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승업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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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장승업에 대해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글을 시작하며

2. 천재의 삶

3. 천재의 예술
1) 장승업의 회화 개관
2) 산수화(山水畵)
3) 인물화(人物畵)
4) 화조영모화(花鳥翎毛畵)
5) 기명절지화(器皿折枝畵)

4. 천재의 업적과 현대적 의미

5. 글을 마치며

본문내용

학교 박물관에 소장된 기명절지도는 비교적 얌전하고 정밀한 필치로 그려진 것이다.
장승업의 기명절지화는 서양의 정물화(靜物畵)와 소재에 있어서는 비슷하지만 성격상으로는 다른 그림이다. 정물화는 어떤 특정 대상을 관찰하여 묘사한 것으로 대개 사실적이며 정적(靜的)이다. 그런데 장승업의 기명절지화는 그릇과 화초 따위를 소재로 하면서도 형태를 임의로 변형시키고 붓질을 과감하게 함으로써 활기 찬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 즉 장승업의 기명절지화는 물건들까지 상라있는 생명체처럼 보이도록 그리는 데 특징이 있는 것이다. 이런 장승업 기명절지화의 특징은 지그재그의 즉흥적 구도, 시점9視點)의 자유로운 이동, 자유롭고 분방한 필치의 파묵법(破墨法)과 음영법(陰影法), 경쾌한 담채(淡彩)의 효과적 구상 등에서 기인한다.
장승업의 기명절지화는 조선 후기 정조 임금 시절에 유행했다는 책가도(冊架圖)와 이것이 민화(民畵)로 변한 책거리 그림의 전통을 이어받았다. 책가도는 책장 소게 많은 책들이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는 모습을 서양화법으로 그린 것을 말하는데, 조선시대에 있어서 독서나 공부를 중시하는 풍조와 함께 크게 유행하였다. 어쨌든 기명절지화에는 이런 책가도의 전통과 함께 당시 중국에서 새로 수입된 청나라 말기 해상파(海上派)나 영남파(嶺南派)의 세화(歲畵)나 길상화(吉祥畵)의 영향도 받아들여져 있다. 당시에 조선이나 중국에서 이러한 정물화, 혹은 부귀다복(富貴多福)을 기원하는 그림이 유행한 것은 금석학(金石學)과 서화골동취미의 유행에도 그 원인이 있다. 어쨌든 장승업의 기명절지화는 당시의 어떤 회화보다도 즉흥적 필선의 아름다움과 생동미(生動美)를 보여주는 특이한 종류의 그림이다.
3. 천재의 업적과 현대적 의미
장승업의 업적으로는 우선 전통 화법을 창조적으로 종합, 결산한 점을 들 수 있다. 조선왕조 마지막 대화가(大畵家)로서 그는 전통 화법을 종합적으로 익히는 한편, 그 단점을 예리하게 파악하여 극복하였다. 즉 그는 당시 조선시대 말기 하단의 형식화된 남종문인화풍(南宗文人畵風) 뿐만 아니라 널리 북종호풍(北宗畵風)도 받아들여 종합 절충하여 새롭게 일가(一家)를 이루었다. 또 당시에 청의 새로운 화풍, 즉 신흥도시 상해를 중심으로 발달하던 조지겸, 임백년, 오창석 등 해상파(海上派)의 화풍도 받아들여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이것 뿐 아니라 장승업은 당시에 유행하던 화보(畵譜)도 이용하는 한편, 실제 동식물을 자세히 관찰하여 그 특징과 성격을 명확하게 파악하였다. 이렇게 장승업에 의해 창조적으로 종합, 결산된 전통화법은 이후에 제자인 심전(心田) 안중식과 소림(小琳) 조석진에게 전수되었다. 그리고 다시 안중식과 조석진은 현대 한국화단의 육대가(六大家)로 꼽히는 이상범, 변관식, 허뱍련, 김은호, 노수현, 박승무 등을 교육시켰던 것이다.
