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서론>
<본론>
Part 1. 근초고왕
Part 2. 칠지도
<결론>
<본론>
Part 1. 근초고왕
Part 2. 칠지도
<결론>
본문내용
게 더 많은 획을 집어넣은 것은 맞지가 않고 태화(泰和)라는 연호가 백제의 독자적인 연호일 수있다. 이것에 대하여 북한의 김석형은 중국에 태화(泰和)라는 연호가 없으므로 이것은 백제의 독자적인 연호로서 4~5세기경에 백제가 이소노카미 신궁 일대를 영토로하는 백제 분국의 왕에게 하사한 것으로 이해하였다. 뒤를 이어 손영종은 날짜와 간지를 통해 볼 때 일본의 주장은 맞지가 않다 즉 태화(太和)4년 5월13일은 임신(壬申)이며 5월 16일은 을미(乙未)라서 맞지가 않고 백제의 전지왕의 연호가 태화(泰和)이면서 5월13이 바로 병오이다 여기서 날짜가 틀린 것은 확실하게 간지를 맞추기 위해서이다. 즉 희미한 글자에 의지하는 것보다 확실한 간지에 맞추어 날짜를 맞추것이다 즉 5월달에서 간지상 병오가 되는 확실한 날짜를 잡은 것이다. 그래서 태화(泰和) 4년(408) 년경으로 본다.
지금현재 연호는 일본과 한국 북한등에서 아직까지 논쟁중이며 글자가 없으면서 제일중요한 부분이 바로 연호이다. 즉 독자적인 연호의 사용은 바로 하나의 독립된 국가 하늘이 내려준 국가로 이해되는 것이 바로 이 연호이다. 왕의 국가에서는 절대 연호가 사용되어지지 않으면 이러한 상황 하에서 이 연호문제에서 백제가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였다면 하사설이 유리하여지나 현재 글자가 없기에 연도수에 있어서 차이를 보인다.
2. □月 十六日 丙午
이부분에 관하여서는 크게 말해서 일본의 9월설 한국의 5월 16일설이 있다. 즉 일본의 주장인 9월설은 일본서기에 나오는 신공황후기에서 칠지도가 전해지는 달로 이야기 한것이고 한국의 5월설은 이때 당시 출토된 한 삼국시대의 검이나 도의 표면에서 5월16일이라는 표현이 자주나오는 의례적이고 주술적인 면으로 이해하였다. 실제 하나의 검이나 도를 만드는 것은 바로의 불의 세기가 얼마나 센가에 따라 좋은 검이 나온다. 실제로 메소포타미아의 힛타이트는 철제 무구를 만드는 시기를 불의 바람 즉 가장 덥고 건조한 날씨로 선택하여 만들었고 또한 5월 16일은 음력상 가장덥고 불의 기운이 센날이다. 즉 의례적이고 주술적인 면이 강한 글귀이다.
3. 造百練鋼七支刀
이것은 도의 제작과 이름이 담긴 부분으로서 수많은 담금질과 특히 백제의 철제품에 대한 제조과정에 대한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이시대에 담금질을 통해 우수한 철제 무구들이 만들어진 것을 반영한다.
4. 生○百兵
모든 병란의 해독을 막을 수 있다 는 뜻으로 즉 칠지도가 실용적인 면이 아닌 주술적인 면이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문구이다.
5. 宜□供侯王 □□□□作
이 부분은 의(宜)를 동사로 보아 ~함이 마땅하다는 뜻으로 풀이되고 공(供)은 주다는 뜻이 있다. 또한 다른 금석문에 공공(供供)이 공공(恭恭)과 같이 쓰였던 예에 주목하여 '순순한' 또는 '예의 바른'의 뜻으로 해석하는 것도 가능하다. 여기서 주문해야할 것은 바로 후왕이라는 것으로 뒷면의 명문에 의하여 후왕이 바로 일왕임을 지칭함을 알수있는 것으로 알수있는데 이것에 대하여 백제가 바로 황제의 국가로서 제후국에게 하사하는것인지 아니면 단순한명문상 후왕 즉 고위관리나 왕들을 지칭하는 뜻인지 의견이 나누어진다. 뒷의 4글자는 현재 여러 가지 의견이 있으나 제작에 대하여 적은 것이 아니라고 판단한다. 그 이유는 바로 백제의 왕에대하여 뒷면에 있기 때문에 제작자를 앞에세운다는 것은 맞지가 않다. 그래서 다른 뜻으로 다른 금석문의 용례에 따라 '영구히 크게 길하리라(永年大吉祥)''와 같은 상투적인 길상구의 내용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뒷면은 거의 온전하기에 거의 다른 의견이나 기타다른 문제가 되는 것은 없다.
