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인물
2. 메시지
3. 책(아모스서)
4. 영향
2. 메시지
3. 책(아모스서)
4. 영향
본문내용
후 시대의 달라진 상황에서 이해되어야만 한다. 그것들은 주전 772/21년 이후 일어난 역사적 사건들로서, 아모스의 예언이 실현된 다음 야웨께서 자기 백성의 운명을 바꾸어 주실 것이라는 사실의 확실성을 입증하고 있다. 실현된 심판은 이제 역사의 뒤편으로 물러나고, 전면에는 아무런 조건도 없이 무너진 다윗의 집을 다시 세우시며, 땅은 비옥하여 놀랍게 풍성하고 이스라엘에 늘 과실을 맺게 하시고자 하는 야웨의 뜻이 있다. 이것은 예언자의 죽음과 재앙의 선포에 대한 대칭점이 된다. 예언자의 날카로운 심판 예언은 정확하게 구원 예언과 배치된다. 정말로 이스라엘의 사회 상황에 대한 야웨의 거부가 역사적으로 정당성이 인정되지만, 이제는 실제로 요구되는 것이 아니다. 재앙의 시간은 지나가고, 종말론적 구원의 시대가 밝아온다.
예언자의 심판 메시지를 제한하는 이러한 경향은 아모스서 해석의 역사에서 일관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점은 아모스서에 단지 미미한 자취만 남겨져 있다. 그에 반해 아모스서를 예배용으로 사용함으로써 찬송시나 노래들이 삽입되었다. 그것은 책 전체를 제의적으로 나누면서 예언자의 말들은 새롭게 해석하였다. 포로 후기 공동체는 하나님의 창조 능력을 찬양으로 고백함으로써, 동시에 아모스의 선언과 역사적 실현을 하나님의 재판권의 표현으로 인정한다. 그래서 아모스 예언자의 말은 계속 유효하다. 그러나 예배에서의 사용은 실제적인 이해를 방해할 수도 있다.
이러한 효과는 구약성서의 여러 곳에서 실제로 확인된다: 다섯 번째 환상이 설명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편재하심은 제의적 야웨 찬양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야웨 앞에서는 그 누구도 도망갈 수 없고 숨을 수 없다. 다메섹을 향한 재앙 선언은 분명 알 수 없는 어느 민족 예언자들을 통해 시작되었고 또한 계속되었다. 이스라엘을 재앙을 통해 회개시키려 했던 야웨의 보람 없는 시도에 대한 역사적 회고는, 훗날에 이에 대한 성찰을 하도록 만든다. 아모스서의 서두에 있는 신명기 사가의 좌우명(Motto)은 마침내 모든 민족들과 연관하여 시작된다(렘 25,30b; 욜 4,16a).
이후에 예언자 아모스의 사회 비판과 죽음의 메시지는―유대인들의 아모스 해석 및 기독교 해석서에서―물러나고, 그 대신 후대의 첨가들, 무엇보다 구원의 결말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 무너진 다윗의 집에 대한 신탁은 “전쟁 메시아”와 “율법 연구자”를 가리키는 쿰란 공동체의 주요 관심사가 되었다. 또한 제의 실천과 이방 우상 경배와의 쟁론은 엣세네파에 의해 한편으로 예루살렘의 제사장들에 대한 재판 언어로서, 또는 “다메섹 당의 새로운 무리”에 대한 정당화와 약속으로 해석된다.
탈무드와 미드라쉬의 아모스서 주석은 방법론적으로 일치점이 거의 없으며, 개개의 본문을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기술, 제의사적 변증적 질문들, 무엇보다 유대 윤리학적 요구의 근거 등 전혀 상이한 주제들로 이끌어간다. 예언자의 사명에 대한 그들의 이해는 아모스가 징벌에 대한 설교를 했고 백성들에게 회개를 촉구했다는 견해가 그 특징이다. 그리고 마지막 구원의 말씀들이 그의 선포에 추가된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결국 돌아와 하나님의 법을 지키고 이로써 하나님께서는 행복한 메시아의 시대로 길을 열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의 표현이다. 그래서 율법에 대한 깊은 신앙과 선택 의식이 이해의 척도로 만들어진다. 예언자의 단호한 부정은 회개의 촉구로 전환되고, 그의 재앙의 메시지는 구원의 메시지에 의해 해체된다.
