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I. 들어가는 말
II. 비스마르크와 천재숭배 및 초인주의
III.군국주의와 민주주의 침체
IV. 부르조와 정신과 아류문화
II. 비스마르크와 천재숭배 및 초인주의
III.군국주의와 민주주의 침체
IV. 부르조와 정신과 아류문화
본문내용
기에서 그들의 열성적인 모방성과 과장된 생활양식이 형성되었다. 제국건설시기 생활문화에서 고풍스럽고 화려한 옛귀족적인 취향을 부풀린 계급은 실제로 귀족이 아니라 봉건화된 유산시민계급이었다. 폰타네 소설들에서 예를 들면 군더만뿐만 아니라 트라이벨 그리고 판 데어 슈트라텐도 그에 속하는 인물들이다. 시민적 자주의식 대신에, 귀족적 아류문화 취향을 지닌 그들의 모습과 생활에서는 인간적으로 미성숙한 불안하고 편파적인 충동성이 내비치곤 한다.
귀족인 멜라니와 정략적으로 결혼한 판 데어 슈트라텐은 미술품 수집가이며, 그의 저택에는 자랑할만한 미술품 전시 공간이 있다. 제국건설시기 새롭게 형성된 유산시민계급은, 마치 르네상스시대의 예술 애호가들과 같은 역할을 행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부의 위력을 과시하기 위해 예술품으 필요로 했다. 그를 통해 자신들이 누리는 특권 감정을 상승시키는 동시에 더 낮은 사회계급과의 경계를 분명히 할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에 담긴 정서나 정신적인 이상 때문이 아니라, 사치스러운 생활 전시용을 위한 장식물로서 예술품을 필요로 했던 고객들을 폰타네는 다음과 같은 시로 그리고 있다:
"고객은 단순한 여자다,
부르조와적이고, 허영기가 있으며 잘난 체하는,
그녀가 말할 때 정확하게 따라가 보면,
한 번도 제대로 말하는 적이 없다.
단순한 여자지만, 쾌활하고 신선하며,
그녀의 보석이 반짝거린다.
그녀는 웃으며 훌륭한 음식을 즐긴다,
그리고 그녀를 누구나 소유하고 싶어한다." (A Gedichte 1, S. 43)
제국건설시기 양식을 규정하는 예술작품들은 대부분 이와 같은 부르조와 고객의 허영기 있는 취향를 따르고 있다. 그리고 이들 고객으로부터 위임받은 작업들은 당시의 많은 예술가들에게 사치스러운 생활을 보장해주었으며, 동시에 이들에게도 그들의 재력있는 고객들과 더불어 사회적 위치를 상승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하였다. (Vgl. Briefe IV, S. 167) 그에 반에, 내용없이 "행을 짜맞추는 따위의 일과 돈을 위한 문학적 투기" (Briefe II, S.374)가 혐오스러웠던 폰타네는 자신의 예술 때문에, 외적으로 더 고상하게 보이기 위한 목적을 추구하는 독자의 예술취향에 따라 글을 쓰는 일은 삼가고 있다고 토로한다. (Vgl. Briefe III, S. 472)
제국건설시기 사치풍조에서 나온 취향을 따랐던 많은 예술가들은 이탈리아로 여행해서, 그 곳에서 벼락부자들이 동경하는 귀족적 "고상함"을 위한 모범상을 제공할 수 있는 아류적 형식을 발견하였다. 바로 "로마식의 품위, 위엄"등이 그들에게는 권력을 지닌 자의 고상함을 표현하는 삶의 기준으로 보였다. (Vgl. Grunderzeit, S. 145)
폰타네는 1870년대 중반 두 번에 걸쳐서 이탈리아를 여행했다. 그는 여행하는 동안에, 동시대 예술가들의 이탈리아에 대한 열광이 현재의 그 나라 현실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삶의 요구, 즉 개선을 필요로 하는 현실에 눈을 감아버리는 예술가들의 행위을 비판한다. (Vgl. Briefe II, S. 491) 과거만을 과시하는 이탈리아 현실은 폰타네가 탐을 내기에는 너무 보잘 것이 없었다. 그는 이탈리아의 과거속으로 멸망해버린 아름다움에만 도취하지 말고 현재의 현실적인 요구를 간과하지 말 것을 경고한다. 