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출발
2. 수메르의 수학
3. 이집트의 수학
4. 그리스의 수학
5. 고대의 기하학
6. 고대 수학의 신비 사상
2. 수메르의 수학
3. 이집트의 수학
4. 그리스의 수학
5. 고대의 기하학
6. 고대 수학의 신비 사상
본문내용
전시키려는 노력보다는 오히려 겉모양만을 갖추는 데 힘을 기울였다. 오늘날의 수학자는 수학 자체를 위한 학문을 하는 반면에 실용성에는 무관심하다. 그리하여 오히려 먼 훗날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수학을 탄생시킬 수 있다.
이처럼 '놀라운' 인간의 창조물이 그 후 계속 발전되지 않고 왜 긴 세월 동안 그 상태에서 발전을 멈추고 말았는지 하는 점은 처음 수학사를 배우는 사람들이 가장 궁금하게 생각하는 대목이다. 왜냐 하면 오늘날의 사람들은 모든 과학이 끝없이 앞으로 줄달음치고 있다는 것을 하나의 상식처럼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고대 수학 중에서도 특히 이집트와 중국의 수학은 오랜 세월 제자리걸음을 해 왔는데 그에 대하여 유명한 수학사 연구가인 카조리*(F. Cajori, 1859-1930)는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이집트인은 중국인처럼 정치적인 방면뿐만 아니라 과학 분야에서도 제자리걸음을 해 온 국민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수학의 의 발견이나 의학에 관한 지식이 이미 오래 전부터 누구도 고칠 수 없는 것으로 취급되고 그 이후 이것에 손질을 하거나 보태는 일을 하면 마치 이단자인 양 취급받았기 때문이다. 이런 성전화(聖典化)의 태도는 과학 사상의 발전을 처음부터 막아 버렸던 것이다." (《초등수학사》 제1편, 제2장 1절)
중국 수학이 제자리걸음을 했다고 해서 중국에는 수학이라 할 만한 것이 아예 없었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세계 수학사의 그 어느 문명에 비해서도 손색없는 빛나는 업적을 남겼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떠한가. 13세기경 중국 송(宋)나라 말엽부터 원(元)나라 초기에 걸쳐서 저술된 수학책 《산학계몽*(算學啓蒙)》, 《양휘산법(楊輝算法)》, 《상명산법(詳明算法)》이 조선 시대를 통틀어 수학과 관련된 관리를 양성하는 문제집이자 참고서로 이용되었다. 또 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에는 중인(中人)이라는 수학자 집단이 있었다.
앞에서도 이야기한 《구장산술》은 그야말로 그 누구도 손댈 수 없는 것으로 신성시되어, 조선 말기 최고의 수학자 남병길*(南秉吉, 1820-1869)이 지은 《구장술해(九章術解)》라는 책도 《구장산술》을 수정한 것이 아니라 거기에 약간의 해석을 덧붙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여러분이 배운 수학책을 어린 동생들이 그대로 물려받아 배운다 해도 너무 낡은 교육이라 걱정할 터인데 하물며 조선 5백 년 동안 글자 한 자, 한 구절도 바꾸지 않은 수학을 배웠으니 참으로 어이가 없는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당시에는 오히려 이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조선 당쟁의 구실이 된 것도, 고전(古典)에 대해서는 무조건 복종해야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사문난적*(斯文亂賊)이라 해서 배척하는 태도 때문이었는데, 이러한 정신 풍토 속에서 수학책마저 《산경(算經)》, 즉 산학(=수학)에 관한 경전이라고 불렸고, 따라서 수학의 내용에 대한 비판은 물론이고 새로운 것의 창조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자 전혀 과학적이지 못하고 심지어 미신까지 섞인 괴상야릇한 지식들이 나돌기까지 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비과학적인 상황은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는데 중세 유럽에서도 사정은 비슷했다. 특히 5세기경부터 11세기에 걸친 시기의 수학 수준은 그리스 시대와는 비할 바가 못 될 정도로 형편없이 후퇴하고 있었다. 물론 그 기간에는 수학 상의 발견이라든지 그 밖에 주목할 만한 그 어떤 저술도 찾아 볼 수 없었고 제대로 수학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 하면 세속을 떠난 학식 있는 승려 계급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들 역시 뭔가 창조적인 연구를 한 것이 아니고 기껏해야 고대의 자연 과학이나 수학과 관련된 책을 모으고 그것을 다시 연구하는 정도에 머물고 있었다. 당시 지식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던 것은 오로지 신학에 깊게 빠져 들어 있던 스콜라 철학 뿐 이었던 것이다.