신약은 두 군데에서 아모스서의 후대 본문을 인용하고 있다. 스데반의 설교는 “예언자들의 책”을 인용하여, 이스라엘 민족의 이방 우상들에 대한 타락을 지적한다. 야고보는 이방인 선교에 대한 초기 기독교의 논쟁에서 다윗 집의 재건에 대한 구원의 말을, 이스라엘을 민족들 가운데 “그의 이름을 위한 하나님의 민족”으로 삼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증거로 제시함으로써 그 정당성을 확증했다. 그래서 “예언자들의 말씀”은 보편적으로 기독 공동체에 연관되며 이로써 교회가 유지된다. 예언자의 사회적 사명은 야고보서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직접적인 관계는 발견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 주제와 이론적인 유사성들은 그러한 추측을 가능케 한다.
아모스서의 해석사를 볼 때, 그리스도교 교회에서 예언자적 사회 비판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 오히려 후대의 구원과 경고를 수용하고 예언자적 선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실현으로 의미를 갖게 된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아모스의 메시지와 우아한 수사학을 높이 평가하면서 아모스를 그리스도와 그 교회의 예언자로 묘사하고, 마니교도들에 대한 변증에 인용한다.
약 천 년이 흐른 후 사보나롤라가 아모스의 죽음의 사명을 다시 이끌어내어 그 당시의 이탈리아와 로마에 연관시킨다. 그는 엄청난 고통의 참혹한 모습으로 하나님의 극단의 개입을, 이탈리아의 죄악에 대한 심판으로 선포함으로써 예언자적 사명을 역동적으로 실현하였다. 루터는 한편으로 전통적인 그리스도론적 해석을 긍정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예언자의 말에서 믿음의 자격을 찾아내었다. 이에 따라 아모스는 사역과 제의 행위에 자만심을 가진 자기 의를 반대하며 자신이 위임 받은 대로 시대적 형벌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그는 모세의 법을 문자적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사랑으로 해석함으로써 믿음의 정당성을 알린다. 그러므로 아모스는 다가오는 재앙의 예고자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믿음을 통한 죄인들의 의롭다 하심에 대한 증인이다.
이러한 루터의 이해와는 달리 오늘날의 해석은 예언자의 사회 비판에 치중한다. “궁전에는 전쟁을, 초라한 오두막에는 평화를”이라는 새 시대의 사회 혁명적 구호와 재앙 선포의 유사함은 교회 비판 세력 및 마르크스주의 사상가들을 통해 재발견된다. 교회 비판 세력은 정치적 사회적 심리학적으로만 계속 영향을 끼치는 문화 종교로 기독교가 위축되는 것을 거부한다. 이렇듯 아모스의 메시지가 지닌 엄청난 폭파력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의 선언을 약화시키거나 심지어 무시하고자 하는 수많은 시도에도 불구하고 그의 단호함은 사람들을 논쟁케 하고 이로써 시대를 초월하여 아모스의 메시지의 실제성을 늘 새롭게 보여준다.
예언자의 심판 메시지를 제한하는 이러한 경향은 아모스서 해석의 역사에서 일관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점은 아모스서에 단지 미미한 자취만 남겨져 있다. 그에 반해 아모스서를 예배용으로 사용함으로써 찬송시나 노래들이 삽입되었다. 그것은 책 전체를 제의적으로 나누면서 예언자의 말들은 새롭게 해석하였다. 포로 후기 공동체는 하나님의 창조 능력을 찬양으로 고백함으로써, 동시에 아모스의 선언과 역사적 실현을 하나님의 재판권의 표현으로 인정한다. 그래서 아모스 예언자의 말은 계속 유효하다. 그러나 예배에서의 사용은 실제적인 이해를 방해할 수도 있다.
이러한 효과는 구약성서의 여러 곳에서 실제로 확인된다: 다섯 번째 환상이 설명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편재하심은 제의적 야웨 찬양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야웨 앞에서는 그 누구도 도망갈 수 없고 숨을 수 없다. 다메섹을 향한 재앙 선언은 분명 알 수 없는 어느 민족 예언자들을 통해 시작되었고 또한 계속되었다. 이스라엘을 재앙을 통해 회개시키려 했던 야웨의 보람 없는 시도에 대한 역사적 회고는, 훗날에 이에 대한 성찰을 하도록 만든다. 아모스서의 서두에 있는 신명기 사가의 좌우명(Motto)은 마침내 모든 민족들과 연관하여 시작된다(렘 25,30b; 욜 4,16a).
