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소식의 시정화의론
2.시정화의론
3.장자의 해의반박
2.시정화의론
3.장자의 해의반박
본문내용
朱長文), 『묵지편(墨池編)』〕
구양수(歐陽修)는 『집고록(集古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법첩(法帖)이란 곧 위진(魏晋) 때에 사람들이 집안 사람이나 벗들에게 써주었던 것으로서 그 마음대로 써나간 은은한 맛은 애초에 그렇게 의도한 것이 아니지만 저절로 그렇게 되어 가히 즐길 만한 것이다.
) 歐陽修, 『集古錄』. 法帖者, 乃魏普時人施於家人朋友, 其逸筆餘興, 初非用意, 而自然可喜. 卷數編名未詳
구양수도 서예가의 정신상태와 서예작품의 우열의 관계를 지적하였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왕희지
) 왕희지(王羲之, 321-379, 또는 307-379, 307-365). 중국의 서성(書聖)으로 불리는 동진(東晋)의 서예가.
는 <난정서(蘭亭序)>
) 난정서(蘭亭序). 왕희지는 영화(永和) 3년(347) 3월 3일, 회계(會稽) 산음(山陰)의 난정〔蘭亭; 지금의 절 강성(浙江省) 소흥현(紹興縣) 서남(西南) 난저(蘭渚)에 있었던 정자〕에서 뜻이 통하는 당대의 명사 40여 명과 함께 불계〔 ; 부정(不淨)한 것을 씻는 의식〕의 행사를 가진 다음, 술을 마시며 시를 짓고 이 때 지은 시들을 모아서 『난정집(蘭亭集)』을 꾸며 그 서문을 자작(자작) 자서(自書)하였는데, 이것이 곧 중국서예 사상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난정서(蘭亭書, 또는 蘭亭敍)>이다. 혹 <난정시서(蘭亭詩書)>, <난정집서(蘭亭集書)>, 난정수계서(蘭亭修 書)>라고도 불리는뎨, 이는 잠견지(蠶繭紙)에 서수필(鼠鬚 筆)로 쓴 것이라 한다.
를 수없이 여러번 썼지만 처음에 쓴 것이 가장 좋았다고 하는데, 뒤에 아무리 써도 처음 썼던 것만한 효과가 없었던 것은 처음 썼을 때와 같은 그러한 흥취가 없었기 때문이다. 소식(蘇軾, 1036-1101)
) 소식(蘇軾, 1036-1101). 북송의 정치가, 문인, 서화가.
이 <적벽부(赤壁賦)>
) 적벽부(赤壁賦) 소식이 황주(黃州)에 유배된 뒤 원풍(元豊) 5년(1082) 무도산(武道山)의 도사(道士) 양세창(楊世昌)과 함께 황강성(黃崗城) 밖의 적벽(赤壁)에서 두 차례 뱃놀이를 하면서 그때의 감회를 자작(自作) 자서(自書)한 것으로서 중국 부문학사상(賦文學史上) 최고의 걸작으로 꼽힌다. 특히 전적벽부(前赤壁賦)가 더욱 유명하다.
를 썼을 때도 또한 처음 쓴 것이 가장 좋았고 뒤에 쓴 것은 처음 쓴 것만 못했다. 그림 그릴 때도 이와 비슷한 경우가 있으니, 어떤 화가는 밑그림을 그릴 때는 아무렇게나 대강 그려도 매우 생동하지만 정식작품은 오히려 종종 생동하게 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사의화(寫意 )는 곧 그저 몇 십분 만에 힘차게 붓을 휘둘러 그리는 것인데, 간혹 생각하지 않았던 효과가 나기도 한다. 그림을 그릴 때 화가의 정신 상태가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한다는 것을 『장자』이전에는 아무도 논술하지 않았다. "해의반박"은 예술창작에 있어서의 이러한 특수한 정신노동의 특수성을 이야기하였기 때문에 역대 화가들로부터 많은 찬동을 받았다. 청(淸)초의 화가 운격( 格, 1633-1690)
) 운격( 格,1633-1690). 청초의 화가, 자는 수평(壽平)
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림을 그릴 때는 모름지기 옷을 벗고 다리를 뻗은 채 주위에 아무도 없는 듯한 마음이 있어야만 하니, 그러한 뒤에야 변화의 기틀이 손에 있고 원기(元氣)가 흘러넘치게 되며, 앞시대의 장인에 의해 구속되지 않고 법도 밖에서 노닐 수 있다.
) 格, 『南田畵跋』. 作畵須有解衣盤 旁若無人意, 然後化機在手, 元氣狼藉, 不爲先匠所抱, 而游於法度之 外矣. 저자는 위의 無人意를 無人之意로 인용하였으나 畵論 刊 所攸 翠狼 館 書本을 따른다.
