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다. 그리고 이러한 개별적 인간의 고립화가 궁극적으로는 심각한 사회적 혼란과 무정부적 상태를 초래하리라는 불안감으로 이어질 수 있음은 당연한 일이다. 즉 교회와 국가의 후견으로부터의 자유는 당시의 지식인들에게 일면으로는 실존적 불안을, 그리고 타면으로는 "한 집단적 세계상의 파괴"
) Hans Freie: sthetik u. Autonomie. Ein Beitrag zur idealistischen Entfremdungskritik. In: Deutsches Burgertum u. literarische Intelligenz 1750 - 1800, hrsg.v. B. Lutz, Stuttgart 1974, S. 335.
라는 엄청난 역사적 현상과의 직접적인 맞닥뜨림을 가져온 것이다. 현대의 정신적 상황을 특징 지우는 위기의식의 근저에는 바로 이러한 심각한 정체성의 위기와 공동체적 위기에 대한 인식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계몽주의는, 페터 퓌츠(Peter Putz)가 확인한 바와 같이, "아나키로의 전도"
P. Putz: a.a.O., S. 39.
라는 위험성만을 내포한 것이 아니었다. 18세기의 계몽주의 운동은 그 전개 과정에서 오로지 타산적 고려에서 합리성을 찾는, 즉 이성을 단순한 "계산적 오성"으로 전락시키는 '유용론'이라는 또 다른 하나의 타락 현상을 보여주었다. 이 유용론적 합리성은 메피스토의 현실적 합리주의 분석에서 이미 "목적 이성"으로 규정된 사유의 형태와 동일한 것이다.
이미 설명된 바와 같이 이성이 목적 추구의 도구가 되어 자신을 "목적 이성"으로 전락시키면, 이 이성을 매개로 하는 사유는 인간적인 성격을 상실하고 기계화된다. 그럴 것이 이 목적 이성은 이루려 하는 목적에 대한, 그리고 취하려 하는 방법에 대한 비판적 성찰의 능력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이성에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가장 유용한 수단을 계산해 내는가? 하는 문제이지 이 목적이나 수단의 도덕적 가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유는 도덕적 의구심으로 인한 어떠한 망설임도, 그리고 인간적 가치 판단으로 인한 어떠한 내면적 갈등도 없이, 오로지 효율성의 원칙에 따라 기계처럼 굴러간다. 사유는 "저절로 진행되는 자동적 과정으로 물화(物化)"되는 것이다.
M. Horkheimer/ T. Adorno: a.a.O., S. 31; 계몽사상의 유용론적 타락에 대해서는 필자의 저서 예술의 자율성과 부정의 미학. 독일 이상주의 문학 연구, 서울 1998, 49쪽 이하 참조.
바로 이러한 변질된 계몽 운동의 도덕적 타락을 쉴러(Schiller)는 가장 심각한 시대의 악(惡)으로 간주하였다. 그의 미학편지( sthetische Briefe)에서 쉴러는 "유용성이 시대의 거대한 우상이며, 모든 힘들이 이 우상에 봉사해야 하고, 모든 재능이 이 우상에게 충성을 맹세해야 한다"라고 한탄하고 있다.
Fr. Schiller: Samtliche Werke. Hrsg.v. G. Fricke u. H.G. Gopfert, Munchen 1965, Bd. 5, S. 572.
지금까지의 논의에서도 분명히 드러나는 바와 같이 계몽주의 운동으로 인해 야기된 괴테 시대의 위기 현상은 메피스토적 악의 구현 형태와 뚜렷한 유사성을 보이고 있다. 모든 이상적인 것, 모든 초월적인 것들의 실체에 대한 폭로와 파괴를 지향하는 메피스토적 아이러니와 회의는 그 본성에 있어서 계몽주의의 사유의 자율성이 내포하고 있는 "지적 공격성"과 맥을 같이 한다. 비판적 이성이 양자 모두의 기저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단 메피스토의 경우에는 이 "지적 공격성"이 현실주의 방향으로 일방적으로 과격화되어 있을 뿐이다.
