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이 지배하던 옛 세상 질서를 폐지시키고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존재 양식과 삶의 유형을 확립해 놓은 신적 사건이었다. 십자가의 복음은 한편으로는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을 계승한 것이며 그와 같은 믿음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자들에게 그에게 은혜로 약속된 축복들을 제공하게 해준 구속사적 사건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할례와 율법 그리고 세상의 초등학문이 지배하는 옛 세상의 질서를 폐지시키고 그것과 완전히 다른 새 창조 질서를 도래시킨 묵시적인 사건이기도 하였다. 이제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 안에서 새 시대가 열렸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마땅히 새 시대를 규정하는 방식에 따라 살아가야 한다. 할례와 율법으로 특징짓는 옛 삶의 유형들이 아니라 믿음과 성령으로 특징지어진 새로운 삶의 유형들을 나타내야 한다. 갈라디아서의 이러한 주장들은 역사적으로 기독교 사상과 선포 그리고 기독교적 삶의 행습을 이해할 수 있는 근본적인 기초역할을 해왔다. 따라서 오늘 우리 시대에도 갈라디아서의 메시지는 살아 숨쉬는 역동적인 메시지들이 될 수 있고 그것을 이해할 때만 적어도 바울의 근본적인 정신을 이해했다고 할 수 있다.
갈라디아서의 중심신학
바울은 다메섹에서 회심을 하게 되었다. 그것으로 인해 바울은 부활의 증인이 되었고,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가 자신의 소명을 처음부터 “이방인을 위한 사도”가 되는 일로 이해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이전에 있었던 자신의 어떤 경험이나 사상에서 끌어낸 추론이나 유추가 아니라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전한 “계시”에서 직접적으로 온 것이다. 다메섹 도상에서 율법의 저주를 받아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가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과 “하나님의 형상”으로 나타나셨다. 이것은 율법에 대한 남다른 헌신과 열심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지금 하나님과 메시아를 거역하는 위치에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만들었다.
갈라디아서는 바로 이러한 배경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이방지역인 갈라디아 교회에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바울의 이러한 사상을 어지럽히게 한 것은 분명 바울로 하여금 격분(?)케 하였을 것이다. 바울은 ‘율법과 그리스도’, ‘사라와 하갈’이라는 비유를 통하여 복음의 진수를 깨닫게 하고 있다. 오직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만이 완전한 것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외에 다른 것이 더해진다면 복음은 복음으로서 기능을 상실한다. 바울이 이러한 논지를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밝히고 있다.
갈라디아서의 중심신학
바울은 다메섹에서 회심을 하게 되었다. 그것으로 인해 바울은 부활의 증인이 되었고,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가 자신의 소명을 처음부터 “이방인을 위한 사도”가 되는 일로 이해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이전에 있었던 자신의 어떤 경험이나 사상에서 끌어낸 추론이나 유추가 아니라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전한 “계시”에서 직접적으로 온 것이다. 다메섹 도상에서 율법의 저주를 받아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가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과 “하나님의 형상”으로 나타나셨다. 이것은 율법에 대한 남다른 헌신과 열심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지금 하나님과 메시아를 거역하는 위치에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만들었다.
갈라디아서는 바로 이러한 배경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이방지역인 갈라디아 교회에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바울의 이러한 사상을 어지럽히게 한 것은 분명 바울로 하여금 격분(?)케 하였을 것이다. 바울은 ‘율법과 그리스도’, ‘사라와 하갈’이라는 비유를 통하여 복음의 진수를 깨닫게 하고 있다. 오직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만이 완전한 것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외에 다른 것이 더해진다면 복음은 복음으로서 기능을 상실한다. 바울이 이러한 논지를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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