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부마항쟁이란?
2. 부마항쟁이 일어난 원인
3. 당시상황
4. 부마항쟁의 쟁점과 목표
5. 주체세력과 지도부
6. 부마항쟁의 전개상황
① 항쟁의 기간과 범위
② 시위규모와 일반시민의 호응도
③ 정부의 대응
④ 투쟁방법
7. 부마항쟁의 성격
8. 부마항쟁의 역사적 의의와 한계
2. 부마항쟁이 일어난 원인
3. 당시상황
4. 부마항쟁의 쟁점과 목표
5. 주체세력과 지도부
6. 부마항쟁의 전개상황
① 항쟁의 기간과 범위
② 시위규모와 일반시민의 호응도
③ 정부의 대응
④ 투쟁방법
7. 부마항쟁의 성격
8. 부마항쟁의 역사적 의의와 한계
본문내용
하는 자유주의적 민주주의가 그 가치목표로서 주도적으로 반영된 '유신철폐'와 '독재타도'봐 수준이었다. 그에 비해 삶의 평등성 및 정치경제의 실질적 합리성을 급진적으로 지향하는 민중 민주적 계급적 혁명성을 가진 목표는 잠재적으로 내포되는 정도의 수준을 넘지 않 았다. 결국 항쟁의 목표 면에서 보아 부마항쟁의 성격은 '반독재 민주항쟁'인 것이다.
② 항쟁의 '주체세력과 지도부'라는 면에서 부마항쟁의 특징은 뚜련한 조직적 지 도부 없는 민중적 주체에 의한 시위였다. 즉 부마항쟁은 그 시위의 불을 당긴 것은 학생들이었다 하더라도 시위를 조직적으로 기획하고 이끌어간 일정의 지도부는 현 실적으로 존재하지 않았고, 오히려 미조직 대중들의 자생적 저항력 그 자체에 거의 의존하였으며, 그들이 바로 항쟁의 주체였다. 그리고 그 미조직 대중의 중심은 도시 빈민 위주의 기층민중에 중간층 시민들이 가세한 형태였다. 부마항쟁은 그런 의미 에서의 '민중적' 항쟁이었다.
③ '투쟁방법'의 면에서 보면 부마항쟁은 경찰기관이나 차량,관공서, 어용 언론기관 등에 대한 파괴, 방화, 투석, 화염병 투척 등이나, 진압경찰의 폭력에 대한 자구적 대응폭력 등은 상당한 정도였지만, 무장투쟁과 같은 극단적 저항은 발생하지 않았다.
④ '항쟁의 결과' 면에서 부마항쟁은 '미완의 항쟁'이었다. 즉 항쟁의 종결은 정권의 무력진압에 의하였고, 그 사후적 여파로서의 유신정권의 붕괴는 권력 내부적 암투 로서의 10 26사태를 빌어 간접적으로만 성취되었으며,나아가 유신정권 붕괴의 결과 또한 신군분 세력의 쿠데타에 따라 유신의 재판(론◎)으로 귀결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8. 부마항쟁의 역사적 의의와 한계
* 역사적 의의
① 부마항쟁은 서슬 퍼렇던 긴급조치시대의 그 숨막히는 억압 구조를 뚫고, 4월혁명 이후 처음으로 본격적 민 중항쟁의 지평을 다시 열어젖혔다.
② 부마항쟁은 단순히 '70년대 반유신운동의 귀결점으로만 머물지 않고 그 철옹성 같던 박 정희의 유신정권을 붕괴시킨 결정적 계기
③ ‘이승만 -박정희-전두환'등으로 이어진 억압적 독재정권들을 예외 없이 응징하여 온 단 정 수립 이후의 민중항쟁 사 위에, 결코 빠질 수 없는 일 획을 선명히 그어 놓았다고 평해야 할 것이다.
* 부마항쟁의 아쉬운 점
① 유신체제의 해체와 민주화가 아닌 '유신의 재편과 승계'에 불과한 것으로 오염됨으로써, 그 역사적 의미영역이 찬탈당함
② 둘째, 억압적인 지배권력에 저항한 '민중 항쟁사' 그 자체의 면으로 조명되지 못하고 10 26과 독재자 박정희의 급작스런 죽음이라는 '권력 중심 역사'의 관심과 장막에 가리워 짐으로써, 민중항쟁사로서 의 그 의미가 제대로 부각되지도 분석, 평가되지도 못해왔던 것이다.
