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퇴계의 생야
2. 퇴계 이황의 학문과 사상
이기론
심성론
궁리론과 수양론
3. 천명도설에 나타난 인간관
2. 퇴계 이황의 학문과 사상
이기론
심성론
궁리론과 수양론
3. 천명도설에 나타난 인간관
본문내용
라서 그들은 그를 늘 국왕의 측근에 두고 고문의 임무를 맡기고자 간절히 원했다. 그러나 그는 국왕이나 신료들의 그러한 기대와는 달리 늘 사직 귀향할 것을 희망하였다. 그런데 그가 이처럼 늘 현실에서 멀리 떠나고자 한것은 그의 성품 때문이라고 할 수가 있다. 그것은 그를 스스로의 학문의 성취와 인격의 수양을 쌓는데에는 많은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퇴계의 인간학은 이러한 불모의 인간관에다 새로운 인간이해의 등불을 비쳐주며, 그 이해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리라 믿는다. 퇴계 인간학의 궁극적 목표는 天理를 보존하고 人欲을 제거하여 하늘을 우러러 보거나 땅을 굽어 보거나 털끝만큼이라도 부끄러움이 없는 인간이 되려고 하는데 있다. 그리고 이렇게 설정된 인간관의 목표가 실현될 때 인간은 天과 하나가 되는 '天人合一'의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天地의 理氣를 받고 태어났다. 理와 氣는 합하여 마음(心)이 되고, 이 마음은 한 사람의 마음이자 곧 天地의 마음이며, 만인의 마음이다. 이렇기 때문에 사람에게 있어서 理의 所在는 한결 같아서 智愚가 생득적으로 타고남에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天理의 본연으로서 下愚라도 마땅히 힘을 쓰면 理의 사람으로 나갈 수 있으며, 上智라고 하여 기질의 아름다움 만을 믿어 존양 성찰과 眞知 실천이 없다면 人(사람)됨의 길을 저버린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퇴계는 氣의 사람도 理의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의 통로를 열어 놓는다. 여기에 퇴계 인간학이 단순한 지식학이 아닌 실천학으로서의 진면목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그가 성취한 학문을 현실에 도입하여 국가에 공헌하는 데까지는 미치지 못하였다. 조광조처럼 자기가 터득한 학문의 지식을 현실에 도입하여 온갖 시대적, 인적 악조건을 무릅쓰고 적극적이고 능동적이며 현실 참여적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결국 조광조는 자신의 뜻을 펼치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사약을 받았지만.....
그러나 퇴계는 그의 제자들이 말한 일화에서 볼 수 있듯이 성실하게 흐트러짐 없이 학문에 집착하여 성리학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고, 또 후대에까지 큰 영향력을 지닌 훌륭한 학자였다.
퇴계는 天理가 곧 人性이라 하였다. 사람이 홀로 구비한 仁은 천지만물이 구비하고 있는 仁의 주객관적 표현이다. 따라서 人性은 天理로 인하여 주재되는 것이므로 인간은 늘 존양 성찰의 공부에 힘쓰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퇴계의 인간학은 이러한 불모의 인간관에다 새로운 인간이해의 등불을 비쳐주며, 그 이해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리라 믿는다. 퇴계 인간학의 궁극적 목표는 天理를 보존하고 人欲을 제거하여 하늘을 우러러 보거나 땅을 굽어 보거나 털끝만큼이라도 부끄러움이 없는 인간이 되려고 하는데 있다. 그리고 이렇게 설정된 인간관의 목표가 실현될 때 인간은 天과 하나가 되는 '天人合一'의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天地의 理氣를 받고 태어났다. 理와 氣는 합하여 마음(心)이 되고, 이 마음은 한 사람의 마음이자 곧 天地의 마음이며, 만인의 마음이다. 이렇기 때문에 사람에게 있어서 理의 所在는 한결 같아서 智愚가 생득적으로 타고남에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天理의 본연으로서 下愚라도 마땅히 힘을 쓰면 理의 사람으로 나갈 수 있으며, 上智라고 하여 기질의 아름다움 만을 믿어 존양 성찰과 眞知 실천이 없다면 人(사람)됨의 길을 저버린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퇴계는 氣의 사람도 理의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의 통로를 열어 놓는다. 여기에 퇴계 인간학이 단순한 지식학이 아닌 실천학으로서의 진면목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그가 성취한 학문을 현실에 도입하여 국가에 공헌하는 데까지는 미치지 못하였다. 조광조처럼 자기가 터득한 학문의 지식을 현실에 도입하여 온갖 시대적, 인적 악조건을 무릅쓰고 적극적이고 능동적이며 현실 참여적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결국 조광조는 자신의 뜻을 펼치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사약을 받았지만.....
그러나 퇴계는 그의 제자들이 말한 일화에서 볼 수 있듯이 성실하게 흐트러짐 없이 학문에 집착하여 성리학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고, 또 후대에까지 큰 영향력을 지닌 훌륭한 학자였다.
퇴계는 天理가 곧 人性이라 하였다. 사람이 홀로 구비한 仁은 천지만물이 구비하고 있는 仁의 주객관적 표현이다. 따라서 人性은 天理로 인하여 주재되는 것이므로 인간은 늘 존양 성찰의 공부에 힘쓰지 않을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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