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문헌소재 열녀전의 변이양상과 의미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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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후기 문헌소재 열녀전의 변이양상과 의미분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서론
1-1. 연구사 검토
1-2. 문제제기

2. 본론
2-1. 조선후기 문헌에 나타난 열녀전(작품중심)의 내용분석
2-1-1. 「하씨녀전」과「홍열부전․열녀홍씨전」
2-1-2. 「향랑전」과 「열녀계월전」
2-2. 열녀의식의 양상
2-3. 열녀설화의 의미

3.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치를 수호하기 위한 행위, 즉 반인격성에 대한 항거의 성격을 띤다. 이때 수직질서의 파탄은 수직적 인격체계의 모순이 누적된 결과이므로 수직윤리의 고수만으로는 온전한 극복이 불가능하다. 달리 새로운 인격적 가치체계를 찾지 못한 가운데 인격적 질서를 구하는 사람들은 극심한 가치 충돌로 빚어지는 인격의 파괴에 대하여 기곤의 윤리체계에 의존하여 저항한다. 그것은 아이러니한 투쟁이 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 투쟁은 의식적으로는 기존 체제의 인격 질서를 고수하려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그 체제의 모순 자체와 싸우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하씨녀전」은 조선후기 사회의 윤리체계 붕괴의 한 단면을 충격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악착하게 이익에 집착하여 조선조 사회의 인륜체제를 여지없이 유린하는 세태를 반영하는 것이다. 「하씨녀전」에 그려진 하씨녀와 남편사이의 충돌과 대결은 조선조 사회에 내재된 가치 충돌의 상을 극단적으로 현시한 말기 세태의 돌출이라고 하겠다. 하씨가 관청에서 자결함으로써 극렬하게 가부장을 고발한 것은 조선조 수직 윤리체계를 무참하게 유린하며 도전해오는 물신주의적 가치체계에 대하여 유교이념 쪽에서 고발한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홍열부전·열녀홍씨전」은 홍씨의 결백은 벗겨졌지만 한 가문이 무너졌고 효 윤리가 심각한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이를 위해 치른 희생은 엄청난 것이었다. 그럼에도 이들이 홍씨를 기린 것은 한 여인의 명예회복을 한 가문의 유지보다 더 중시해서라기보다 그것이 부부 질서의 마지막 보루며, 부부질서는 바로 사회질서의 시간이라는 관점 때문인 것이다. 18세기 후반부터 여성의 죽음이 결과적으로 부모와 자식을 버리는 '不孝不慈'임을 비판한 무사들이 등장하지만 여성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사회적 질서 유지를 위해 부부의 도를 확고히 하려는 강력한 전통이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으로, 따라서 홍씨처럼 어떤 수난과 고행을 통해서라도 그 결백이 밝혀져햐 할 그렇게 중요한 것임을 여성들에게 재확인시키고 있는 것이다.
「향랑전」의 향랑은 상민으로서 자신의 지배계급이 내세운 보편윤리의 인격에 일치시키고자 하였다. 그것은 조선조 수직체제의 현실적 조건과 어긋나는 것이었다. 상민부녀가 개가하는 것은 현실 조건상 불가피하였다. 조선조 사회의 현실 조건에서 상민부녀가 개가하지 않는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였다. 향랑은 조선조 사회의 신분모순의 틈바구니에서 상위예교에로의 자기 긍정이 허락되지 않고 다만 현실 조건의 부정에 비참하게 내몰리자 죽음을 스스로 취할 수밖에 없었다. 상층 수직 윤리를 구현하려 한 민중이 겪는 처절한 패배는 이러한 민중의 처절한 생활 처지가 불가피하게 만든 비극이기에 그것은 한스러운 것이었다. 그래서 민중은 향랑 사건을 자신들의 한의 설화로서 전승하였다.
「열녀계월전」의 계월은 노비임에도 조선사회 예절의 최고치를 수행하려 하였다. 이것은 인륜의 평등성을 주장하는 것이었다. 계월은 조선조 사회의 유교윤리 덕목을 초계급적인 보편적인 것으로서 주장하였고 거기에 완강하였다. 그것은 조선조 현실에서 유교윤리가 조선조 수직체제의 존립을 위한 계급 윤리라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고, 그것은 현실이 용납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녀의 죽음에는 비록 신분이 천하지만 사람다움에 있어 온전치 못할 이유가 없다는 강개한 인격적 주장이 있다. 지배질서의 가치를 가지고 지배질서에 항거하는 것이 계월의 자아의식이요 자아주장이었다. 하층민의 열의 수행에는 이렇게 역설적인 자아 주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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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01.17
  • 저작시기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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