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환경의 전략적 재구성 : 페미니스트 여신의례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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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들어가는 말

2. 여신의례의 태동

3. 의례와 권력생산

4. 의례화의 장치

5. 나가는 말

본문내용

5. 나가는 말
진 코마로프(Jean Comaroff)에 따르면, 몸은 사회적 가치의 내면화와 재생산을 위한, 그리고 자아와 사회 관계의 세계를 동시에 구성하는 매개체이다.
) Jean Comaroff, Body of Power Spirit of Resistance: The Cultural and History of a South African People,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5, pp. 6-7.
여신의례는 해방된 몸을 창출하고, 나아가서 실제 환경을 재구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페미니스트들의 전략적 실천의 한 갈래로 시작되었다.
페미니스트 여신의례는 다양한 장치들을 통해서 의례화된 행위들을 생산한다. 그러한 행위들을 통해 구현된 환경은 그들이 추구하는 해방적 가치들의 원천으로 나타나게끔 전략적으로 구성되며, 의례 참여자들은 구조화된 환경을 몸으로 체현하게 된다. '영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임을 주장하는 페미니스트들은, 여신의례들을 통해 해방적 가치들을 체현하고 신체적 무의식의 차원에 각인시킨 참여자들이, 현실 환경에서 그러한 체현된 가치들을 투사(projection)함으로써 환경을 재구성하는 정치적 실천에까지 나아갈 수 있기를 의도한다. 그와 같이 재구성된 몸과 환경을 탄생시키는 것이 페미니스트 여신의례의 목적이며, 이러한 목적을 위해 틈 벌리기, 여신 상징, 과거의 재구성, 여성의 몸과 경험의 성화 등 다양한 장치들이 사용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실천은 항상 명료하기보다는 모호한 상황 속에서 이루어지며, 결코 실천에 연루된 사람이 볼 수 없는 새로운 상황을 발생시키기에 의도하지 않은 효과를 가져오기 마련이다. 아마도 그 의도하지 않은 효과 때문에, 페미니스트 진영 안에서도 운동의 한 갈래로서 여신의례의 필요성과 효과에 대해서 여러 가지 논의들이 있어 왔다. 이때 주목해야 할 것은 여신의례들에서 나타나는 다양성이다. 즉, 어느 정도 체계화되어 있는 집단 의례와 개인의례들에서부터 즉흥 퍼포먼스에 이르기까지 여신의례들이 매우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나타날 뿐 아니라, 동일한 여신의례 속에서도 참여자들은 동질적 메시지(이데올로기) 수령인으로 나타나지 않으며, 스스로에게 맞는 의미를 부여하는 능동적 개체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이는 의례 일반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특히 여신의례의 경우, 도그마적 교리체계를 거부함으로써 여신의례에 참여하는 여성이 자신의 삶에 대한 더욱 적극적인 의미부여를 가능하도록 권장하는 측면이 있다. 따라서 이들은 균질화될 수 없다. 여신의례에 참여한 이들은 조종, 동의, 저항 등 다양한 반응 속에서 의례에 참여하고, 의례화된 몸과 환경의 주조에 참여하는 것이다.
여신의례의 다양성은 목적과 효과라는 점에서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측면 모두를 띠고 있다. 인간의 전략적 실천의 작동 메커니즘 자체가 그러하듯이, 페미니스트적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선택된 다양한 장치들 역시 다양한 문화적 역사적 경계에 속해 있는 여성들에게서 전혀 의도하지 않은 효과들을 파생시키게 된다. 다시 말하면, 이러한 전략적 실천으로서의 여신의례들이, 페미니스트들이 의도한 결과를 반드시 발생시킨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지배집단의 폭력에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신체적 무의식 차원의 '집단적 오인'을 발생시키는 가부장제 의례 메커니즘에 저항하기 위한 전략적 실천으로서 여신의례가 고안되고 실천되었다면, 여신의례 역시 동일한 의례 논리에 의해 참여자들에게 모종의 신체적 무의식 차원의 '집단적 오인'을 발생시키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본고에서는 여신의례를 페미니스트들의 전략적 실천의 하나로서 보고 그 장치들을 검토해 보았지만, 여신의례들의 실제적 효과에 대해서는 별도의 분석이 필요할 것이며, 그것은 본고의 범위를 넘어서는 일이다. 여기서는 단지 한가지만을 지적해두고자 한다.
대안적 사회 질서를 추구하는 페미니스트들 내부에서 이렇게 의례와 상징의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필요한 일이고 또 어떤 의미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서구에서 페미니스트들의 전략적 실천의 하나로 출발한 여신의례들은 곧 원하지 않은 결과들을 직면하게 되었다. 곧, 페미니스트들 내부의 분열이다. 특히 소위 '정치적 페미니스트들'은 '영적 페미니스트들'의 여신의례들이 유토피아적이고 도피적이며, 여성들을 탈정치화한다고 비판했다. 또한, 여신의례들 내부에서 또 다른 권력의 층위들, 위계들이 생성되는 것을 경계했다. 실제로 여신의례의 실천자들은, 신시아 앨러의 분석에 따르면, 대부분 백인이며, 중산층 이상이며, 상당히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말하자면 사회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로서, 그들이 실천하는 여신의례들은 종종 여유 있는 사람들의 자기만족적인 축제로 여겨지기도 했다. 따라서, 페미니스트 여신의례들은 지나치게 개인적이고 낭만적이며, 결코 하나의 계급으로서 여성들의 관심사를 제기할 수 없다는 비판이 있었다.
) 정치적 페미니스트들과 영적 페미니스트들 사이의 갈등에 대해서는, Cynthia Eller, Living in the Lap of the Goddess: The Feminist Spirituality Movement in America, Crossroad, 1993의 제9장, "Feminist Politics and Feminist Spirituality"를 보라.
페미니스트 내부의 논쟁은 70년대부터 격렬하다가 오늘날에는 많이 가라앉았다. 신시아 앨러는 그 이유가, 두 진영에서 서로의 소통을 포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러나 페미니스트들이 진정 평등하고, 비위계적인 자매애적인 세상을 만들어가려는 목표에 동의한다면,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중단해서는 안될 것이다. 특히, 페미니스트 여신의례가 믿음을 공유하지 않은 외부자들과 소통이 불가능한 새로운 자기만족적 신념체계로서 스스로를 고립시키지 않으려면, '실천에서 실천으로', '경험 속에서' 전달되는 실천들 이외에도, 이를 외부자들에게 설명하고 소통할 수 있는 최소한의 합리적 언어 개발에 소홀하지 않아야 할 것이며, 목적과 효과 사이의 틈에 대해 끊임없는 성찰이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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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01.20
  • 저작시기2005.0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82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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