18세기 유럽의 계몽주의는 인간을 무지와 후견 및 폭력의 지배로부터 해방시킨다는 드높은 목적을 내걸었다. 그러나 이 운동의 전개 과정에서 전술된 바와 같이 "과격하고 위험한 변화들"이 초래되었으며, 이 변화들은 당시의 지식인들에게 깊은 충격을 주었다. "앙시엥 레짐"이라는 낡은, 그러나 내적인 동질성을 가진 세계의 파괴는 단지 하나의 예에 불과 하다. 또 다른 수많은, 예상치 못한 부정적 현상들이 뒤를 따라 역사적으로 현실화되거나, 또는 급박한 장래의 위험성으로 감지되었다. 계몽운동의 이러한 부정적 현상들은, 무정부상태와 카오스에서 세계의 총체적인 체계화까지, 그리고 철저한 비판적 이성에서 극한적인 유용론에 이르기까지, 아주 다양하게, 때로는 서로간에 극단적인 상극의 형태들로 나타났다. 이 모든 계몽의 "부정적 변증법"은
"부정적 변증법 Negative Dialektik"의 개념에 대해서는 T. Adorno: Negative Dialektik. Frankfurt a.M. 1982, S. 9ff. 참조.
괴테 시대 시인들의 의식의 기저를 형성했으며, 괴테는 그가 온 몸으로 체험한 이 시대의 위기적 현상들을 악마 메피스토 안에 형상화했다. 메피스토적 악의 현상은 그 시대의 역사적 위기의식의 결정체인 것이다.
역사상 얼마나 많은 끔찍한 행위들이 '미래'와 '이념'의 이름으로 행하여 졌고, 지금도 행해지고 있는 지를 고려해 보면, 쉴러의 말대로 "정치적 행복의 이상을 아나키의 모든 만행을 통해 추구하고, (미래의) 좀 더 좋은 법률을 위해 (현재의) 법률을 짓밟으며, 다음에 올 세대의 행복을 확보하기 위해서 지금의 세대를 비참속에 내던져 놓고도 아무런 의구심도 갖지 않는" 끔찍한 행위들을 고려해 본다면,
Fr. Schiller: Samtliche Werke, a.a.O., Bd. 5, S.692. 괄호( )안의 글은 이해를 돕기 위한 필자의 첨가임.
모든 이념과 이상과 초월적인 것들에 대해 회의적이며 파괴적인 메피스토의 비판적 이성과 아이러니는 분명히 천사(天使 Engel)일 수 있다. 그러나 이성이 현대의 출발점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구원을 약속하는 새로운 복음(福音 Evangelium)이었다는 사실과, 그리고 바로 이 이성이 메피스토에게서 철저하게 전도되어 나타났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메피스토는 결국은 타락한 천사임에 틀림없다. 바로 이 관점에서 괴테가 형상화한 이 악마는 현대의 루시퍼(Luzifer)일 수 있을 것이다.
) Hans Freie: sthetik u. Autonomie. Ein Beitrag zur idealistischen Entfremdungskritik. In: Deutsches Burgertum u. literarische Intelligenz 1750 - 1800, hrsg.v. B. Lutz, Stuttgart 1974, S. 335.
라는 엄청난 역사적 현상과의 직접적인 맞닥뜨림을 가져온 것이다. 현대의 정신적 상황을 특징 지우는 위기의식의 근저에는 바로 이러한 심각한 정체성의 위기와 공동체적 위기에 대한 인식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계몽주의는, 페터 퓌츠(Peter Putz)가 확인한 바와 같이, "아나키로의 전도"
P. Putz: a.a.O., S. 39.
라는 위험성만을 내포한 것이 아니었다. 18세기의 계몽주의 운동은 그 전개 과정에서 오로지 타산적 고려에서 합리성을 찾는, 즉 이성을 단순한 "계산적 오성"으로 전락시키는 '유용론'이라는 또 다른 하나의 타락 현상을 보여주었다. 이 유용론적 합리성은 메피스토의 현실적 합리주의 분석에서 이미 "목적 이성"으로 규정된 사유의 형태와 동일한 것이다.
이미 설명된 바와 같이 이성이 목적 추구의 도구가 되어 자신을 "목적 이성"으로 전락시키면, 이 이성을 매개로 하는 사유는 인간적인 성격을 상실하고 기계화된다. 그럴 것이 이 목적 이성은 이루려 하는 목적에 대한, 그리고 취하려 하는 방법에 대한 비판적 성찰의 능력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이성에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가장 유용한 수단을 계산해 내는가? 하는 문제이지 이 목적이나 수단의 도덕적 가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유는 도덕적 의구심으로 인한 어떠한 망설임도, 그리고 인간적 가치 판단으로 인한 어떠한 내면적 갈등도 없이, 오로지 효율성의 원칙에 따라 기계처럼 굴러간다. 사유는 "저절로 진행되는 자동적 과정으로 물화(物化)"되는 것이다.
