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역사 (개항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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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선사시대의 부산
1) 구석기시대
① 청사포유적 ② 해운대 중동, 좌동 유적
2) 신석기시대
① 동삼동패총 ② 범방패총
③ 금곡동 율리패총
3) 청동기시대
① 온천동유적 ② 괴정2동 유적
③ 감천동 지석묘 ④ 사직동 유적

2. 삼한시대의 부산
① 동래패총 ② 노포동 고분군

3. 삼국 및 통일신라시대의 부산
1) 가야시대
① 연산동 고분군 ② 괴정동 고분군
③ 화명동 고분군 ④ 당감동 고분군
2) 신라의 남진
① 덕천동 고분군
3) 통일신라시대의 부산

4. 고려시대의 부산
① 만덕사지

5. 조선시대의 부산
① 동래부 동헌 ② 다대포 객사
③ 동래향교 ④ 장관청
⑤ 충렬사 ⑥ 금정산성
⑦ 동래읍성지 ⑧ 부산진 지성
⑨ 범어사

본문내용

산정에 둘린 토성지와 망미동 쪽의 석성지는 옛날 이 고을의 성일 것이다. 고려시대에도 읍성이 있었다는 것은 고려사, 병지에 현종 때 동래 군성을 수축하였다는 기사에서 알 수 있다.
조선조에 들어 동래 읍성은 여러 번 왜구의 침입을 겪었다. 임진년 4월 14일에는 이 성에서 장렬한 전투가 전개되었다. 그 후 보수에는 돌볼 겨를이 없었던 듯하며, 오랫동안 방치되고 있었다. 그러다가 1731년(영조 7) 당시의 동래부사 정언섭이 나라의 관문인 이 고장의 중요성을 감안, 이 성을 그대로 둘 수 없다하여 관찰사와 역사를 발의하여 과거의 성보다 훨씬 규모가 큰 읍성을 쌓게 되었다. 이것이 지금 안락동, 복천동, 명륜동 산 위에 흔적을 남기고 있는 읍성이다.
⑧ 부산진 지성
부산시 지방 문화재 기념물 제7호, 동구 범일동 일대에 있다. 부산진 지성은 흔히 자성대라고 한다. 현재 남아있는 이 성지는 임진년에 침범한 왜군이 부산에 주둔하면서 부산진의 지성으로 쌓은 것이다.
⑨ 범어사
대한불교 조계종 제14교구 본사인 선찰대본산 금정산 범어사는 부산시 금정구 청룡동, 금정산 기슭에 자리잡은 대사찰이며, 해인사 통도사와 더불어 영남의 3대 사찰로서 영남 불교의 중심축을 형성하고 있다. 범어사는 지금으로부터 약 1,300년 전인 신라 문무왕 18년(678)에 의상대사가 해동의 화엄십찰 중의 하나로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범어사는 창건 이후 고려와 조선 중엽에 이르기까지 그 면모를 유지해 오다가, 조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의 병화를 만나 모두 소실되어 10여년 동안 거의 폐허나 다름이 없었는데 선조 35년(1602)에 관(觀)선사가 중건하였으나 얼마 있지 아니하여 또 다시 화재로 소실되고 말았다. 그 후 광해군 5년(1613)에 묘전스님 등이 대웅전, 용화전, 관음전, 나한전, 일주문, 심검당을 건립하였다. 또한 1684년에는 해민화상이 비로전을, 1700년에는 명학화상이 팔상전, 종루, 불이문, 보제루, 천왕문을 건립하였다. 이후에도 사세의 확장에 따라 크고 작은 개수 및 중수를 거듭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일주문(一柱門)
일주문은 사찰로 들어가는 산문 중 첫 번째 문이다. 우리가 사는 중생의 세계와 부처님의 세계를 구분 짓는 곳으로서 중생의 세계에서 부처님의 성역으로 들어오는 첫 관문을 의미한다. 일주문은 일직선의 기둥 위에 맞배지붕을 한 독특한 양식으로 되어있다.
세 개의 문 위에는 각각의 편액이 걸려 있는데, 가운데 '曺溪門'이라는 작은 편액은 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마하가섭 존자, 달마대사, 육조 혜능대사의 법맥을 이은 조계종 사찰임을 나타내고, 오른쪽의 '선찰대본산(禪刹大本山)'이라는 편액은 산명과 사명을 밝힌 것이다. 일주문은 그 이름에서와 같이 기둥 넷이 한 줄로 서서 지붕을 받치고 선 세 칸 건물이다. 여느 사찰에서도 쉽게 볼 수 있겠지만 범어사 일주문은 석주로서 지붕을 받치게 하는 독특한 구조로 유명하다. 처음 건립된 것은 광해군 6년(1614)에 묘전 스님이 대웅전을 비롯하여 수많은 불전 요사를 중건할 때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뒤 숙종 44년(1718)에 명흡스님이 주관하고 대준스님의 주관 하에 다시 중건했다고 한다. 지금의 건물은 1718년에 세운 그대로이다.
