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Ⅱ. 민족
1. 민족을 형성시키는 요소
2. 고조선시대의 한반도와 만주 주민
Ⅲ. 한민족의 기원
1. 북방설
2. 자체형성설
Ⅳ. 한민족의 형성
1. 한민족의 형성 시기
2. 한민족의 형성 과정
Ⅵ. 결론
Ⅱ. 민족
1. 민족을 형성시키는 요소
2. 고조선시대의 한반도와 만주 주민
Ⅲ. 한민족의 기원
1. 북방설
2. 자체형성설
Ⅳ. 한민족의 형성
1. 한민족의 형성 시기
2. 한민족의 형성 과정
Ⅵ. 결론
본문내용
의 무덤에서의 출토품의 綜態를 볼 때, 부장품으로 토기가 별로 많이 보이지 않는 등 그전시기 팽이형토기를 쓰던 단계의 이 지역의 고인돌무덤 및 돌상자 무덤의 매장풍속의 전통을 강하게 계승하고 있는 것은 그러한 면을 나타낸다. 그뒤 위만조선 단계에서 다시 서쪽에서 일단의 유이민집단이 합류하였고, 그리고 위만조선의 팽창에 따라 임둔 진번 등이 그 세력 하에 포괄되어 들어왔다. 만약 위만조선이 계속 장기간 존속하였고, 그 하에서 제 집단의 사회분화와 교류가 전개되었다면, 보다 큰 단위의 고조선민족의 형성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제국의 침공으로 고조선은 더 이상 민족융합의 구심점이 되지 못하였다.
2) 삼국시대
고구려, 백제, 신라 등의 국가가 생성되고, 중부 만주지역에선 부여가 성장해 갔으며, 낙동강유역에서의 가야의 여러 소국들이 태동하기 시작했다. 이들 나라를 중심으로 각각 주민융합이 점진적으로 진행되었고, 각각 그 나름의 민족을 형성해가는 과정이 전개되었다. 그때 한 국가의 영토 내에 편입된 주민이 곧바로 하나의 민족이 되었던 것은 아니다. 예컨대 삼국지 동이전에서 고구려 옥저 동예 등을 각각 별개의 개성적인 족속으로 서술하였다. 이들은 이미 고구려의 영토에 편입되어 있었지만 이들과 고구려 5부의 주민은 언어와 풍속이 비슷하여 동예인 스스로 고구려인과 同種이라고 칭하였다. 당시 고구려 국가에는 5부인과 동예, 옥저, 예맥 등등이 속해있었는데, 고구려라 하였을 대는 이들 집단 전부를 포괄하는 경우도 있고, 또 고구려 5부만을 지칭하는 경우도 있다. 삼국지 동이전의 서술은 후자의 경우로, 3세기 전반까지 고구려 영토 내의 주민집단들은 하나의 민족을 형성치 못하였음을 말하는 것이다. 옥저, 동예, 양맥 등의 집단은 부족으로 존재하였다. 아직 5부 내에는 각 부 별의 공동체적인 요소가 잔존하고 있어, 하나의 동질적인 주민집단으로서의 융합정도에서는 후대의 민족과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이는 고대민족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 신라의 경우도 6부만을 지칭하는 경우와 신라국가의 영토 내에 포괄되어 있는 지역과 주민 전체를 지칭하는 경우 두 가지가 있었다. 고구려와 동일한 경우로, 백제 역시 백제 건국을 주도하였던 부여, 고구려계의 유이민 집단과 피정복 한, 예맥계 주민집단 간에서 대동소이한 면을 나타내었을 것이다. 이는 삼국 전기의 정치구조인 부체제 하에선 공통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3) 통일신라시기
삼국 중기 이후에는 삼국이 시간적 차이를 두고 선후하여 중앙집권적인 영역국가로 발전해 나감에 따라, 각기 그 영역 내의 주민들간의 융합이 크게 진전되어 나갔다. 한편으로는 이와 동시에 삼국간의 교류와 전쟁 영토변경 이주 등으로, 삼국민 간의 존재양태 면에서 동질화도 크게 진행되었다. 이에 이르러 보다 큰 단위의 민족공동체의 출현이 가능케 되었다. 이러한 진전은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의 심화 및 그에 따른 공동체적 관계의 해체와 지역 간의 발전의 불균등성의 해소 등 삼국사회 내부에서 전개된 일련의 사회변화에 함께 진행되어 나갔다.
Ⅵ. 결론
민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있어서 주의해야 할 점은 민족이라는 말은 서구의 Nation이라는 단어를 번역함으로써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 개념상의 혼란이 있다. 한국인이 인식하는 것은 겨레 또는 동포로, 서구의 국민 또는 민족이 여러 혈통의 종족으로 이루어진 데에 비해 한국인들은 스스로를 단일혈통이라고 생각하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한민족의 형성에 대해 고찰해 보면, 우리 역사에서 첫 고대국가의 성립 이후 민족형성이 시작되었다. 고조선 단계에서 생성된 민족집단이 그대로 이어져, 그리고 그 집단의 후예만으로, 오늘날의 우리 민족이 구성된 것은 아니다. 고조선 멸망 이후 그 외곽지역 각지에서 성장한 국가들을 중심으로 여러 개의 고대민족의 단위들이 형성되어갔다. 고대 민족단위들의 주민은 기본적으로 예맥한족을 바탕으로 형성된 만큼, 그들 상호간에는 일정한 공통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차이성 또한 적지 않았으며, 그들 민족단위들을 포괄하는 동족의식은 형성되지 못하였다. 이어 삼국시대가 진전되면서 이들 간의 교류로 그 존재양태에서 동질화가 진전되었고, 나아가 삼국통일과 함께 삼국민을 아우른 차원의 동족의식을 지닌 보다 큰 단위의 민족이 형성케 되었던 바이다. 그리고 고려 초 발해인의 합류로 민족의 틀이 확정되었다. 이 민족이 역사의 발전에 따라 각 단계의 시대적 성격을 지니면서 이어져 오늘에 이르렀다.