이를 간과하면, "아름다움 속에 들어있는 위대함이 그 안에서 멸망해 간 위대한 아름다움처럼 그렇게 개인이나 국가도 멸망할 것이다"라고 폰타네는 쓰고 있다. (Heiteres Daruberstehen, S. 141) 실제적 내용과는 상관없는 외적인 장식을 위한 표현만을 위하여, 사멸해버린 정신을 지닌 "미에 대한 도취"는 제국건설시기 고딕양식의 역건물, 바로크식 우체국 혹은 고전적 은행건물등에서 수없이 나타났다. 폰타네는 그의 소설 "샤하 폰 부테노브"에서 과장된 미적인 외형성에 집착하는 문화적 현상의 위험성을 개인의 운명으로 비유하여 묘사하고 있다. 샤하의 개인적 유미주의는, 프로이센이 위기에 처해 있던 1806년 사회의 시대적 징후이기도 하다. 샤하의 몰락은 화려한 외형적 문화에 물들어 있던 나라의 운명과 맞물린다. 과거 프로이센이 겪었던 위기에 1882년 현재의 위기가 명료하게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동시대인들의 과장된 탐미주의에 반대하여, "아름다움의 본질은 위대함과 일종의 대립관계에 있는 정도에 있다 das Wesen der Schonheit [ist] das Mas, das in einer Art Gegensatz zu Grosartigen steht."라고 폰타네는 말한다. 또한 외형적 고상함에 대한 동경으로 아류적 형식미를 이탈리아의 과거 예술에서 찾았던 동시대 예술가들과는 달리, 역사적으로 현재적 시간성과 공간성에 연결된 삶의 문제를 다루는 작가로서의 자신의 "삶의 과제는 나폴리의 걸프만이 아닌 슈프레와 하벨강가에, 베수브가 아니라 뮤겔스베르겐에 놓여 있음"을 인식한다. (Briefe II, S. 490) 현실적 인간 문제를 외면하는 석화된 역사주의, 초인주의 및 천재숭배와 연결된 위대한 개인을 비현실적으로 신화화 하는 현상, 또는 과장된 탐미주의의 추구 등에 나타나는 제국건설시기 예술적 취향에 반해서, 폰타네는 다음과 같이 토로하고 있다:
"나는 내 자신의 취향에 있어서, 독자가 원하고 있고, 그들이 원하고 있기 때문에 제공되어지는 것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내가 진정으로 묘사하고 싶은 것은 아주 사소한, 정말 일상적인 사건들이다." (Briefe IV, S. 374)
이상에서 살펴본 제국건설시기 문화현상에 비판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폰타네와 그의 문학적 현상은, 그가 그의 동시대인들보다 훨씬 현대적인 열린 생각의 소유자였음을 보여준다. 당시에 그리고 바로 그에 이어지는 역사적 시기에는 현대적으로 여겨졌던 그러나 오늘날에는 더 이상 현대적이 아닌, 그러나 아직도 도처에서 유효하다는 듯이 강력하게 고집되기도 하는 문화현상들이 노 폰타네의 현대적 비판적 시각에서는 낡은 현대성으로 드러나고 있다. 여기에 그의 시대소설의 현재적 시대상이 시대를 초월하는 유효한 시대상으로 읽혀질 수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귀족인 멜라니와 정략적으로 결혼한 판 데어 슈트라텐은 미술품 수집가이며, 그의 저택에는 자랑할만한 미술품 전시 공간이 있다. 제국건설시기 새롭게 형성된 유산시민계급은, 마치 르네상스시대의 예술 애호가들과 같은 역할을 행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부의 위력을 과시하기 위해 예술품으 필요로 했다. 그를 통해 자신들이 누리는 특권 감정을 상승시키는 동시에 더 낮은 사회계급과의 경계를 분명히 할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에 담긴 정서나 정신적인 이상 때문이 아니라, 사치스러운 생활 전시용을 위한 장식물로서 예술품을 필요로 했던 고객들을 폰타네는 다음과 같은 시로 그리고 있다:
"고객은 단순한 여자다,
부르조와적이고, 허영기가 있으며 잘난 체하는,
그녀가 말할 때 정확하게 따라가 보면,
한 번도 제대로 말하는 적이 없다.
단순한 여자지만, 쾌활하고 신선하며,
그녀의 보석이 반짝거린다.
