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고려시대 아악의 변천과 지속
1) 대성악 제정 경위와 연주제도 및 특성
2) 고려의 대성아악(大晟雅樂) 수용
3) 고려시대 아악의 변천과 지속
2. 조선초기 ꡔ대성악보ꡕ의 수용과 변천
1) ꡔ대성악보ꡕ의 사료적 가치
2) ꡔ대성악보ꡕ의 수용
3) ꡔ대성악보ꡕ의 변용
3. 세종대 음악정책의 전개 양상과 특성 - 아악을 중심으로 -
1) 세종대 음악정책의 배경
2) 세종대 음악정책의 전개
1) 대성악 제정 경위와 연주제도 및 특성
2) 고려의 대성아악(大晟雅樂) 수용
3) 고려시대 아악의 변천과 지속
2. 조선초기 ꡔ대성악보ꡕ의 수용과 변천
1) ꡔ대성악보ꡕ의 사료적 가치
2) ꡔ대성악보ꡕ의 수용
3) ꡔ대성악보ꡕ의 변용
3. 세종대 음악정책의 전개 양상과 특성 - 아악을 중심으로 -
1) 세종대 음악정책의 배경
2) 세종대 음악정책의 전개
본문내용
까지 세종을 포함한 정인지 등의 학자들은 율려신서을 읽고 난 뒤, ‘제작지묘’를 깊이 알게 되었고 진양의 악론을 폭넓게 수용하던 풍토에서도 세종은 ‘하늘이 내신 성학으로서 홀로 뭇 사람의 의심을 끊어버리고’ 전적으로 채원정의 율려신서를 채용하였다고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채용’의 의미가 전적인 몰입을 의마한 것은 아니어서 율려신서를 공부한지 4개월 만인 12년 12월에 세종은 율려신서도 형식만 갖추어 놓은 것 뿐이라고 ‘판단’한 뒤, 율려신서의 여러 이론 중 세종실록 아악보에 수록된 “아악십이궁칠성용이십팔성(雅樂十二宮 七聲用二十八聲)”과 “십이궁칠성용십육성(十二宮七聲用十六聲)” 선별적으로 수용하였다.
그 결과 제례악은 대성악보의 16곡 중 궁조로 된 12곡을 취하고, 이것을 다시 12조로 이조한 144곡으로 완성되었고, 조회아악은 풍아십이보 중 궁조로 된 소아 6편의 28장(鹿鳴 3장, 四牡 5장, 皇皇者華 6장, 魚麗 6장, 南有嘉魚 4장, 南山有臺 5장)의 곡 26궁을 먼저 취하고, 이것을 다시 12조로 이조하여 312곡을 정했다. 그런데 세종실록 아악보에 수록된 많은 양의 제례아악과 조회아악 전부가 실제 연주에 사용된 것은 아니었다. 제례아악은 전곡 144곡 중에서 황종궁과 송신(送神) 황종궁이 다시 채택되었고, 황종궁의 선율 중 옥타브 위의 청성을 정성(正聲)으로 바꿈으로써 순수하게 7성만 사용해서 연주하는 식으로 변용되었다. 그리고 조회아악은 312곡 중에서 가사가 4자 1구, 4구 1장, 또는 6구 1장 형식을 가졌으며 궁조인 2곡 (어리에서 나온 융안지악과 황황자화에서 나온 서안지악) 이 실제 연주에 사용되었다. 융안지악은 조회에서 임금이 출입할 때 연주되었으며, 서안지악은 군신의 배례 절차에서 연주되었다. 즉, 세종 12년에 완성되어 세종실록 악보에 수록된 제례아악과 조회아악은 원전의 내용을 조선에 그대로 이식한 것이 아니라, 율려신서의 이론을 적용하여 재구성한 신제아악이었던 것이다.
④ 회례아악의 제정
세종 13년 8월부터는 여악(女樂)의 정재와 향·당악을 연주하는 회례연(會禮宴, 君臣同宴) 경국대전의 예전 연향조에 의하면 회례연은 매년 정조(正朝)와 동지(冬至)에 행하는 궁중 예연으로 이 자리에는 왕세자와 문무백관이 참여한다. 회례연에 대한 공식적인 기록은 세종 15년 1월 1일이지만, 보통 조하(朝賀) 의례 후 잔치가 이어지는 것이 상례였으므로, 정지(正至)의 군신동연의 전통은 고려조로부터 전승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에도 아악과 남악(男樂)을 써야한다는 논의가 시작되었다. 이에 대해 세종은 제례 및 조회의 아악은 전거에 맞게 제정할 수 있지만, 이전에 향·당악을 사용하던 회례에 아악을 사용하는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마침내 회례연에서의 아악 전용(專用)론이 한발 물러서고 회례연의 전반부에서는 아악을, 후반부에서는 향악과 당악을 쓴다는 절충안이 받아들여졌다.
그 결과 세종 15년 정월 근정전에서 거행된 회례연에서는 처음으로 회례의 전반부에 수보록, 근천정, 하황은, 수명명, 몽금척 등의 아악을 연주하고, 태조와 태종의 공덕을 가영한 문명지곡(文明之曲)과 문무(文舞) 3성, 무열지곡(武烈之曲)과 무무(武舞) 2성을 연행하였다. 그리고 후반부에서는 당악인 서자고, 수룡음, 오양선과 향악정재인 무고를 연행하고, 마지막으로는 정동방곡을 노래했으며, 임금의 출입에는 융안지악, 군신 배례에는 서안지악을 연주하였는데 그 장면은 세종이 흡족히 여길 만큼 장관을 이루었다. 그러나 세종대의 회례아악은 태조와 태종의 공덕을 주제로 한 신악이 완성되자 그 자리를 내어주게 된다.