6. 先世以來未有比刀
전에는 이러한 칼이 없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7.百濟王世子奇生聖(德?)故爲倭王旨造
이부분에서 몇 개의 글자 1950년도 엑스레이 촬영과 판독을 통해 글자 완전하게 나타나게 되었으면 특히 이부분에서 바로 칠지도를 주고 받은 이에 대한 것이 담겨져 있다. 덕(德?)은 진(晋) 또는 음(音)으로 읽혀, 백제가 중국 동진(聖晋 = 東晋)의 권위에 의존하여 제작하였다거나, 불교사상의 영향(聖音 = 佛音)이 언급되는 등, 각양각색의 해석들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백제 왕세자(百濟王世子) 기생(奇生)이 성스럽고 덕이 있는 까닭으로 왜왕 지(倭王旨)를 위해 만들었다고 이해하는 것이 맞을것같다. 그렇다면 백제의 왕세자 기생은 누구이며, 왜왕 지(旨)는 누구인가? 기생은 백제 근초고왕의 아들로 뒤에 근구수왕이 되는 귀수(貴須) 또는 구수(仇首)의 다른 표현이다. 즉 근구수왕은 375년에 왕위에 오르므로 그 이전인 근초고왕대(346~374년)에 왕세자로서 왜왕을 위해 칠지도의 제작을 주관하였던 것이다. 지(旨)는 체(替)와 글자의 모양이 비슷하고, 체(替)는 찬(贊)과 비슷하므로 5세기 후반의 중국사서에 보이는 왜의 오왕(五王) 중 왜왕 찬(倭王讚)으로 볼 수 있는데, 찬(讚)은 『일본서기』의 오진왕(應神王)에 해당한다고 보는 설이 있다.
물론 이 구절의 세부적인 해석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많다. 그러나 누가 보아도 분명하며 현재의 한일 고대사학계가 공통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사실은 백제 왕세자와 왜왕이야말로 칠지도를 주고받았던 주체였다는 사실이다. 즉 칠지도 명문은 백제왕이 아니라, 백제의 왕세자가 왜왕에게 칠지도를 주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 구절에서 백제의 왕세자가 왜왕에 대응하고 있다는 사실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
7. 傳示後世
구절은 지금까지 없었던 칠지도를 백제에서 만들어 보내니 왜왕은 후세에 길이 전하여 보이도록 하라는 주문 내지는 부탁의 의미로 해석되어진다.
현대어로 다시번역하면
앞면] 태화 4년(372?) 여름의 가운뎃날 5월에 불의 힘이 가장 왕성한 16일 병오(丙午)의 날 정오(正陽)의 때에 수없이 두드려 강철의 칠지도를 만들었다. 이 칼은 모든 병기의 해를 물리 칠 수 있으니, 공손한 후왕에 적합할 것이다. 오랫동안 좋은 효험이 있기를 기원한다.
[뒷면] 이제까지 이런 칼이 없었는데 백제 왕세자인 기생(奇生)이 성스럽고 덕이 있어 왜왕인 지(旨)를 위해 만들었으니, 후세에 길이 전하여 보이기를 바란다.
<결론>
칠지도로 본 일본과 왜와의 관계
지금현재 연호는 일본과 한국 북한등에서 아직까지 논쟁중이며 글자가 없으면서 제일중요한 부분이 바로 연호이다. 즉 독자적인 연호의 사용은 바로 하나의 독립된 국가 하늘이 내려준 국가로 이해되는 것이 바로 이 연호이다. 왕의 국가에서는 절대 연호가 사용되어지지 않으면 이러한 상황 하에서 이 연호문제에서 백제가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였다면 하사설이 유리하여지나 현재 글자가 없기에 연도수에 있어서 차이를 보인다.
2. □月 十六日 丙午
이부분에 관하여서는 크게 말해서 일본의 9월설 한국의 5월 16일설이 있다. 즉 일본의 주장인 9월설은 일본서기에 나오는 신공황후기에서 칠지도가 전해지는 달로 이야기 한것이고 한국의 5월설은 이때 당시 출토된 한 삼국시대의 검이나 도의 표면에서 5월16일이라는 표현이 자주나오는 의례적이고 주술적인 면으로 이해하였다. 실제 하나의 검이나 도를 만드는 것은 바로의 불의 세기가 얼마나 센가에 따라 좋은 검이 나온다. 실제로 메소포타미아의 힛타이트는 철제 무구를 만드는 시기를 불의 바람 즉 가장 덥고 건조한 날씨로 선택하여 만들었고 또한 5월 16일은 음력상 가장덥고 불의 기운이 센날이다. 즉 의례적이고 주술적인 면이 강한 글귀이다.
3. 造百練鋼七支刀
이것은 도의 제작과 이름이 담긴 부분으로서 수많은 담금질과 특히 백제의 철제품에 대한 제조과정에 대한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이시대에 담금질을 통해 우수한 철제 무구들이 만들어진 것을 반영한다.