M. Horkheimer/ T. Adorno: a.a.O., S. 31; 계몽사상의 유용론적 타락에 대해서는 필자의 저서 예술의 자율성과 부정의 미학. 독일 이상주의 문학 연구, 서울 1998, 49쪽 이하 참조.
바로 이러한 변질된 계몽 운동의 도덕적 타락을 쉴러(Schiller)는 가장 심각한 시대의 악(惡)으로 간주하였다. 그의 미학편지( sthetische Briefe)에서 쉴러는 "유용성이 시대의 거대한 우상이며, 모든 힘들이 이 우상에 봉사해야 하고, 모든 재능이 이 우상에게 충성을 맹세해야 한다"라고 한탄하고 있다.
Fr. Schiller: Samtliche Werke. Hrsg.v. G. Fricke u. H.G. Gopfert, Munchen 1965, Bd. 5, S. 572.
지금까지의 논의에서도 분명히 드러나는 바와 같이 계몽주의 운동으로 인해 야기된 괴테 시대의 위기 현상은 메피스토적 악의 구현 형태와 뚜렷한 유사성을 보이고 있다. 모든 이상적인 것, 모든 초월적인 것들의 실체에 대한 폭로와 파괴를 지향하는 메피스토적 아이러니와 회의는 그 본성에 있어서 계몽주의의 사유의 자율성이 내포하고 있는 "지적 공격성"과 맥을 같이 한다. 비판적 이성이 양자 모두의 기저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단 메피스토의 경우에는 이 "지적 공격성"이 현실주의 방향으로 일방적으로 과격화되어 있을 뿐이다.
18세기 유럽의 계몽주의는 인간을 무지와 후견 및 폭력의 지배로부터 해방시킨다는 드높은 목적을 내걸었다. 그러나 이 운동의 전개 과정에서 전술된 바와 같이 "과격하고 위험한 변화들"이 초래되었으며, 이 변화들은 당시의 지식인들에게 깊은 충격을 주었다. "앙시엥 레짐"이라는 낡은, 그러나 내적인 동질성을 가진 세계의 파괴는 단지 하나의 예에 불과 하다. 또 다른 수많은, 예상치 못한 부정적 현상들이 뒤를 따라 역사적으로 현실화되거나, 또는 급박한 장래의 위험성으로 감지되었다. 계몽운동의 이러한 부정적 현상들은, 무정부상태와 카오스에서 세계의 총체적인 체계화까지, 그리고 철저한 비판적 이성에서 극한적인 유용론에 이르기까지, 아주 다양하게, 때로는 서로간에 극단적인 상극의 형태들로 나타났다. 이 모든 계몽의 "부정적 변증법"은
"부정적 변증법 Negative Dialektik"의 개념에 대해서는 T. Adorno: Negative Dialektik. Frankfurt a.M. 1982, S. 9ff. 참조.
괴테 시대 시인들의 의식의 기저를 형성했으며, 괴테는 그가 온 몸으로 체험한 이 시대의 위기적 현상들을 악마 메피스토 안에 형상화했다. 메피스토적 악의 현상은 그 시대의 역사적 위기의식의 결정체인 것이다.
역사상 얼마나 많은 끔찍한 행위들이 '미래'와 '이념'의 이름으로 행하여 졌고, 지금도 행해지고 있는 지를 고려해 보면, 쉴러의 말대로 "정치적 행복의 이상을 아나키의 모든 만행을 통해 추구하고, (미래의) 좀 더 좋은 법률을 위해 (현재의) 법률을 짓밟으며, 다음에 올 세대의 행복을 확보하기 위해서 지금의 세대를 비참속에 내던져 놓고도 아무런 의구심도 갖지 않는" 끔찍한 행위들을 고려해 본다면,
Fr. Schiller: Samtliche Werke, a.a.O., Bd. 5, S.692. 괄호( )안의 글은 이해를 돕기 위한 필자의 첨가임.
모든 이념과 이상과 초월적인 것들에 대해 회의적이며 파괴적인 메피스토의 비판적 이성과 아이러니는 분명히 천사(天使 Engel)일 수 있다. 그러나 이성이 현대의 출발점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구원을 약속하는 새로운 복음(福音 Evangelium)이었다는 사실과, 그리고 바로 이 이성이 메피스토에게서 철저하게 전도되어 나타났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메피스토는 결국은 타락한 천사임에 틀림없다. 바로 이 관점에서 괴테가 형상화한 이 악마는 현대의 루시퍼(Luzifer)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