2) 삼국시대
고구려, 백제, 신라 등의 국가가 생성되고, 중부 만주지역에선 부여가 성장해 갔으며, 낙동강유역에서의 가야의 여러 소국들이 태동하기 시작했다. 이들 나라를 중심으로 각각 주민융합이 점진적으로 진행되었고, 각각 그 나름의 민족을 형성해가는 과정이 전개되었다. 그때 한 국가의 영토 내에 편입된 주민이 곧바로 하나의 민족이 되었던 것은 아니다. 예컨대 삼국지 동이전에서 고구려 옥저 동예 등을 각각 별개의 개성적인 족속으로 서술하였다. 이들은 이미 고구려의 영토에 편입되어 있었지만 이들과 고구려 5부의 주민은 언어와 풍속이 비슷하여 동예인 스스로 고구려인과 同種이라고 칭하였다. 당시 고구려 국가에는 5부인과 동예, 옥저, 예맥 등등이 속해있었는데, 고구려라 하였을 대는 이들 집단 전부를 포괄하는 경우도 있고, 또 고구려 5부만을 지칭하는 경우도 있다. 삼국지 동이전의 서술은 후자의 경우로, 3세기 전반까지 고구려 영토 내의 주민집단들은 하나의 민족을 형성치 못하였음을 말하는 것이다. 옥저, 동예, 양맥 등의 집단은 부족으로 존재하였다. 아직 5부 내에는 각 부 별의 공동체적인 요소가 잔존하고 있어, 하나의 동질적인 주민집단으로서의 융합정도에서는 후대의 민족과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이는 고대민족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 신라의 경우도 6부만을 지칭하는 경우와 신라국가의 영토 내에 포괄되어 있는 지역과 주민 전체를 지칭하는 경우 두 가지가 있었다. 고구려와 동일한 경우로, 백제 역시 백제 건국을 주도하였던 부여, 고구려계의 유이민 집단과 피정복 한, 예맥계 주민집단 간에서 대동소이한 면을 나타내었을 것이다. 이는 삼국 전기의 정치구조인 부체제 하에선 공통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3) 통일신라시기
삼국 중기 이후에는 삼국이 시간적 차이를 두고 선후하여 중앙집권적인 영역국가로 발전해 나감에 따라, 각기 그 영역 내의 주민들간의 융합이 크게 진전되어 나갔다. 한편으로는 이와 동시에 삼국간의 교류와 전쟁 영토변경 이주 등으로, 삼국민 간의 존재양태 면에서 동질화도 크게 진행되었다. 이에 이르러 보다 큰 단위의 민족공동체의 출현이 가능케 되었다. 이러한 진전은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의 심화 및 그에 따른 공동체적 관계의 해체와 지역 간의 발전의 불균등성의 해소 등 삼국사회 내부에서 전개된 일련의 사회변화에 함께 진행되어 나갔다.
Ⅵ. 결론
민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있어서 주의해야 할 점은 민족이라는 말은 서구의 Nation이라는 단어를 번역함으로써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 개념상의 혼란이 있다. 한국인이 인식하는 것은 겨레 또는 동포로, 서구의 국민 또는 민족이 여러 혈통의 종족으로 이루어진 데에 비해 한국인들은 스스로를 단일혈통이라고 생각하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한민족의 형성에 대해 고찰해 보면, 우리 역사에서 첫 고대국가의 성립 이후 민족형성이 시작되었다. 고조선 단계에서 생성된 민족집단이 그대로 이어져, 그리고 그 집단의 후예만으로, 오늘날의 우리 민족이 구성된 것은 아니다. 고조선 멸망 이후 그 외곽지역 각지에서 성장한 국가들을 중심으로 여러 개의 고대민족의 단위들이 형성되어갔다. 고대 민족단위들의 주민은 기본적으로 예맥한족을 바탕으로 형성된 만큼, 그들 상호간에는 일정한 공통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차이성 또한 적지 않았으며, 그들 민족단위들을 포괄하는 동족의식은 형성되지 못하였다. 이어 삼국시대가 진전되면서 이들 간의 교류로 그 존재양태에서 동질화가 진전되었고, 나아가 삼국통일과 함께 삼국민을 아우른 차원의 동족의식을 지닌 보다 큰 단위의 민족이 형성케 되었던 바이다. 그리고 고려 초 발해인의 합류로 민족의 틀이 확정되었다. 이 민족이 역사의 발전에 따라 각 단계의 시대적 성격을 지니면서 이어져 오늘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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