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쿠로스에 대해서
본 자료는 4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해당 자료는 4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4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목차

Ⅰ. 서론 - 에피쿠로스학파에 대한 문제

Ⅱ. 본론
1. 헬레니즘 시대
2. 에피쿠로스의 생애
3. 에피쿠로스 철학
1) 데모크리토스와 키레네학파
2) 영원한 정신적 즐거움
3) 아타락시아(ataraxia)
4) 죽음과 신
5) 그 밖의 것들

Ⅳ. 결론 - 에피쿠로스의 오해 풀기

본문내용

장을 취했는가? 그는 성적인 사랑을 동적인 쾌락으로 보았고 자연히 금지하였다. 성인(聖人)은 결코 성교를 하지 않았다. 성교로 말미암아 해독을 받지 않는다면, 그는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다. 스토아학파에 의하면 먹고 마시고 성교하고 자는 것 외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에피쿠로스가 성교는 곧 해독을 가지고 온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우정을 중요시 하였다. 우정을 얻는 능력을 행복에 기여하는 지혜의 활동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정은 공적인 일에 투신하지 않고 사사로운 공간에 머무르려 하는 인간에게는 가장 이상적인 인간관계이며 그가 말하고 있는 정적인 즐거움에 적합하다. 에피쿠로스는 모든 사람에 대한 인간애를 강조했기 때문에 그의 철학적 공동체는 노예나 여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에게 개방되어 있었다. 이렇듯 에피쿠로스의 육체의 고통과 마음의 불안으로부터 벗어나는 평정심은 우정으로 가득 찬 삶 속에서 추구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에피쿠로스학파가 자연의 지식에 대하여 아무 공헌도 하지 못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비단 에피쿠로스학파에만 기인하는 것은 아니다. 헬레니즘시대의 학파들은 전대의 뛰어난 철학들의 장점을 모아 교리를 만드는 형태를 취하였다. 오히려 에피쿠로스학파는 점술이나 점성술 등에 당시의 이교도들이 빠져 있을 때 이에 대하여 항거하는 유익한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그의 제자인 시인 루크레테우스(Lucretius, B.C. 99~55)의 시 중 에피쿠로스의 철학을 운문으로 표현한 것이 있는데 그는 에피쿠로스를 마치 한 구세주처럼 느끼고 종교의 파괴자인 그에게 격렬한 종교적인 용어까지도 적용시키고 있다.
) 보고서의 마지막에 신의 전문을 싣도록 하겠다.
Ⅳ. 결론 - 에피쿠로스의 오해 풀기
로버트 L. 애링턴은 그의 저서 <서양 윤리학사>에서 "에피쿠로스적인" 또는 "에피쿠로스주의"라는 말이 술과 여자, 노래로 가득 찬 저속한 삶 또는 주색잡기와 방탕함에 빠진 자포자기의 관능적인 삶, 강렬한 육체적 쾌락만을 추구하는 삶과 동일시하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 서양 윤리학사 (로버트 L. 애링턴 164P)
실제로 이런 종류의 삶은 키레네학파와는 어울릴지 모르나 에피쿠로스가 실천하는 삶의 방식과는 전혀 일치 하지 않는다. 방탕한 삶은 사실 에피쿠로스가 강도 높게 비판한 것으로서 그는 그런 삶은 인간이 비참해지고 일찍 죽게 되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하였다.