중세 유럽의 대학에서는 기초 학문인 이른바 3학(三學:문법, 논리학, 수사학)과 실용 학문인 4과(四科: 수학, 기하, 천문, 음악)를 가르치고 있었지만 기하라고 해도 실상은 철학적(?)으로 괴상하게 그 모양이 뒤틀린 것이었고, 그나마 1년에 한두 번 구색을 맞추기 위해 몇 가지 문제풀이를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16세기 유럽의 많은 대학에서는 학생들이 유클리드의 《원론》* 12권 중 6권까지를'알고 있다.'고 형식적으로 맹세하기만 하면 수학 점수가 나왔다고 한다. 상황이 이러했으니 수학에 대한 분위기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하겠다. 이 말을 뒤집어 생각하면 당시에는 끝내 '모른다'고 버티는 정직한 학생이 없었다는 이야기도 된다.
모든 학문의 연구에는 무엇보다도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란 미신, 종교 또는 어떤 권위 있는 학설, 사상 등의 정신적인 요인 때문에, 자의든 타의든 연구나 그 결과의 발표에 지장을 받는 일이 없는 것을 말한다. 유럽에서는 고대 천문학이 그리스도교 신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근대 천문학의 개척자들이 수많은 수난을 겪었다. 종교 재판소의 문을 나서면서 "그래도 지구는 돌고 있다."고 말했다는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1642)의 독백이 당시 과학자들의 고충을 전해 주고 있다. 그리고 동양 (특히 중국과 우리나라)에서는 모처럼의 훌륭한 수학적 업적을 두고도 그 성과를 꾸준히 다듬어 발전시키지 못하고 자꾸 단절시키는 것이 예사였다. 이른바 고전 지상주의, 즉 옛것을 무조건 숭상하는 정신이 전통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학자들은 감히 수학 세계를 개척한 선현의 뜻에 도전하는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 낼 생각은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것이다. 수학에서도 다른 어떤 분야와 마찬가지로 자유가 중요한 것이다. 덮어놓고 암기만 하는 수학에는 진정한 발전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이 자유에는 물론 정밀한 생각을 전제로 하는 정확한 논리가 뒤따라야 하겠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수학의 발달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유로운 정신이 보장되어야 한다. 수학에 있어서의 '자유'는 저 아득한 옛날만의 문제가 아니었고, 가까운 19세기에도 크게 제약을 받고 있었다.
< 참 고 문 헌 >
'수학교육론' 신현성 경문사 2000
이처럼 '놀라운' 인간의 창조물이 그 후 계속 발전되지 않고 왜 긴 세월 동안 그 상태에서 발전을 멈추고 말았는지 하는 점은 처음 수학사를 배우는 사람들이 가장 궁금하게 생각하는 대목이다. 왜냐 하면 오늘날의 사람들은 모든 과학이 끝없이 앞으로 줄달음치고 있다는 것을 하나의 상식처럼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고대 수학 중에서도 특히 이집트와 중국의 수학은 오랜 세월 제자리걸음을 해 왔는데 그에 대하여 유명한 수학사 연구가인 카조리*(F. Cajori, 1859-1930)는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이집트인은 중국인처럼 정치적인 방면뿐만 아니라 과학 분야에서도 제자리걸음을 해 온 국민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수학의 의 발견이나 의학에 관한 지식이 이미 오래 전부터 누구도 고칠 수 없는 것으로 취급되고 그 이후 이것에 손질을 하거나 보태는 일을 하면 마치 이단자인 양 취급받았기 때문이다. 이런 성전화(聖典化)의 태도는 과학 사상의 발전을 처음부터 막아 버렸던 것이다." (《초등수학사》 제1편, 제2장 1절)
중국 수학이 제자리걸음을 했다고 해서 중국에는 수학이라 할 만한 것이 아예 없었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세계 수학사의 그 어느 문명에 비해서도 손색없는 빛나는 업적을 남겼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떠한가. 13세기경 중국 송(宋)나라 말엽부터 원(元)나라 초기에 걸쳐서 저술된 수학책 《산학계몽*(算學啓蒙)》, 《양휘산법(楊輝算法)》, 《상명산법(詳明算法)》이 조선 시대를 통틀어 수학과 관련된 관리를 양성하는 문제집이자 참고서로 이용되었다. 또 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에는 중인(中人)이라는 수학자 집단이 있었다.
