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 시대에 대한 몇 가지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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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우리는 과연 제대로 대응하고 있는가?

2) '본분'에서 벗어나 '본분'을 다하자

3) 경제를 '다시' 살리지 말자

4) 쇼비니즘에서 세계화로

5) IMF 시대의 '여성 죽이기'

6) 우리는 이들을 잊고 있지 않았던가?

본문내용

실과 여권의 신장을 얘기하는 남자들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은 '간 큰 상사' 시리즈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사회적 강자가 사회적 약자의 권익 확대에 미리 겁을 먹고 그 힘의 실체를 사실 이상으로 과장함으로써 자신들의 입지를 조금이라도 강화해보고 자 하는 허풍에 불과하다.
'남편 기살리기' 운동의 더욱 큰 문제점은 그것이 경제불안과 실직으로 인한 사회적 문제 해결을 여성 개개인의 심리적 태도와 자세에 전가시켜 전체의 사회적 비용을 절감하려는 한국형 가부장 적 자본주의의 전형적인 위기 대응 방식이라는 점이다. 후진국 수준의 사회보장제도하에서도 한 국사회가 이 정도라도 유지되어온 것은 가정의 복지를 위해 '수퍼우먼'으로의 변신을 강제당한 아 내/엄마의 개별적 희생 덕택이다. 그러나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한국의 사회보장 발전을 향한 구 조적 개혁은 오히려 미루어져 왔던 것이다. 성차별과 한국의 경제위기는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증거다.
'세계화' 시대에도 여전히 한국남자들의 특권과 지배는 난공불락의 성이다. 여아대비 남아 비율 세계 1위를 뽐내며 (대전은 대구에 이어 국내 도시중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일년에도 3만명이 넘 는 여아의 태아를 살인하는 나라는 과연 어떤 나라 인가. 여성의원 비율은 세계 99위이고 여성의 행정관리직 비율은 84위에 머물고 있으며 여성의 권한척도는 40위 밖에 맴돌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또 한 번의 '여성 죽이기'인가? 이제 우리는 한국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라 도 '남편 기살리기'를 '사회적 약자 기살리기'로 전환시켜 근본적 사회개혁의 에너지로 삼아야 한 다. 성평등지향적 개혁은 그 누구를 '죽이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사회의 아내와 남편 을, 엄마와 아빠를, 여성과 남성을 모두 살리기 위한 길이다. (대전대학교 교수, 정치학)
6) 우리는 이들을 잊고 있지 않았던가?
참으로 암울한 시절이다. 실업, 도산, 빈부격차의 확대가 가속화되고 있다. 또한 외국자본이 들어 오지 않아서 고민하고 반대로 외국자본이 들어와서 불안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이런 위 기속에서도 겁없이 권력과 재벌에 도전하고 비판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위안 을 준다.
대통령을 비판하고 ('미싱' 운운한 사람도 아직까지는 끌려가지 않았다) 정책을 비난하고 한국형 자본주의의 모순에 대한 지적을 해도 잡아가는 사람도 잡혀가는 사람도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민주노총이나 전교조가 합법화 단계에 이르고 있고 어떤 언론도 이들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해도 최소한 '좌경용공'으로는 매도하지 않는 세상이다. 실업과 도산문제가 우리를 괴롭히고 있지만 거 기에 설상가상으로 만약 정부나 대통령의 이런 문제에 대한 정책을 내놓고 비판할 수 없고 말 한 마디, 글 한토막이 투옥으로 이어지는 세상이 계속되고 있다고 가정하면 과연 이 시기는 얼마나 더 암울할까 하는 생각을 한다. 박정희시대에 대한 시대착오적인 향수에도 불구하고 과연 몇명의 한국사람이 고문, 투옥, 독재, 언론탄압으로 얼룩진 과거로 돌아가기를 바라겠는가? 최근의 인도 네시아 사태를 보며 대다수의 한국인은 "우리도 한때 저랬었지. 그 고비는 예전에 이미 넘겼으니 그래도 우리는 좀 나은 세상에 살고 있는게 아닌가"하는 자기위안의 느낌을 갖는게 사실이다.
이만큼의 자유와 권리라도 누릴 수 있게된 것이 과연 누구 덕인가? 혜택을 실컷 누리면서 그것 을 가능케한 사람들을 기억하고 감사하고 있는가? 문제 투성이지만 현수준의 자유민주주의를 만 들어내기 위해서라도 과거 반세기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몸을 던지고 땀과 피를 흘렸 는가? 민주주의를 위해서, '양심선언'을 위해서 자신의 가정, 학업, 세속적 성공을 희생했던 사람 들중 대다수는 당시에는 편견과 매도의 집단적 광풍속에서 주위로부터 고립된채 고독한 싸움을 수행했다. 그리고 상처받은 그들은, 제도정치로 편입된 일부를 제외하고서는, 곧 잊혀졌다. 특히 얼마전 제18주년을 갓넘긴 5.18 민주화운동의 희생자들은 당시에 '불순분자' '폭도'로 매도되어 외 부와 완전 차단된 상태에서 얼마나 외로운 투쟁을 했던가? 오늘날 어떤이들은 자신이 마치 항상 자유민주주의의 신봉자였던 것처럼 얘기하고 공사석에서 할 말 못할 말 다하는 자유를 누리고 있 다. 그러나 그들은, 아니 우리들은 과연 그때 어디에 있었는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우리들은 정치적 무임승차자이다. 요금도 내지 않고 민주주의라는 고급열차에 앉아있는 얌체승 객은 아닌가? 사람들은 마치 민주주의가 그냥 저절로 생겨났다는 듯, 아무런 반성도 어떤 기억도 없이 살아가고 있다. 정치판을 제외하고서는 아니 그곳에서도 민주화운동 경력은 더 이상 자랑스 러운 훈장이 아니다. 오히려 기피의 대상이며 '촌스러움'의 상징이 된지 오래다.
그러나 한 사회의 건강함은 그 사회의 모순과 문제점을 밝혀내고 해결하기 위해 개인적인 희생 과 위험을 무릅쓴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인정과 보상으로부터 나온다. 이러한 인정과 보상은 그 개개인 유공자들의 잃어버린 과거에 대한 동정적 차원에서 요구되는게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미 래에서 그러한 정의로운 역할을 기꺼이 맡으려는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공동적 뒷받침의 가능성에 대한 확신을 주기 위해서이다. 부조리와의 싸움은 어느 시대에서나 외롭고 힘겨운 일이 지만 계속 정의로운 행위가 매도되고 고립되며 사회적으로 기억되고 인정받지 않는다면 그 누가 혼자서 이런 버거운 짐을 지려할 것인가? 인정과 보상속에서만 미래의 정의로운 행위는 고무되고 유발되며 그것을 통해 우리 사회는 좀 더 투명하고 민주적인 사회로 나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된 다. 그랬더라면 우리는 정경유착, 관료주의, 권위주의의 누적으로 발생한 현재 한국의 위기를 비 껴갈 수도 있지 않았을까? 1990년대의 한국사회는 과거의 민주화에 헌신했던 분들을 기억하고 공 식적 비공식적인 차원에서 이들의 희생과 이타적인 열망에 보답하는 길을 찾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이들을 잊고 살았다. 정치적 냉소주의가 팽배한 지금, 4.19에서 5.18 그리고 6.25로 이어지는 계절에 이러한 분들의 뜻과 헌신을 다시 한번 기억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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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05.07.14
  • 저작시기2005.07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07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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