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서론: 쾌락주의의 의미
2. 심리적 쾌락주의와 윤리적 쾌락주의
3. 심리적 쾌락주의의 한계
4. 윤리적 쾌락주의 비판
2. 심리적 쾌락주의와 윤리적 쾌락주의
3. 심리적 쾌락주의의 한계
4. 윤리적 쾌락주의 비판
본문내용
결과는 그 이론과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은 쾌락을 얻기 위해서 행동해야한다는 주장을 살펴보자. 이 주장도 언 듯 보기에는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아도 그것은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만 하는가에 대한 우리의 상식적 믿음에 어긋나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음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어떤 군인이 중요한 초소에서 보초를 서고 있다고 하자. 그는 앞뒤로 왔다 갔다 걷지 않을 수 없는데, 이것이 그에게는 단조로운 일이다. 그리고 후덥지근한 밤이다. 이쯤 되면 계속해서 초소에 있는 것보다는 차가운 음료수를 마실 수 있는 주점으로 향하는 것이 더 즐거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만일 그가 이러한 이유로 그의 초소를 떠난다면 그는 잘못 행동하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 만일 그가 자기는 쾌락을 추구하기 때문에 그로서는 하지 않으면 안 될 행동을 한 것이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의 변명을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이라고 웃어넘길 수밖에 없다. 보통 사람들은 때때로 쾌락을 얻기 위해서 행동해야한다고 느끼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때때로 우리들은 반드시 지켜야 할 어떤 의무가 있으며, 이 경우에 우리는 쾌락을 얻지 못하더라도 의무를 완수하기 위해서 행동해야만 한다. 만일 윤리적 쾌락주의가 사람들이 사회에서 어떻게 행위해야 하는가에 대한 체계적인 이론이라고 해석된다면, 우리가 방금 인용한 반대제기는 그것이 그와 같은 행동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것으로 볼 수가 없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이와 같이 쾌락주의는 비록 이론적으로는 매력적일지는 모르지만, 무엇이 도덕적 행위인가에 관한 우리의 일상적 감정과는 어긋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어떤 도덕적 근거에서 "한량(playboy)"을 반대하는가? 우리가 반대하는 이유는 단순히 그가 식탁, 포도, 등등의 피상적인 즐거움을 추구하기 때문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관점으로 볼 때 쾌락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추구해야 할 유일한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쾌락에 대해서 보통사람들이 취하는 자세는 에피큐러스적이기 보다는 아리스토텔레스적이다. 보통사람들은 때때로 쾌락이 가치있는 대상이고 사실상 인생에 어느 정도의 즐거움이 없다면 어떤 인생도 행복할 수가 없다고 느낀다. 그러나 쾌락이라는 것이 유일하게 가치있는 목표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반대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실제로는 추구될 수 없는 충고를 담고 있는 것이라고 거부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은 쾌락을 얻기 위해서 행동해야한다는 주장을 살펴보자. 이 주장도 언 듯 보기에는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아도 그것은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만 하는가에 대한 우리의 상식적 믿음에 어긋나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음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어떤 군인이 중요한 초소에서 보초를 서고 있다고 하자. 그는 앞뒤로 왔다 갔다 걷지 않을 수 없는데, 이것이 그에게는 단조로운 일이다. 그리고 후덥지근한 밤이다. 이쯤 되면 계속해서 초소에 있는 것보다는 차가운 음료수를 마실 수 있는 주점으로 향하는 것이 더 즐거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만일 그가 이러한 이유로 그의 초소를 떠난다면 그는 잘못 행동하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 만일 그가 자기는 쾌락을 추구하기 때문에 그로서는 하지 않으면 안 될 행동을 한 것이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의 변명을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이라고 웃어넘길 수밖에 없다. 보통 사람들은 때때로 쾌락을 얻기 위해서 행동해야한다고 느끼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때때로 우리들은 반드시 지켜야 할 어떤 의무가 있으며, 이 경우에 우리는 쾌락을 얻지 못하더라도 의무를 완수하기 위해서 행동해야만 한다. 만일 윤리적 쾌락주의가 사람들이 사회에서 어떻게 행위해야 하는가에 대한 체계적인 이론이라고 해석된다면, 우리가 방금 인용한 반대제기는 그것이 그와 같은 행동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것으로 볼 수가 없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이와 같이 쾌락주의는 비록 이론적으로는 매력적일지는 모르지만, 무엇이 도덕적 행위인가에 관한 우리의 일상적 감정과는 어긋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어떤 도덕적 근거에서 "한량(playboy)"을 반대하는가? 우리가 반대하는 이유는 단순히 그가 식탁, 포도, 등등의 피상적인 즐거움을 추구하기 때문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관점으로 볼 때 쾌락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추구해야 할 유일한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쾌락에 대해서 보통사람들이 취하는 자세는 에피큐러스적이기 보다는 아리스토텔레스적이다. 보통사람들은 때때로 쾌락이 가치있는 대상이고 사실상 인생에 어느 정도의 즐거움이 없다면 어떤 인생도 행복할 수가 없다고 느낀다. 그러나 쾌락이라는 것이 유일하게 가치있는 목표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반대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실제로는 추구될 수 없는 충고를 담고 있는 것이라고 거부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