일주문은 석주를 세운 독특한 구조로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조선 중기 다포식 가구의 전형적인 수법을 지니고 있어서 대웅전과 함께 목조 건축 양식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사료적 가치가 있는 건물이다. 현재는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되어 있다.
-삼층석탑(三層石塔)
보물 제250호로 지정되어 있는 범어사 삼층석탑은 신라말기의 석탑으로 신라 흥덕왕 때 범어사가 창건되면서 함께 건립된 것으로 추측되며 미륵전 앞 마당에 서 있다. 이 석탑의 높이는 약 4m이고, 상하의 이중기단 위에 삼층의 탑신을 올린 것이다. 이 석탑은 일제 때 수리하면서 기단 아래에다 석단을 받쳐 놓아 우뚝 서 보이나 기형(奇型)을 이루었고 주위의 돌 난간도 이때에 만들어진 것이다.
-대웅전(大雄殿)
현재 보물 제434호로 지정되어 있는 중요한 건축 문화재인 대웅전은 창사 때무터 건립되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지금의 건물은 광해군 6년(1614)에 처음 건립된 것으로 전한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묘전 화상이 중창했던 것이다. 그 뒤 숙종39(1713)년에 홍보스님이 주관하여 중건, 단청하였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오히려 조선 중기 이전의 양식을 지니고 있어서 1614년에 건립된 형상을 그대로 두고 그 뒤로는 수리하는 데 그쳤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오래 전의 건립연대나 규모, 건축 수법의 정교함은 통도사 대웅전과 함께 이 지역에서 흔히 찾아보기 어려운 예이다. 특히 조선 중기 이래의 간박하고 힘찬 다포식 가구의 양식적 특성과 뛰어난 건축기술을 보여주고 있어서 목조건축의 양식 발전을 연구하는데 크게 주목되는 것이다.
건물의 세부를 살펴보면 정면, 측면, 세 칸씩의 평면에 다포식 공포를 짜고 맞배지붕을 올린 점은 큰 규모의 불전 건물로서는 특이한 예이다. 그래서인지 사찰 안에 있는 대부분의 불전들도 같은 형식의 맞배지붕을 올렸다.
그밖에도 조선 후기의 제작으로 알려진 벽면의 불화들도 매우 훌륭한 작품이다.
어산교를 지나 일주문을 향해 중간쯤 올라오다 오른쪽 숲 속을 보면 울창한 소나무 사이에 거대한 당간지주가 나온다. 이것은 두 개의 거대한 돌기둥 사이에 높은 깃대를 꽂아서 멀리까지 범어사의 사격(寺格)을 알리는 깃발을 달았던 것으로 사내의 큰 행사나 중대한 일이 있을 때 사용되었다고 한다. 지방유형문화재 제 15호로 지정되어 있다.
[참고문헌]
강대민, <부산역사의 산책>, 경성대학교 출판부, 1997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부산의 역사와 문화>, 부산대학교 출판부, 1998
부산경남역사연구소, <시민을 위한 부산의 역사>, 늘함께
최해군, <부산에 살어리랏다>, 부산을 가꾸는 모임, 2000
이원균, <부산의 역사>, 늘함께, 2000
<부산의 문화재>, 부산직할시, 1993
<부산의 역사>, 부산시 , 1979
<사진으로 보는 해운대> 백년사, 해운대구, 1996
<부산>, 뿌리깊은 나무,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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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03.31
  • 저작시기20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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