〔『화론총간( 論叢刊)』의 『남전화발(南田 跋)』〕
구양수(歐陽修)는 『집고록(集古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법첩(法帖)이란 곧 위진(魏晋) 때에 사람들이 집안 사람이나 벗들에게 써주었던 것으로서 그 마음대로 써나간 은은한 맛은 애초에 그렇게 의도한 것이 아니지만 저절로 그렇게 되어 가히 즐길 만한 것이다.
) 歐陽修, 『集古錄』. 法帖者, 乃魏普時人施於家人朋友, 其逸筆餘興, 初非用意, 而自然可喜. 卷數編名未詳
구양수도 서예가의 정신상태와 서예작품의 우열의 관계를 지적하였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왕희지
) 왕희지(王羲之, 321-379, 또는 307-379, 307-365). 중국의 서성(書聖)으로 불리는 동진(東晋)의 서예가.
는 <난정서(蘭亭序)>
) 난정서(蘭亭序). 왕희지는 영화(永和) 3년(347) 3월 3일, 회계(會稽) 산음(山陰)의 난정〔蘭亭; 지금의 절 강성(浙江省) 소흥현(紹興縣) 서남(西南) 난저(蘭渚)에 있었던 정자〕에서 뜻이 통하는 당대의 명사 40여 명과 함께 불계〔 ; 부정(不淨)한 것을 씻는 의식〕의 행사를 가진 다음, 술을 마시며 시를 짓고 이 때 지은 시들을 모아서 『난정집(蘭亭集)』을 꾸며 그 서문을 자작(자작) 자서(自書)하였는데, 이것이 곧 중국서예 사상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난정서(蘭亭書, 또는 蘭亭敍)>이다. 혹 <난정시서(蘭亭詩書)>, <난정집서(蘭亭集書)>, 난정수계서(蘭亭修 書)>라고도 불리는뎨, 이는 잠견지(蠶繭紙)에 서수필(鼠鬚 筆)로 쓴 것이라 한다.
를 수없이 여러번 썼지만 처음에 쓴 것이 가장 좋았다고 하는데, 뒤에 아무리 써도 처음 썼던 것만한 효과가 없었던 것은 처음 썼을 때와 같은 그러한 흥취가 없었기 때문이다. 소식(蘇軾, 1036-1101)
) 소식(蘇軾, 1036-1101). 북송의 정치가, 문인, 서화가.
이 <적벽부(赤壁賦)>
) 적벽부(赤壁賦) 소식이 황주(黃州)에 유배된 뒤 원풍(元豊) 5년(1082) 무도산(武道山)의 도사(道士) 양세창(楊世昌)과 함께 황강성(黃崗城) 밖의 적벽(赤壁)에서 두 차례 뱃놀이를 하면서 그때의 감회를 자작(自作) 자서(自書)한 것으로서 중국 부문학사상(賦文學史上) 최고의 걸작으로 꼽힌다. 특히 전적벽부(前赤壁賦)가 더욱 유명하다.
를 썼을 때도 또한 처음 쓴 것이 가장 좋았고 뒤에 쓴 것은 처음 쓴 것만 못했다. 그림 그릴 때도 이와 비슷한 경우가 있으니, 어떤 화가는 밑그림을 그릴 때는 아무렇게나 대강 그려도 매우 생동하지만 정식작품은 오히려 종종 생동하게 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사의화(寫意 )는 곧 그저 몇 십분 만에 힘차게 붓을 휘둘러 그리는 것인데, 간혹 생각하지 않았던 효과가 나기도 한다. 그림을 그릴 때 화가의 정신 상태가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한다는 것을 『장자』이전에는 아무도 논술하지 않았다. "해의반박"은 예술창작에 있어서의 이러한 특수한 정신노동의 특수성을 이야기하였기 때문에 역대 화가들로부터 많은 찬동을 받았다. 청(淸)초의 화가 운격( 格, 1633-1690)
) 운격( 格,1633-1690). 청초의 화가, 자는 수평(壽平)
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림을 그릴 때는 모름지기 옷을 벗고 다리를 뻗은 채 주위에 아무도 없는 듯한 마음이 있어야만 하니, 그러한 뒤에야 변화의 기틀이 손에 있고 원기(元氣)가 흘러넘치게 되며, 앞시대의 장인에 의해 구속되지 않고 법도 밖에서 노닐 수 있다.
) 格, 『南田畵跋』. 作畵須有解衣盤 旁若無人意, 然後化機在手, 元氣狼藉, 不爲先匠所抱, 而游於法度之 外矣. 저자는 위의 無人意를 無人之意로 인용하였으나 畵論 刊 所攸 翠狼 館 書本을 따른다.
〔『화론총간( 論叢刊)』의 『남전화발(南田 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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