* 부마항쟁의 한계
첫째, 이미 앞에서 언급된 대로 무엇보다 '미완의 항쟁'이라는 성격 그 자체에 있었다.
둘째, 항쟁의 확고한 지도 중심이 없었다는 점.
부마항쟁이 안고있던 이러한 한계점들은 곧 이어지는 '80년대 운동을 통하여 그 출 발점이자 극복과제로서의 의미를 더욱 분명히 드러내게 된다.
② 항쟁의 '주체세력과 지도부'라는 면에서 부마항쟁의 특징은 뚜련한 조직적 지 도부 없는 민중적 주체에 의한 시위였다. 즉 부마항쟁은 그 시위의 불을 당긴 것은 학생들이었다 하더라도 시위를 조직적으로 기획하고 이끌어간 일정의 지도부는 현 실적으로 존재하지 않았고, 오히려 미조직 대중들의 자생적 저항력 그 자체에 거의 의존하였으며, 그들이 바로 항쟁의 주체였다. 그리고 그 미조직 대중의 중심은 도시 빈민 위주의 기층민중에 중간층 시민들이 가세한 형태였다. 부마항쟁은 그런 의미 에서의 '민중적' 항쟁이었다.
③ '투쟁방법'의 면에서 보면 부마항쟁은 경찰기관이나 차량,관공서, 어용 언론기관 등에 대한 파괴, 방화, 투석, 화염병 투척 등이나, 진압경찰의 폭력에 대한 자구적 대응폭력 등은 상당한 정도였지만, 무장투쟁과 같은 극단적 저항은 발생하지 않았다.
④ '항쟁의 결과' 면에서 부마항쟁은 '미완의 항쟁'이었다. 즉 항쟁의 종결은 정권의 무력진압에 의하였고, 그 사후적 여파로서의 유신정권의 붕괴는 권력 내부적 암투 로서의 10 26사태를 빌어 간접적으로만 성취되었으며,나아가 유신정권 붕괴의 결과 또한 신군분 세력의 쿠데타에 따라 유신의 재판(론◎)으로 귀결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8. 부마항쟁의 역사적 의의와 한계
* 역사적 의의
① 부마항쟁은 서슬 퍼렇던 긴급조치시대의 그 숨막히는 억압 구조를 뚫고, 4월혁명 이후 처음으로 본격적 민 중항쟁의 지평을 다시 열어젖혔다.
② 부마항쟁은 단순히 '70년대 반유신운동의 귀결점으로만 머물지 않고 그 철옹성 같던 박 정희의 유신정권을 붕괴시킨 결정적 계기
③ ‘이승만 -박정희-전두환'등으로 이어진 억압적 독재정권들을 예외 없이 응징하여 온 단 정 수립 이후의 민중항쟁 사 위에, 결코 빠질 수 없는 일 획을 선명히 그어 놓았다고 평해야 할 것이다.
* 부마항쟁의 아쉬운 점
① 유신체제의 해체와 민주화가 아닌 '유신의 재편과 승계'에 불과한 것으로 오염됨으로써, 그 역사적 의미영역이 찬탈당함
② 둘째, 억압적인 지배권력에 저항한 '민중 항쟁사' 그 자체의 면으로 조명되지 못하고 10 26과 독재자 박정희의 급작스런 죽음이라는 '권력 중심 역사'의 관심과 장막에 가리워 짐으로써, 민중항쟁사로서 의 그 의미가 제대로 부각되지도 분석, 평가되지도 못해왔던 것이다.
* 부마항쟁의 한계
첫째, 이미 앞에서 언급된 대로 무엇보다 '미완의 항쟁'이라는 성격 그 자체에 있었다.
둘째, 항쟁의 확고한 지도 중심이 없었다는 점.
부마항쟁이 안고있던 이러한 한계점들은 곧 이어지는 '80년대 운동을 통하여 그 출 발점이자 극복과제로서의 의미를 더욱 분명히 드러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