4. 生○百兵
모든 병란의 해독을 막을 수 있다 는 뜻으로 즉 칠지도가 실용적인 면이 아닌 주술적인 면이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문구이다.
5. 宜□供侯王 □□□□作
이 부분은 의(宜)를 동사로 보아 ~함이 마땅하다는 뜻으로 풀이되고 공(供)은 주다는 뜻이 있다. 또한 다른 금석문에 공공(供供)이 공공(恭恭)과 같이 쓰였던 예에 주목하여 '순순한' 또는 '예의 바른'의 뜻으로 해석하는 것도 가능하다. 여기서 주문해야할 것은 바로 후왕이라는 것으로 뒷면의 명문에 의하여 후왕이 바로 일왕임을 지칭함을 알수있는 것으로 알수있는데 이것에 대하여 백제가 바로 황제의 국가로서 제후국에게 하사하는것인지 아니면 단순한명문상 후왕 즉 고위관리나 왕들을 지칭하는 뜻인지 의견이 나누어진다. 뒷의 4글자는 현재 여러 가지 의견이 있으나 제작에 대하여 적은 것이 아니라고 판단한다. 그 이유는 바로 백제의 왕에대하여 뒷면에 있기 때문에 제작자를 앞에세운다는 것은 맞지가 않다. 그래서 다른 뜻으로 다른 금석문의 용례에 따라 '영구히 크게 길하리라(永年大吉祥)''와 같은 상투적인 길상구의 내용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뒷면은 거의 온전하기에 거의 다른 의견이나 기타다른 문제가 되는 것은 없다.
6. 先世以來未有比刀
전에는 이러한 칼이 없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7.百濟王世子奇生聖(德?)故爲倭王旨造
이부분에서 몇 개의 글자 1950년도 엑스레이 촬영과 판독을 통해 글자 완전하게 나타나게 되었으면 특히 이부분에서 바로 칠지도를 주고 받은 이에 대한 것이 담겨져 있다. 덕(德?)은 진(晋) 또는 음(音)으로 읽혀, 백제가 중국 동진(聖晋 = 東晋)의 권위에 의존하여 제작하였다거나, 불교사상의 영향(聖音 = 佛音)이 언급되는 등, 각양각색의 해석들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백제 왕세자(百濟王世子) 기생(奇生)이 성스럽고 덕이 있는 까닭으로 왜왕 지(倭王旨)를 위해 만들었다고 이해하는 것이 맞을것같다. 그렇다면 백제의 왕세자 기생은 누구이며, 왜왕 지(旨)는 누구인가? 기생은 백제 근초고왕의 아들로 뒤에 근구수왕이 되는 귀수(貴須) 또는 구수(仇首)의 다른 표현이다. 즉 근구수왕은 375년에 왕위에 오르므로 그 이전인 근초고왕대(346~374년)에 왕세자로서 왜왕을 위해 칠지도의 제작을 주관하였던 것이다. 지(旨)는 체(替)와 글자의 모양이 비슷하고, 체(替)는 찬(贊)과 비슷하므로 5세기 후반의 중국사서에 보이는 왜의 오왕(五王) 중 왜왕 찬(倭王讚)으로 볼 수 있는데, 찬(讚)은 『일본서기』의 오진왕(應神王)에 해당한다고 보는 설이 있다.
물론 이 구절의 세부적인 해석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많다. 그러나 누가 보아도 분명하며 현재의 한일 고대사학계가 공통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사실은 백제 왕세자와 왜왕이야말로 칠지도를 주고받았던 주체였다는 사실이다. 즉 칠지도 명문은 백제왕이 아니라, 백제의 왕세자가 왜왕에게 칠지도를 주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 구절에서 백제의 왕세자가 왜왕에 대응하고 있다는 사실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
7. 傳示後世
구절은 지금까지 없었던 칠지도를 백제에서 만들어 보내니 왜왕은 후세에 길이 전하여 보이도록 하라는 주문 내지는 부탁의 의미로 해석되어진다.
현대어로 다시번역하면
앞면] 태화 4년(372?) 여름의 가운뎃날 5월에 불의 힘이 가장 왕성한 16일 병오(丙午)의 날 정오(正陽)의 때에 수없이 두드려 강철의 칠지도를 만들었다. 이 칼은 모든 병기의 해를 물리 칠 수 있으니, 공손한 후왕에 적합할 것이다. 오랫동안 좋은 효험이 있기를 기원한다.
[뒷면] 이제까지 이런 칼이 없었는데 백제 왕세자인 기생(奇生)이 성스럽고 덕이 있어 왜왕인 지(旨)를 위해 만들었으니, 후세에 길이 전하여 보이기를 바란다.
<결론>
칠지도로 본 일본과 왜와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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