※ 참고문헌
<단행본>
송혜진, 한국 아악사 연구』, 민속원, 2000
이혜구, 신역 악학궤범, 국립국악원, 2000
송방송, 한국음악통사, 일조각, 1984
이혜구, 고려 대성악의 변천, 한국음악서설, 서울대학교 출판부, 1975
<논문>
이혜구, 세종실록소재 아악보 서, 한국음악연주 제1집, 한국국악학회, 1971
송혜진, 고려시대 아악의 변천과 지속, 정신문화연구원(석사), 1985
송혜진, 세종실록 원구 <신제 아악보>의 연원에 대한 고찰, 국악원논문집 제7집, 국립국악원, 1995
신대철, 고려의 당악과 아악의 수용, 국악원논문집 제11집, 국립국악원, 1999
정화순, 고려사 악지 소재 아악과 송악의 비교 검토, 한국음악연구 제28집, 한국국악학회, 2000
정화순, 세종대 조회아악의 성립 배경에 관하여, 국악원논문집 제15집, 국립국악원, 2003
그 결과 제례악은 대성악보의 16곡 중 궁조로 된 12곡을 취하고, 이것을 다시 12조로 이조한 144곡으로 완성되었고, 조회아악은 풍아십이보 중 궁조로 된 소아 6편의 28장(鹿鳴 3장, 四牡 5장, 皇皇者華 6장, 魚麗 6장, 南有嘉魚 4장, 南山有臺 5장)의 곡 26궁을 먼저 취하고, 이것을 다시 12조로 이조하여 312곡을 정했다. 그런데 세종실록 아악보에 수록된 많은 양의 제례아악과 조회아악 전부가 실제 연주에 사용된 것은 아니었다. 제례아악은 전곡 144곡 중에서 황종궁과 송신(送神) 황종궁이 다시 채택되었고, 황종궁의 선율 중 옥타브 위의 청성을 정성(正聲)으로 바꿈으로써 순수하게 7성만 사용해서 연주하는 식으로 변용되었다. 그리고 조회아악은 312곡 중에서 가사가 4자 1구, 4구 1장, 또는 6구 1장 형식을 가졌으며 궁조인 2곡 (어리에서 나온 융안지악과 황황자화에서 나온 서안지악) 이 실제 연주에 사용되었다. 융안지악은 조회에서 임금이 출입할 때 연주되었으며, 서안지악은 군신의 배례 절차에서 연주되었다. 즉, 세종 12년에 완성되어 세종실록 악보에 수록된 제례아악과 조회아악은 원전의 내용을 조선에 그대로 이식한 것이 아니라, 율려신서의 이론을 적용하여 재구성한 신제아악이었던 것이다.
④ 회례아악의 제정
세종 13년 8월부터는 여악(女樂)의 정재와 향·당악을 연주하는 회례연(會禮宴, 君臣同宴) 경국대전의 예전 연향조에 의하면 회례연은 매년 정조(正朝)와 동지(冬至)에 행하는 궁중 예연으로 이 자리에는 왕세자와 문무백관이 참여한다. 회례연에 대한 공식적인 기록은 세종 15년 1월 1일이지만, 보통 조하(朝賀) 의례 후 잔치가 이어지는 것이 상례였으므로, 정지(正至)의 군신동연의 전통은 고려조로부터 전승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에도 아악과 남악(男樂)을 써야한다는 논의가 시작되었다. 이에 대해 세종은 제례 및 조회의 아악은 전거에 맞게 제정할 수 있지만, 이전에 향·당악을 사용하던 회례에 아악을 사용하는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마침내 회례연에서의 아악 전용(專用)론이 한발 물러서고 회례연의 전반부에서는 아악을, 후반부에서는 향악과 당악을 쓴다는 절충안이 받아들여졌다.
그 결과 세종 15년 정월 근정전에서 거행된 회례연에서는 처음으로 회례의 전반부에 수보록, 근천정, 하황은, 수명명, 몽금척 등의 아악을 연주하고, 태조와 태종의 공덕을 가영한 문명지곡(文明之曲)과 문무(文舞) 3성, 무열지곡(武烈之曲)과 무무(武舞) 2성을 연행하였다. 그리고 후반부에서는 당악인 서자고, 수룡음, 오양선과 향악정재인 무고를 연행하고, 마지막으로는 정동방곡을 노래했으며, 임금의 출입에는 융안지악, 군신 배례에는 서안지악을 연주하였는데 그 장면은 세종이 흡족히 여길 만큼 장관을 이루었다. 그러나 세종대의 회례아악은 태조와 태종의 공덕을 주제로 한 신악이 완성되자 그 자리를 내어주게 된다.
※ 참고문헌
<단행본>
송혜진, 한국 아악사 연구』, 민속원, 2000
이혜구, 신역 악학궤범, 국립국악원, 2000
송방송, 한국음악통사, 일조각, 1984
이혜구, 고려 대성악의 변천, 한국음악서설, 서울대학교 출판부, 1975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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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혜진, 고려시대 아악의 변천과 지속, 정신문화연구원(석사), 1985
송혜진, 세종실록 원구 <신제 아악보>의 연원에 대한 고찰, 국악원논문집 제7집, 국립국악원, 1995
신대철, 고려의 당악과 아악의 수용, 국악원논문집 제11집, 국립국악원, 1999
정화순, 고려사 악지 소재 아악과 송악의 비교 검토, 한국음악연구 제28집, 한국국악학회, 2000
정화순, 세종대 조회아악의 성립 배경에 관하여, 국악원논문집 제15집, 국립국악원,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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