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이순신(李舜臣)으로의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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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인간 이순신(李舜臣)으로의 고찰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임진왜란과 이순신

Ⅲ. 인간 이순신에 대한 고찰

Ⅳ. 맺음말

본문내용

대를 출격시 키지 않는데 이 같은 국가적인 위급상황에서 그 이유가 합당한 것인지 의문이 간다.
이순신은 난중일기에서 원균을 매우 흉악한 인물로 묘사한다. 그러나 그렇게 묘사되는 이 유를 난중일기 내에서 이끌어 낼 수 있다. 난중일기에서 이순신은 원균에 대한 이야기나 행동을 그의 주변 장수들에게 들으면서 원균에 대한 평가를 해 나가기 시작한다.
원균은 이순신 같은 문신에 가까운 지략가적인 장수가 아닌 골수 무장인 장수였기에 주변 장수들을 힘으로 다스리고 지휘하려 하였을 것이다. 그런 그를 싫어하던 주변 장수들에게 이순신은 원균에 비해 많이 부드러워 보였을 것이고 또한 그의 뒤를 받쳐주던 유성룡이라 는 위인은 이순신을 존경하게 만들어 주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이순신과 친분을 쌓고 싶 어하게 되었고 그러는 사이에 그들의 입에서 나온 원균에 대한 흉악한 이야기들로서 이순 신은 원균에 대한 이미지를 처음부터 흉악한 인물로 그려지기 시작한다.
우리들은 임진왜란 당시 원균은 전쟁 초기의 해전에서 크게 패하고 이순신이 백의 종 군을 하고 있을 때 칠천량해전에서 크게 패한 것으로 알고 있으나 이것 또한 잘못된 인식 이다.
그가 이 두 전투에서 패한 것은 사실이지만 원균 또한 이 전투가 패할 것을 짐작하고 있 었다. 그러나 도원수 권율의 재차 명령에 그는 어쩔 수 없이 전투를 시작하게 되었고 그 결과는 참패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또한 그 전의 우리가 알고 있는 이순신의 전투 중 대 부분 에 원균은 함께 참여하여 승전을 거둔다. 다만 원균의 부대가 첫 해전의 참패 이후 많이 축소되어 이순신의 부대에 가려졌을 뿐이다. 그리고 그 후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 사의 자리에 오르게 되면서 원균의 부대는 더욱 더 축소되어졌고 결과적으로 이 같은 오해 가 생겨난 것이다. 게다가 둘 다 임진왜란 후인 1604년 선무공신(宣武功臣) 1등이 되는 것 은 원균도 이순신만큼의 공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움직이지 않는 증거이다.
2) 이순신과 한선(韓船)
당시 임진왜란 당시의 조선 주력함은 판옥선(板屋船)이다. 왜와의 해상권 싸움에서 이길 수 있었던 이유 중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해냈던 요인이 바로 이 판옥선이다.
조선의 한선은 왜의 전선과 구조상 많은 차이점을 가지고 있었다. 일본의 전선은 속도가 빨라야 하는 원양을 목적으로 만들기 시작했기 때문에 배의 원재료부터 가벼운 재질의 목 재로 만들었기에 가볍고 속도가 빠르다. 또한 배의 밑 부분에 용골을 중앙에 하나만 대어 "V"자 형의 모습으로 배를 조선 하였다. 그러나 조선의 한선은 주위의 왜나 해적들을 견제 하기 위함이 주 목적이었기에 처음부터 크고 튼튼하게 조선하였다. 또한 밀물과 썰물의 차 가 심했던 조선의 항구에 적응하기 위해 배 밑 부분에 용골을 좌우에 두개를 대어 "U"형 으로 만들어 썰물 때에도 배가 전복되지 않게 하였다. 이 같은 차이로 임진왜란에서 판옥 선과 거북선은 큰 활약을 나타낸다.
"U"자형의 판옥선과 거북선은 왜의"V"자형의 함선들 보다 훨씬 안정적 이었고 함선들이 부딪히더라도 잘 전복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구조 자체적인 요소보다도 전투에 더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조선과 왜의 해상 전술상에서 이러한 배의 구조가 큰 역할을 했다는 것 이다.
왜의 해상전술은 자신들의 함선을 적의 함선에 가까이 댄 후 적진으로 올라타서 백병전으 로 제압하는 전술을 주로 썼지만 판옥선이 왜선들 보다 크고 높이 또한 높았기 때문에 올 라 타기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판옥선이 가벼웠던 왜선에 비해 단단했기 때문에 잘못 배를 댄다면 부서져 큰 낭패를 보았다. 이에 반해 조선의 해상 전술은 적의 함선과 거리를 두어 총통과 활을 이용하여 적을 제압하는 전술을 이용하였다. 이 것은 왜 선에 있어서 크게 불리한 작용을 하였다. 적의 함대에 자신들의 함선을 가까이 대어야만 했던 그들에게 총통과 활은 많은 병사를 싸우기도 전에 잃어버리게 하는 요소였기 때문이 다. 또한 그런 전술에 돌격선 역할을 했던 거북선은 전투를 유리하게 만드는 크나 큰 요소 였다.
Ⅳ. 맺음말
지금까지 임진왜란에서 나타난 이순신의 행적과 남겨진 기록들을 살펴보고 그것을 토대로 인간 이순신을 되짚어 보았다.
모든 전투와 전쟁이 그렇듯이 그곳에서 승리하게 위해서는 혼자가 아닌 모두가 그리고 그들을 받쳐주는 것들이 존재해야만 전투에서 이길 수 있는 것이고 곧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 이 진리는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순신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그가 뛰어난 지략가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단지 그러한 요소 때문에 해상전투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가 그런 뛰어난 지략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두터운 친분이 있었던 유성룡이 많은 도움을 주었고, 또한 그런 지략에 반하여 원균이라는 무력 장수가 있었기에 지략과 무력의 균형을 잘 잡아 해상전투에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 일을 그르치는 것을 방지 할 수 있었으며 조선의 대표적 함선으로 주력함인 판옥선과 돌격선인 거북선은 그들의 힘을 쉽게 펼칠 수 있게 하였던 밑거름 역활을 해 주었던 것이다. 육군으로 처음 관직을 수행했던 이순신이 수군의 자랑이자 임진왜란의 영웅으로서 부각될 수 있었던 까닭은 앞의 말처럼 주변의 상황과 여러 요소들이 잘 혼합되었기 때문이다. 결코 그가 용맹하고 애국심에 불타는 영웅이라 그랬던 것은 아닌 것이다.
현재 우리들이 알고 있었던 이순신의 모습은 모두 박정희 집권 당시 이순신을 성역화한 후의 모습인데 모두들 그것이 진실이라고 굳게 믿어 왔었다. 그러나 이번 보고서를 통해 우리는 이것이 과장된 사실 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것을 계기로 우리들 모두 역사를 판단할 때에 항상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역사를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참고 문헌>
한국정신문화원 편찬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988, 한국정신문화원.
이순신 저, 이은상 역주해, 『난중일기』, 1968, 현암사.
이원식 저, 『한국의 배』, 1990, 대원사.
이순신 저, 이석호 옮김, 『난중일기』, 1996, 집문당.
남천우 저, 『이순신(왜란, 조선 그리고 죽음의 의문)』, 1994,
역사 비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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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12.29
  • 저작시기20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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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330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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