의 능력에 대하여》 등 그가 교수로서 지도한 토론의 기록과 성서의 주해,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요 저작, 그리고 프로클로스, 가짜 디오니시오스, 보에티우스 등의 저작 주해 및 신학과 철학의 갖가지 문제에 대하여 논한 소논집(小論集) 등이 있다. 그는 스콜라철학의 왕이라 불리고, 천사적 박사(Doctor angelicus) 또 공동(共同)의 박사(Doctor Communis)라는 존칭이 주어졌다. 그는 《대이교도대전》의 권두에서 예지(叡智)의 탐구는 모든 인간의 영위(營爲) 중에서도 가장 완전고귀유익하여 커다란 기쁨을 주는 것이라 찬미하였지만, 그의 일생을 한마디로 표현할 말을 고른다면 끊임없는 예지의 탐구 바로 그것이다. 그에게 있어 예지의 탐구란 신학철학의 어떤 말로 불리든 간에, 주체 외부에 체계 혹은 작품을 쌓아올리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오히려 궁극목적을 향하여 전진하는 전인격적(全人格的)인 자기실현의 발걸음이었다. 거기에 토마스 철학의 실존적 성격이 있다. 그의 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떠나서는 논할 수 없다. 그는 생애를 통하여 아리스토텔레스 연구에 몰두하였다. 그러나 그의 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반복도, 그리스도교화도 아니며, 오히려 아우구스티누스와 안셀무스를 거쳐서 형성된 그리스도교 철학을 독창적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그는 철저한 경험적 방법과 신학적 사변(思辨)을 양립시켰는데, 이와 같이 독자적인 종합을 가능하게 한 것은 창조(創造)의 가르침에 뿌리박은 존재(存在)의 형이상학이었다. 그는 거의 모든 학문영역에서 비길 데 없는 종합화를 이룩함으로써 중세사상의 완성자가 되었지만, 동시에 그가 신(神) 중심의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인간의 상대적 자율(相對的自律)을 확립한 일은 곧 신앙과 신학을 배제하는 인간중심적세속적인 근대사상을 낳는 운동의 기점이 되었다. 그는 엄밀한 의미에서 최초의 근대인(近代人)이며, 그 영향은 그의 이름을 붙인 학파를 훨씬 초월하여 현대 사상 전역에 미치고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1274. 3. 7)
중세 유럽의 스콜라 철학을 대표하는 이탈리아의 신학자. 로마와 나폴리 중간에 있는 로카세카 출생. 성주(城主)의 아들로 처음에 나폴리대학에 입학했으나 설교 및 학문연구를 사명으로 하는 도미니코회(會)에 들어가 파리와 쾰른에서 알베르투스 마그누스에게 사사하였으며, 그 동안에 사제(司祭)가 되었다. 1252년 파리대학 신학부의 조수로 연구를 심화시키는 한편, 성서 및 《명제집(命題集)》의 주해에 종사하였고, 57년 신학교수가 되었다. 59년 이후 약 10년 간 이탈리아 각지에서 교수 및 저작에 종사, 68~72년 재차 파리대학에서 교편을 잡은 후 나폴리로 옮겼다. 74년 리옹 공의회(公議會)에 가던 도중 포사노바의 시토회 수도원에서 병사하였다. 그는 방대한 저작을 남겼는데, 그 종류는 그가 대학교수 및 수도회원으로서 행한 각종 활동을 반영하는 것이다. 우선 《신학대전(神學大全):Summa Theologiae》(1266~73) 《대이교도대전(對異敎徒大全):Summa de Veritate Catholicae Fidei Contra Gentiles》(59~64)등의 교과서적체계적 저작을 꼽을 수 있으며, 《진리에 대하여》 《신의 능력에 대하여》 등 그가 교수로서 지도한 토론의 기록과 성서의 주해,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요 저작, 그리고 프로클로스, 가짜 디오니시오스, 보에티우스 등의 저작 주해 및 신학과 철학의 갖가지 문제에 대하여 논한 소논집(小論集) 등이 있다. 그는 스콜라철학의 왕이라 불리고, 천사적 박사(Doctor angelicus) 또 공동(共同)의 박사(Doctor Communis)라는 존칭이 주어졌다. 그는 《대이교도대전》의 권두에서 예지(叡智)의 탐구는 모든 인간의 영위(營爲) 중에서도 가장 완전고귀유익하여 커다란 기쁨을 주는 것이라 찬미하였지만, 그의 일생을 한마디로 표현할 말을 고른다면 끊임없는 예지의 탐구 바로 그것이다. 그에게 있어 예지의 탐구란 신학철학의 어떤 말로 불리든 간에, 주체 외부에 체계 혹은 작품을 쌓아올리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오히려 궁극목적을 향하여 전진하는 전인격적(全人格的)인 자기실현의 발걸음이었다. 거기에 토마스 철학의 실존적 성격이 있다. 그의 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떠나서는 논할 수 없다. 그는 생애를 통하여 아리스토텔레스 연구에 몰두하였다. 그러나 그의 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반복도, 그리스도교화도 아니며, 오히려 아우구스티누스와 안셀무스를 거쳐서 형성된 그리스도교 철학을 독창적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그는 철저한 경험적 방법과 신학적 사변(思辨)을 양립시켰는데, 이와 같이 독자적인 종합을 가능하게 한 것은 창조(創造)의 가르침에 뿌리박은 존재(存在)의 형이상학이었다. 그는 거의 모든 학문영역에서 비길 데 없는 종합화를 이룩함으로써 중세사상의 완성자가 되었지만, 동시에 그가 신(神) 중심의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인간의 상대적 자율(相對的自律)을 확립한 일은 곧 신앙과 신학을 배제하는 인간중심적세속적인 근대사상을 낳는 운동의 기점이 되었다. 그는 엄밀한 의미에서 최초의 근대인(近代人)이며, 그 영향은 그의 이름을 붙인 학파를 훨씬 초월하여 현대 사상 전역에 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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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12.16
  • 저작시기20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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