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과학자의 생애 - 나비박사 석주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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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어느 과학자의 생애 - 나비박사 석주명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1.
끝물이라도 여름이라는 건지 벌써 가을이라고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 탓인 지 햇살이 따갑다. 따사로운 태양빛을 받아 더욱 반짝이는 이 곳.
- 송도고등 보통학교
정문을 지나 대운동장과 육상 트랙을 갖춘 축구장 사잇길로 들어서면 웅장한 3층 석조 본관이 나타난다. 본관 오른쪽으로는 한옥 기숙사와 제 2신관이 자리하고 그 오른쪽에 있는 지하 1층, 지상 2층의 건물이 바로 조선 제일의 표본실과 실험실, 연구실, 저장실, 교실이 있는 박물관이다. 한 편으론 내 집보다 더 익숙한 연구실이기도 했고… 모교라서 그런가. 학교에 있다 보면 연구에 바쁜 와중에도 문득 학창 시절이 생각나곤 했다.
2.
어릴 적 서당에 들어가 한문을 배우는 것에 금새 싫증이 났던 나는 어린아이의 호기심 반, 흥미 반으로 신식 학교에 입학하고 싶어했다. 결국 1년을 더 참지 못 하고 9살에 평양 종로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였고-다음 해에 들통이 났지만 다행히 학교는 계속 다닐 수 있었다- 4년 후인 1921년 열세살의 나이로 졸업하였다. 그리고 보통학교 시절 있었던 3.1운동에 크나큰 감명을 받았던 나는 조선 정신을 넣어 주는 숭실고보를 택해 입학했었다.
그러나 동맹휴학 사태로 숭실고보를 중퇴하게 되고 개성에 있는 송도고보에 갓 입학했을 때의 나는 학업 보다는 음악과 놀이를 사랑하는 소년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유치하기도 하고 새삼 쑥스럽기도 하지만 당시의 나는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고, 명승지들을 돌아다니며 노는 것들이 낙이었다. 그랬으니 당연히 성적은 참담할 수 밖에 없었고 1924년 겨울, 최악의 성적표를 받을 수 밖에 없었다. 꼴지에 낙제 과목 까지… 생각해 보면 그 때 그런 성적을 받았던 것이 역지사지 격으로 오히려 지금의 나에게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그 일을 계기로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학업에 정진하게 되었고, 당시로써는 유일하게 일본의 명문 가고시마 고등 농림학교에 입학한 조선인이 될 수 있었다.
3.
고보 시절까지만 해도 음악을 제 몸처럼 사랑하고 음악학교 얘기만을 입버릇처럼 하던 내가 농림학교 진학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윤치호 교장선생님의 영향과 덴마크라는 생소하게만 들리는 나라의 농업 이야기였다.

키워드

석주명,   나비,   과학자,   과학사,   김성준,   생애,   자서전
  • 가격1,000
  • 페이지수6페이지
  • 등록일2006.05.24
  • 저작시기2005.11
  • 파일형식워드(doc)
  • 자료번호#35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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