그녀는 웃으며 훌륭한 음식을 즐긴다,
그리고 그녀를 누구나 소유하고 싶어한다." (A Gedichte 1, S. 43)
제국건설시기 양식을 규정하는 예술작품들은 대부분 이와 같은 부르조와 고객의 허영기 있는 취향를 따르고 있다. 그리고 이들 고객으로부터 위임받은 작업들은 당시의 많은 예술가들에게 사치스러운 생활을 보장해주었으며, 동시에 이들에게도 그들의 재력있는 고객들과 더불어 사회적 위치를 상승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하였다. (Vgl. Briefe IV, S. 167) 그에 반에, 내용없이 "행을 짜맞추는 따위의 일과 돈을 위한 문학적 투기" (Briefe II, S.374)가 혐오스러웠던 폰타네는 자신의 예술 때문에, 외적으로 더 고상하게 보이기 위한 목적을 추구하는 독자의 예술취향에 따라 글을 쓰는 일은 삼가고 있다고 토로한다. (Vgl. Briefe III, S. 472)
제국건설시기 사치풍조에서 나온 취향을 따랐던 많은 예술가들은 이탈리아로 여행해서, 그 곳에서 벼락부자들이 동경하는 귀족적 "고상함"을 위한 모범상을 제공할 수 있는 아류적 형식을 발견하였다. 바로 "로마식의 품위, 위엄"등이 그들에게는 권력을 지닌 자의 고상함을 표현하는 삶의 기준으로 보였다. (Vgl. Grunderzeit, S. 145)
폰타네는 1870년대 중반 두 번에 걸쳐서 이탈리아를 여행했다. 그는 여행하는 동안에, 동시대 예술가들의 이탈리아에 대한 열광이 현재의 그 나라 현실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삶의 요구, 즉 개선을 필요로 하는 현실에 눈을 감아버리는 예술가들의 행위을 비판한다. (Vgl. Briefe II, S. 491) 과거만을 과시하는 이탈리아 현실은 폰타네가 탐을 내기에는 너무 보잘 것이 없었다. 그는 이탈리아의 과거속으로 멸망해버린 아름다움에만 도취하지 말고 현재의 현실적인 요구를 간과하지 말 것을 경고한다. 이를 간과하면, "아름다움 속에 들어있는 위대함이 그 안에서 멸망해 간 위대한 아름다움처럼 그렇게 개인이나 국가도 멸망할 것이다"라고 폰타네는 쓰고 있다. (Heiteres Daruberstehen, S. 141) 실제적 내용과는 상관없는 외적인 장식을 위한 표현만을 위하여, 사멸해버린 정신을 지닌 "미에 대한 도취"는 제국건설시기 고딕양식의 역건물, 바로크식 우체국 혹은 고전적 은행건물등에서 수없이 나타났다. 폰타네는 그의 소설 "샤하 폰 부테노브"에서 과장된 미적인 외형성에 집착하는 문화적 현상의 위험성을 개인의 운명으로 비유하여 묘사하고 있다. 샤하의 개인적 유미주의는, 프로이센이 위기에 처해 있던 1806년 사회의 시대적 징후이기도 하다. 샤하의 몰락은 화려한 외형적 문화에 물들어 있던 나라의 운명과 맞물린다. 과거 프로이센이 겪었던 위기에 1882년 현재의 위기가 명료하게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동시대인들의 과장된 탐미주의에 반대하여, "아름다움의 본질은 위대함과 일종의 대립관계에 있는 정도에 있다 das Wesen der Schonheit [ist] das Mas, das in einer Art Gegensatz zu Grosartigen steht."라고 폰타네는 말한다. 또한 외형적 고상함에 대한 동경으로 아류적 형식미를 이탈리아의 과거 예술에서 찾았던 동시대 예술가들과는 달리, 역사적으로 현재적 시간성과 공간성에 연결된 삶의 문제를 다루는 작가로서의 자신의 "삶의 과제는 나폴리의 걸프만이 아닌 슈프레와 하벨강가에, 베수브가 아니라 뮤겔스베르겐에 놓여 있음"을 인식한다. (Briefe II, S. 490) 현실적 인간 문제를 외면하는 석화된 역사주의, 초인주의 및 천재숭배와 연결된 위대한 개인을 비현실적으로 신화화 하는 현상, 또는 과장된 탐미주의의 추구 등에 나타나는 제국건설시기 예술적 취향에 반해서, 폰타네는 다음과 같이 토로하고 있다:
"나는 내 자신의 취향에 있어서, 독자가 원하고 있고, 그들이 원하고 있기 때문에 제공되어지는 것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내가 진정으로 묘사하고 싶은 것은 아주 사소한, 정말 일상적인 사건들이다." (Briefe IV, S. 374)
이상에서 살펴본 제국건설시기 문화현상에 비판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폰타네와 그의 문학적 현상은, 그가 그의 동시대인들보다 훨씬 현대적인 열린 생각의 소유자였음을 보여준다. 당시에 그리고 바로 그에 이어지는 역사적 시기에는 현대적으로 여겨졌던 그러나 오늘날에는 더 이상 현대적이 아닌, 그러나 아직도 도처에서 유효하다는 듯이 강력하게 고집되기도 하는 문화현상들이 노 폰타네의 현대적 비판적 시각에서는 낡은 현대성으로 드러나고 있다. 여기에 그의 시대소설의 현재적 시대상이 시대를 초월하는 유효한 시대상으로 읽혀질 수 이유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