이후에 예언자 아모스의 사회 비판과 죽음의 메시지는―유대인들의 아모스 해석 및 기독교 해석서에서―물러나고, 그 대신 후대의 첨가들, 무엇보다 구원의 결말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 무너진 다윗의 집에 대한 신탁은 “전쟁 메시아”와 “율법 연구자”를 가리키는 쿰란 공동체의 주요 관심사가 되었다. 또한 제의 실천과 이방 우상 경배와의 쟁론은 엣세네파에 의해 한편으로 예루살렘의 제사장들에 대한 재판 언어로서, 또는 “다메섹 당의 새로운 무리”에 대한 정당화와 약속으로 해석된다.
탈무드와 미드라쉬의 아모스서 주석은 방법론적으로 일치점이 거의 없으며, 개개의 본문을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기술, 제의사적 변증적 질문들, 무엇보다 유대 윤리학적 요구의 근거 등 전혀 상이한 주제들로 이끌어간다. 예언자의 사명에 대한 그들의 이해는 아모스가 징벌에 대한 설교를 했고 백성들에게 회개를 촉구했다는 견해가 그 특징이다. 그리고 마지막 구원의 말씀들이 그의 선포에 추가된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결국 돌아와 하나님의 법을 지키고 이로써 하나님께서는 행복한 메시아의 시대로 길을 열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의 표현이다. 그래서 율법에 대한 깊은 신앙과 선택 의식이 이해의 척도로 만들어진다. 예언자의 단호한 부정은 회개의 촉구로 전환되고, 그의 재앙의 메시지는 구원의 메시지에 의해 해체된다.
신약은 두 군데에서 아모스서의 후대 본문을 인용하고 있다. 스데반의 설교는 “예언자들의 책”을 인용하여, 이스라엘 민족의 이방 우상들에 대한 타락을 지적한다. 야고보는 이방인 선교에 대한 초기 기독교의 논쟁에서 다윗 집의 재건에 대한 구원의 말을, 이스라엘을 민족들 가운데 “그의 이름을 위한 하나님의 민족”으로 삼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증거로 제시함으로써 그 정당성을 확증했다. 그래서 “예언자들의 말씀”은 보편적으로 기독 공동체에 연관되며 이로써 교회가 유지된다. 예언자의 사회적 사명은 야고보서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직접적인 관계는 발견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 주제와 이론적인 유사성들은 그러한 추측을 가능케 한다.
아모스서의 해석사를 볼 때, 그리스도교 교회에서 예언자적 사회 비판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 오히려 후대의 구원과 경고를 수용하고 예언자적 선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실현으로 의미를 갖게 된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아모스의 메시지와 우아한 수사학을 높이 평가하면서 아모스를 그리스도와 그 교회의 예언자로 묘사하고, 마니교도들에 대한 변증에 인용한다.
약 천 년이 흐른 후 사보나롤라가 아모스의 죽음의 사명을 다시 이끌어내어 그 당시의 이탈리아와 로마에 연관시킨다. 그는 엄청난 고통의 참혹한 모습으로 하나님의 극단의 개입을, 이탈리아의 죄악에 대한 심판으로 선포함으로써 예언자적 사명을 역동적으로 실현하였다. 루터는 한편으로 전통적인 그리스도론적 해석을 긍정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예언자의 말에서 믿음의 자격을 찾아내었다. 이에 따라 아모스는 사역과 제의 행위에 자만심을 가진 자기 의를 반대하며 자신이 위임 받은 대로 시대적 형벌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그는 모세의 법을 문자적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사랑으로 해석함으로써 믿음의 정당성을 알린다. 그러므로 아모스는 다가오는 재앙의 예고자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믿음을 통한 죄인들의 의롭다 하심에 대한 증인이다.
이러한 루터의 이해와는 달리 오늘날의 해석은 예언자의 사회 비판에 치중한다. “궁전에는 전쟁을, 초라한 오두막에는 평화를”이라는 새 시대의 사회 혁명적 구호와 재앙 선포의 유사함은 교회 비판 세력 및 마르크스주의 사상가들을 통해 재발견된다. 교회 비판 세력은 정치적 사회적 심리학적으로만 계속 영향을 끼치는 문화 종교로 기독교가 위축되는 것을 거부한다. 이렇듯 아모스의 메시지가 지닌 엄청난 폭파력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의 선언을 약화시키거나 심지어 무시하고자 하는 수많은 시도에도 불구하고 그의 단호함은 사람들을 논쟁케 하고 이로써 시대를 초월하여 아모스의 메시지의 실제성을 늘 새롭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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