앞에서도 이야기한 《구장산술》은 그야말로 그 누구도 손댈 수 없는 것으로 신성시되어, 조선 말기 최고의 수학자 남병길*(南秉吉, 1820-1869)이 지은 《구장술해(九章術解)》라는 책도 《구장산술》을 수정한 것이 아니라 거기에 약간의 해석을 덧붙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여러분이 배운 수학책을 어린 동생들이 그대로 물려받아 배운다 해도 너무 낡은 교육이라 걱정할 터인데 하물며 조선 5백 년 동안 글자 한 자, 한 구절도 바꾸지 않은 수학을 배웠으니 참으로 어이가 없는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당시에는 오히려 이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조선 당쟁의 구실이 된 것도, 고전(古典)에 대해서는 무조건 복종해야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사문난적*(斯文亂賊)이라 해서 배척하는 태도 때문이었는데, 이러한 정신 풍토 속에서 수학책마저 《산경(算經)》, 즉 산학(=수학)에 관한 경전이라고 불렸고, 따라서 수학의 내용에 대한 비판은 물론이고 새로운 것의 창조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자 전혀 과학적이지 못하고 심지어 미신까지 섞인 괴상야릇한 지식들이 나돌기까지 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비과학적인 상황은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는데 중세 유럽에서도 사정은 비슷했다. 특히 5세기경부터 11세기에 걸친 시기의 수학 수준은 그리스 시대와는 비할 바가 못 될 정도로 형편없이 후퇴하고 있었다. 물론 그 기간에는 수학 상의 발견이라든지 그 밖에 주목할 만한 그 어떤 저술도 찾아 볼 수 없었고 제대로 수학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 하면 세속을 떠난 학식 있는 승려 계급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들 역시 뭔가 창조적인 연구를 한 것이 아니고 기껏해야 고대의 자연 과학이나 수학과 관련된 책을 모으고 그것을 다시 연구하는 정도에 머물고 있었다. 당시 지식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던 것은 오로지 신학에 깊게 빠져 들어 있던 스콜라 철학 뿐 이었던 것이다.
중세 유럽의 대학에서는 기초 학문인 이른바 3학(三學:문법, 논리학, 수사학)과 실용 학문인 4과(四科: 수학, 기하, 천문, 음악)를 가르치고 있었지만 기하라고 해도 실상은 철학적(?)으로 괴상하게 그 모양이 뒤틀린 것이었고, 그나마 1년에 한두 번 구색을 맞추기 위해 몇 가지 문제풀이를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16세기 유럽의 많은 대학에서는 학생들이 유클리드의 《원론》* 12권 중 6권까지를'알고 있다.'고 형식적으로 맹세하기만 하면 수학 점수가 나왔다고 한다. 상황이 이러했으니 수학에 대한 분위기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하겠다. 이 말을 뒤집어 생각하면 당시에는 끝내 '모른다'고 버티는 정직한 학생이 없었다는 이야기도 된다.
모든 학문의 연구에는 무엇보다도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란 미신, 종교 또는 어떤 권위 있는 학설, 사상 등의 정신적인 요인 때문에, 자의든 타의든 연구나 그 결과의 발표에 지장을 받는 일이 없는 것을 말한다. 유럽에서는 고대 천문학이 그리스도교 신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근대 천문학의 개척자들이 수많은 수난을 겪었다. 종교 재판소의 문을 나서면서 "그래도 지구는 돌고 있다."고 말했다는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1642)의 독백이 당시 과학자들의 고충을 전해 주고 있다. 그리고 동양 (특히 중국과 우리나라)에서는 모처럼의 훌륭한 수학적 업적을 두고도 그 성과를 꾸준히 다듬어 발전시키지 못하고 자꾸 단절시키는 것이 예사였다. 이른바 고전 지상주의, 즉 옛것을 무조건 숭상하는 정신이 전통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학자들은 감히 수학 세계를 개척한 선현의 뜻에 도전하는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 낼 생각은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것이다. 수학에서도 다른 어떤 분야와 마찬가지로 자유가 중요한 것이다. 덮어놓고 암기만 하는 수학에는 진정한 발전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이 자유에는 물론 정밀한 생각을 전제로 하는 정확한 논리가 뒤따라야 하겠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수학의 발달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유로운 정신이 보장되어야 한다. 수학에 있어서의 '자유'는 저 아득한 옛날만의 문제가 아니었고, 가까운 19세기에도 크게 제약을 받고 있었다.
< 참 고 문 헌 >
'수학교육론' 신현성 경문사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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