둘째로 장승업은 산수화, 인물화, 화조영모화, 기명절지화 등 여러 분야에서 당대를 대표하는 양식을 확립하여 후대의 커다란 모범이 되었다. 당시 형식화 된 남종문인화의 유행 아래 장승업만큼 회화의 여러 분야에 능숙한 화가는 없었다. 장승업의 회화는 철두철미한 장인(匠人) 정신의 소산이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가 그린 다양한 회화들은 당대 및 후대의 전형이 될 수 있었다. 장승업은 산수화에서는 수많은 전통적 양식을 절충하여 동양적 이상향(理想鄕)의 모습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하였다. 그리고 인물화에서는 진정한 초월적 인간상을 그려내었다. 화조영모화에서는 다양한 소재를 기운생동(氣運生動)하는 필묵법으로 소화해 내었고, 그가 창조한 기명절지도라는 독특한 장르에서는 생동감 넘치는 새로운 회화미를 창출해 내었다. 장승업의 신운이 넘치는 작품세계는 암울했던 19세기 후반에 있어서 시대를 밝히는 찬란한 예술혼의 승리였다.
마지막으로 장승업의 예술가로서의 업적 중 어떤 의미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바로 동양예술정신의 구현, 나아가 순수한 예술정신의 구현에 있다. 장승업은 예술을 향한 순수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예술안(藝術眼) 앞에는 왕이나 부자가 따로 없었다. 세속적인 부와 명성, 그리고 권위 따위는 그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오직 예술과 예술의 영감을 북돋아주는 술(酒)만이 가치 있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생애는 미를 위한 구도자(求道者)의 길이었으며, 세속적인 면에서는 실패한 것 같으나 진정한 예술의 면에서 오히려 영원한 생명을 얻었던 것이다.
위에서 살펴본 것과 같은 장승업의 큰 업적들은 바로 그가 한국 회화사상 차지하는 중요한 의의이기도 하다. 이런 점들 때문에 그를 조선왕조 3대 화가, 혹은 4대 화가의 한 사람으로 꼽으며, 동시에 조선 왕조의 마지막 대화가로 부를 수 있는 것이다. 그의 회화는 자칫 빈약할 뻔했던 조선말기의 회화사를 풍성하게 살찌웠고, 우리 민족사의 암울했던 한 시기를 정신적, 예술적으로 밝힌 찬란한 빛이었다.
장승업의 생애와 예술은 지나간 시대의 역사에 있어서만 의미가 클 뿐만 아니라 현대에 있어서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즉 그의 생애와 예술은 시대를 초월하여 진정한 예술가가 걸어야 할 길을 제시하고 있다. 즉 예술은 물질적 부와 세속적 권위에 얽매여서는 안된다는 점, 또 일상적인 행복과 나태에 빠져서도 안 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와 함께 서구적 가치관이 판을 치는 서양 미술사조가 무분별하게 수입되는 현대에 있어서 장승업의 구도자적 삶은 중요한 문제들을 제기한다. 즉 투철한 예술혼이 없는 외형적 양식추구가 과연 진정한 예술이 될 수 있을까? 그리고 예술가의 인생 자체와 융합되지 않은 예술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을까라는 문제제기이다. 그런데 이런 문제에 대한 해답은 바로 장승업 자신의 치열한 삶과 신운이 넘치는 작품 속에 담겨 있다.
4. 글을 마치며...
장승업의 생과 예술품들을 알아보며 그의 모든 생이 본받고 싶거나 멋지진 않지만 무엇보다 부럽고 놀라운 것은 천재이면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찾고 노력했다는 점과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으면 스스로의 예술성을 뿜어 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요즘 생활고의 문제로 인해 이런 저런 변명으로 많은 예술가들이 스스로의 예술성을 죽여 가는 모습을 보면 너무도 부러운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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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05.08
  • 저작시기2005.0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96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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