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서론]
[본론]
[결론]
[본론]
[결론]
본문내용
. 그러나 웨슬리는 플라톤주의자들과 이신론자들처럼 이성에게 형이상학적 힘을 돌리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이성은 이성 자체 안에 신적 원칙이 있는 것은 아니며, 단순히 피조물 중의 하나인 것이다.
다섯째로, 정통적 체험으로써의 신앙은 성례전적이다. 감정들은 성례전적인 방법으로 운영되는데, 그것은 마치 떡과 포도주가 비록 신체적이고 물질적 세계의 한 부분이면서도 동시에 신체적 현상 "안에서, 그것과 더불어, 그 아래서, 그리고 그것을 통하여"신적 의식을 수반하는 것처럼, 그것은 그들 자신을 넘어선 곳으로부터 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우리 존재의 한 가운데서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는 어떠한 메시지도 감정들로 말미암아 수반되는 것이다.
여섯째로, 정통적 체험으로써의 신앙은 목적론적(teleological)이다. 그것은 시간 안에서 어느 한 순간에만 국한되지 않는 체험인 것이다. 그것은 방향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그 목적에 이르는 길 위에 있는 것이다. 웨슬리의 입장에서, 하나님께 대한 어떤 진정한 체험은 우주적 차원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세계를 갱신하시는 신적 기획에 통합적이 되게 하며, 또한 하나님은 창조주시면서 동시에 우리의 재-창조주(Re-Creator)가 되시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다. 이 하나님과 관계한다는 것은 지금도 그 여정에 있는 재창조의 과정에 필연적으로 우리가 사로잡혀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창조주께서는 세계를 이 부패한 상태로 버리지 않으시며, 파괴하기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이 세계를 변혁하고 성화하는 것을 진정 원하시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다.
[결론]
웨슬리는 욥기 저자의 말대로 하나님은 "그 손으로 지으신 것을 멸시치 않으신다."(욥 10:3)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죄인의 죽음이나 그 만드신 어떤 것이라도 멸망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모두 구원받기를 기뻐하신다고 확신하였다.
그러므로 우리의 칭의와 갱생과 성화는 이 우주적 변화의 신적 역사에 우리를 연결시켜 주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체험은 주관적으로나 인간적으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중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오고 있는 새로운 질서의 표시에 우리를 접촉시켜 주기 때문이다. 정통적 체험으로써의 신앙 안에서 우리의 체험은 지금 열리는 구원의 역사 안으로 우리를 통합시키며 우리에게는 개인적 갱신과 하나님 나라의 첫 열매 안에 참여하는 이 양자를 포함하는 방향감각과 목표가 주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위의 여섯 가지 표식을 통하여 "바른 체험"을 위한 기준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들은 정통적 체험이 정통교리와 정통적 행위와 어떻게 분리될 수 없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은 신앙의 진정함을 위하여 중요한 다른 차원을 마련해준다. 즉 체험은 성령의 현존과 그 활동에 뿌리를 내리고; 체험은 성서와 전통 안에 반영된 과거 그리스도인들의 체험과 일치하며, 체험은 받은 은혜를 다른 사람들에게 베푸는 일에서도 드러난다는 것이다. 역사에서도 표현되는 것이어야 한다.
다섯째로, 정통적 체험으로써의 신앙은 성례전적이다. 감정들은 성례전적인 방법으로 운영되는데, 그것은 마치 떡과 포도주가 비록 신체적이고 물질적 세계의 한 부분이면서도 동시에 신체적 현상 "안에서, 그것과 더불어, 그 아래서, 그리고 그것을 통하여"신적 의식을 수반하는 것처럼, 그것은 그들 자신을 넘어선 곳으로부터 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우리 존재의 한 가운데서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는 어떠한 메시지도 감정들로 말미암아 수반되는 것이다.
여섯째로, 정통적 체험으로써의 신앙은 목적론적(teleological)이다. 그것은 시간 안에서 어느 한 순간에만 국한되지 않는 체험인 것이다. 그것은 방향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그 목적에 이르는 길 위에 있는 것이다. 웨슬리의 입장에서, 하나님께 대한 어떤 진정한 체험은 우주적 차원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세계를 갱신하시는 신적 기획에 통합적이 되게 하며, 또한 하나님은 창조주시면서 동시에 우리의 재-창조주(Re-Creator)가 되시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다. 이 하나님과 관계한다는 것은 지금도 그 여정에 있는 재창조의 과정에 필연적으로 우리가 사로잡혀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창조주께서는 세계를 이 부패한 상태로 버리지 않으시며, 파괴하기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이 세계를 변혁하고 성화하는 것을 진정 원하시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다.
[결론]
웨슬리는 욥기 저자의 말대로 하나님은 "그 손으로 지으신 것을 멸시치 않으신다."(욥 10:3)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죄인의 죽음이나 그 만드신 어떤 것이라도 멸망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모두 구원받기를 기뻐하신다고 확신하였다.
그러므로 우리의 칭의와 갱생과 성화는 이 우주적 변화의 신적 역사에 우리를 연결시켜 주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체험은 주관적으로나 인간적으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중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오고 있는 새로운 질서의 표시에 우리를 접촉시켜 주기 때문이다. 정통적 체험으로써의 신앙 안에서 우리의 체험은 지금 열리는 구원의 역사 안으로 우리를 통합시키며 우리에게는 개인적 갱신과 하나님 나라의 첫 열매 안에 참여하는 이 양자를 포함하는 방향감각과 목표가 주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위의 여섯 가지 표식을 통하여 "바른 체험"을 위한 기준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들은 정통적 체험이 정통교리와 정통적 행위와 어떻게 분리될 수 없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은 신앙의 진정함을 위하여 중요한 다른 차원을 마련해준다. 즉 체험은 성령의 현존과 그 활동에 뿌리를 내리고; 체험은 성서와 전통 안에 반영된 과거 그리스도인들의 체험과 일치하며, 체험은 받은 은혜를 다른 사람들에게 베푸는 일에서도 드러난다는 것이다. 역사에서도 표현되는 것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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