에피쿠로스가 추구한 것은 개인의 행복이며 이 개인의 행복을 위해 육체적 고통과 마음의 근심이 없어야 한다고 하였다. 곧 행복은 마음의 안과 밖에서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에 의해서 가능하다고 하였는데 이러한 고통도 불안도 없는 절대적 평온함을 에피쿠로스는 아타락시아(ataraxia)라 하였다. 이러한 절대적 평온함을 위해 에피쿠로스는 검소하고 항상 절제된 생활을 할 것을 이야기하였다. 마치 청렴한 삶을 사는 우리의 선비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는 알렉산더 대왕에게 '대왕이시여...... 햇볕을 가리지말고 비켜주시오'라고 이야기하였던 디오게네스에 비견할 만하다. 디오게네스의 무소유의 삶은 에피쿠로스와 그것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에피쿠로스와 관련된 수많은 편견과 오해들은 그의 쾌락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에피쿠로스의 철학을 쾌락주의라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는 육체적 쾌락은 오히려 경계하고 피해야 할 것으로 생각했고 오직 정신적인 면을 강조했다. 그리고 쾌락이라는 말은 통사론적으로 정적인 상태를 나타내는 표현과 어울리지 않다. 그러하기에 정신적인 쾌락이라는 표현 또한 옳지 않다. 쾌락이라는 말 대신 즐거움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리라 생각된다.
에피쿠로스와 그의 철학을 공부하면서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는 소박한 삶에 대해 생각을 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그리고 객체화되어가는 인간의 모습을 담는 현대사회에 절제되고 검소한 생활로 마음의 평정을 얻고 자신의 행복을 영위하는 에피쿠로스의 모습은 그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겠다.
참고문헌
로버트 L. 애링턴, 김성호(역), 「서양 윤리학사」, 서광사, 2003.
B. 러셀 지음, 최민홍(역), 「서양 철학사」 , 집문당, 1997.
한스라이너, 이석호(역), 「철학적 윤리학」, 철학과 현실사, 1999.
빌헬름 바이쉐델, 강혜경(역), 「철학의 뒷계단」, 시간과 공간사, 1990.
류크레티우스(Lucretius. B.C. 99~55/)의 시
) 트리블라이안(R.C Trevelyan)의 번역에서 인용 - 서양 철학사(B.러셀 355~366)
인간의 생명이 땅 위에 엎드려 있다. 종교의 잔인한 구두 발 밑에 짓밟혀
여지없이 더렵혀지고 손상되어.
종교는 하늘나라로부터 얼굴을 나타내며
두려운 모습으로 인간에게 내려올 때, 한 그리스인이 처음으로 종교를 향해
감히 눈을 치켜 들었으니
그는 처음으로 종교에 도전한 사람이로다.
신들에 대한 숱한 이야기도 번갯불도
또 하늘에서 들려오는 위협도 그를 굴복시킬 수 없었도다.
오히려 이 모든 것이 대담하고 용감한 그의 영혼을 복돋아 주었으니
그는 드디어 굳게 잠긴 자연의 대문을 부수고
처음으로 안으로 침입해 들어가기를 갈망한 사람이고자 했노라.
그리하여 그의 맹렬한 정열은 드디어 승리를 거두었으니
앞으로 더욱 전진하여, 멀리 화염에 쌓인 세계의 성벽을 넘어서
그의 성혼을 측량할 수 없는 넓고 먼 우주에 미치었도다.
그는 승리자로 개선하여 지식을 우리에게 가져왔으니,
곧 무엇이 일어날 수 있고 없는가에 대한 것이로다.
만물이 가진 바 각각 그 힘의 한계와 깊이를 가르치고,
그 차이를 분명히 정해 놓았도다.
그러므로 이제 종교는 땅에 떨어져,
오히려 사람들의 발아래 짓밟히게 되었노라.
그의 승리는 우리를 하늘 높이 올려다 주노라.
<목 차>
Ⅰ. 서론 - 에피쿠로스학파에 대한 문제
Ⅱ. 본론
1. 헬레니즘 시대
2. 에피쿠로스의 생애
3. 에피쿠로스 철학
1) 데모크리토스와 키레네학파
2) 영원한 정신적 즐거움
3) 아타락시아(ataraxia)
4) 죽음과 신
5) 그 밖의 것들
Ⅳ. 결론 - 에피쿠로스의 오해 풀기
  • 가격1,400
  • 페이지수12페이지
  • 등록일2005.06.25
  • 저작시기2005.0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04688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