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대왕릉비와 임나일본부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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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머리말

1. 광개토왕릉비에 대하여

2. 광개토왕릉비의 재발견과 연구

3. 광개토왕릉비문의 쟁점부분과 해석
(1) 일본에서의 해석
(2) 중국에서의 해석
(3) 북한과 한국에서의 해석

4. 새로운 연구결과, '왜=일본'이 아니다

맺음말

문제

본문내용

의하기 이전에 일본에 대한 본질적인 부정이 되어 任那日本府說을 뿌리째 흔드는 것이라 주목된다.
맺음말
陵碑의 연구는 문헌사료의 부족이라는 韓國古代史가 갖는 일반적 한계와 高句麗史硏究의 현실적 한계 및 삼국 학계의 입장의 차이에 의하여 방대한 연구결과에도 불구하고 논의는 결론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辛卯年記事의 판독과 해석에서 보는 바와 같이 變造된 碑文을 토대로 한 初期 日本官學에 의해 陵碑가 '任那日本府'의 주요 근거로 제시된 이래 일본학계는 당대 동아시아의 국제관계에서 倭를 주도적으로 보고자 한 까닭에 비문연구의 방법론상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답보상태에 머무르고 있다. 한국학계의 경우에도 碑文의 구조나 用辭의 면밀한 검토없이 倭의 등장에 대한 攻防에 경도된 나머지, 主客이 전도되어 일방적 해석이나 缺字의 복원도 단순한 방법에 의거 古代 韓日關係의 입장을 합리화하는데 지나치게 노력을 해왔다.
辛卯年記事를 비롯한 廣開土王陵碑의 연구는 고구려사를 중심으로 한 韓國古代史 자체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본학계의 한국사 왜곡에 대한 체질 비판에 까지 연결되는 문 제이다. 따라서, 韓國古代史의 발전과정의 해명이라는 능비연구 본류에 도달하기 위하여 보다 객관적인 입장에서의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연구가 요망된다.
《참고문헌》
『한국사 시민강좌 제3집』 1988 일조각
김석형 『고대한일관계사』 1990 한마당
『광개토대왕릉비 연구 100년』 1996 학연문화사
손영종 『광개토왕릉비 왜관계기사의 올바른 해석을 위하여』 1988 역사과학
이형구·박노희 『광개토대왕릉비신연구』 1986 동화출판사
고구려 연구회 http://www.koguryo.org/
http://pakdb.netian.com
Q1> 한국 고대사 연구에 있어서 제1급 금석문 자료일 뿐만 아니라 고대 한일관계사 연구에 있어서도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는 압록강 중류 집안현 통구에 위치한 이 비는 무엇인가?
Q2> 임나일본부설과 관련하여 가장 문제가 되는 기사는 무엇인가?
Q3> 1972년 일본참모부에서 비면에 석회를 바르고 글자를 새로 새긴 비문변조론을 발표한 재일 사학자는 누구인가?
Q4> 광개토왕비문의 왜의 침략 기사가 사실이라고 해서 현재의 일본이 과거에 한국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쳤다는 것을 사실로 입증한 것은 아니다. 학계에서는 비문의 왜가 현재 일본의 고대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이들이 주장하는 한반도내 왜의 중심지는 어디라고 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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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11.20
  • 저작시기2005.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2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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